소중한 시간, 귀한 법연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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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곽병호
2000년 08월 222호
“차수하십시오”, “허리 똑바로 세우십시오”, … “묵언하십시오” … 습의사 스님들의 경책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여전하다. 이번 해인사 여름수련회는 고행과도 같은 힘든 시간이었다. 문명의 이기 속에 편의와 편리에 길들여지고 몸의 평안만을 좇아온 일상의 습관 덕분(?)에 더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 고통의 시간은 지난 삶에 대해 돌이켜보는 의미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수련회로 치자면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나는 불교와 깊고 복된 인연으로 해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적지 않은 수련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특히 대학시절 불교학생회 동기생들과 7일기도, 3·7일 기도를 하며 방과후 한두 시간씩 걸어서 기도처가 있던 알봉산에 오르곤 했던 기억은 새삼스럽다.
내 나이 서른다섯에 맞이하는 이번 수련회는 그간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고 또 미루었던 자신과의 시간을 가진 셈이다. 그러고 보면 십여 년 넘는 시간 동안 나를 방치해 둔 것이기도 하다. 마음만 있었으니 말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잊히지 않는 몇 가지 인생사의 사건들, 이를테면 아내와의 결혼, 두 아들과의 인연 그리고 나를 불교와 인연 맺게 해 주신 할머니와의 긴 이별 등등 많은 변화를 거듭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미완의 무엇이 느껴짐은 왜일까? 삶에 치열하지 못하고 비굴했던 것, 때론 거짓과 위선으로 스스로 박제화하면서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던 아픈 지난날이 밀려온다. 이럴때면 참으로 괴롭다.
굳이 수련회 참가동기를 말하라면 이런 것들이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우선 내 자신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다. 흩어진 시간과 관성적 삶 속에 잊혀져버린 내 존재와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은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하려는 집착이요, 욕심이겠지만 내게 있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 불교기획사 책임자로서 현실적인 욕심도 있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수련회는 나로 하여금 머리로 뭔가를 얻고 해결하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의 여유만큼도 개인시간을 가질 수가 없는 꽉 짜여진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 버렸다. 입재식 전에 “뭔가를 크게 얻기를 바라지 마십시오”라고 하신 포교국장 스님의 말씀을 알 것도 같았다.
하루 여섯 시간의 긴 참선시간은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잡념 속에 짬짬이 내 문제에 접근하는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내가 ‘나’가 아닌 몸의 욕구에 얼마나 훈습되고 탐착했는가를 알게 한 시간이기도 했다.
수련 4일째, 1080배와 마애불 산행은 150여 명의 도반들 모두에게 각인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옆 도반이 울음을 터뜨리며 혼절(?)에 이른 것 하며, 보경당 좌·우측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신음과 또다른 울음소리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남은 힘 다해 막힐듯한 숨을 고르며 올라가서 뵈온 마애부처님은 그저 태연하게 우리를 대하셨지만 부처님께 공양 올린 후 함께 나눈 수박맛은 누구나 달콤하게 기억할 추억이 될 것이다. 공양시간과 포행, 일자일배一字一拜의 사경, 큰스님의 강의시간 모두가 큰 법문 아님이 없었던 것을 우리 수련회 도반들은 잘 안다.
수련회를 마치며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재삼 느낀다. 함께 했던 도반들에 대해서도 감사하며 좋은 인연 소중히 간직되길 일심으로 바란다. 또한 수련회를 알차게 이끌어 주신 사중 스님과 습의사 스님들께 감사드리며, 도반 모두가 깨달음의 한 길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