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연꽃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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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배영섭
2000년 08월 222호
오는 날부터 가야산 해인사는 푸른 신록을 더욱 푸르게 하는 파란 비만 내렸다.
남들은 즐거운 토요일이라고 부푼 가슴에 산으로 들로 강으로 머리를 식히는데 나는 해인사라는 법보사찰을 통해 자신과의 싸움을 스스로 걸어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입산하였다고나 할까!
시작부터 빡빡한 일정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은 시작되었고 때로는 완패한 패잔병의 모습으로 무엇하러,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수련회를 무사히 마친 현재의 기분은 부모님께 효도를 못한 지난날이 생생히 떠올라 그리움 회한悔恨이 가득하다.
인생이란 항상 이런 그리움과 회한의 여백이 남겨지는 못다 그린 한 장의 도화지와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첫시간은 바루 공양법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바루 4개로 그 자리에서 공양하고 천수물 한 그릇으로 설거지까지 마친 물에는 고춧가루 하나 없는 퇴숫물, 환경운동은 역시 절에서부터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몸집은 산더미만한데 목구멍이 바늘구멍이어서 고춧가루, 밥알 하나도 삼키지 못한다는 아귀, 내가 하루 세끼 먹는 공양이 왠지 모르게 부담이 가기 시작했다. 퇴숫물 사건이라고나 할까? 구정물이라는 연상 때문에 꺽꺽거리며 같은 조라는 운명 속에 서로를 원망하기보다는 서로와의 연이 혹시 전생에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마셨던 기억이 선하다.
역시 집 떠나면 고생이었다. 일찍 자는 습관이 안 되어서인지 첫날은 잠을 설치기를 서너번 그러나 빡빡한 일정이 빨리 지나갈 것과 오늘도 무사히라는 생각으로 잠이 들었다. 새벽 3시, 몽롱하고 무거운 육신을 의식의 세계로 돌려 놓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본격적인 첫째 날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육신을 제어하고 조복 받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릎꿇고 앉는 힘든 상황은 새벽부터 시작되었고 좌선이라는 것을 처음 해 보았다. 좌선의 기본은 조신調身·조식調息·조심!調心이라 했는데 번뇌를 쉬는 좌선 삼매는 고사하고 다리는 아프고 뒤틀리는 몸, 헐떡이는 호흡. 엎드려 눈만 뜨고 하늘 쳐다보고 하는 와선臥禪이라는 게 없나 하는 마음만 가득하였다. 그러나 좌선 도중에 생각지도 않았던 몽상(전생인지 모르겠지만)들이 현실로 조금씩 투영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수련일정 중에 산내 암자 순례로 백련암을 참배하는 기회가 있었다. 올라가는 도중에 종이 우산을 쓰고 내려오시는 이름 모를 노승을 만나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환희심이 절로 났다.역시 인생에 있어서도, 연극에 있어서도 하이라이트가 있듯이 수련회의 하이라이트는 1080배였다. 삼세(과거 현재 미래)를 참회하고 발원하는 1080배.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1080배인가.
고요하고 정결함, 간절함으로 시작되었다. 약 300배가 지나면서 조금씩 흐트러지는 자세, 신음소리.
약 1000배가 넘어가자 쓰러져 가는 보살, 처사님들의 모습을 함께 느끼며 넘치려는 눈물과 회한이 수련회 법당인 보경당 안을 가득히 채워 나갔다. 1070배부터는 눈물이 한 방울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1080배는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이의 훈장이 되리라.
나는 1080배까지는 못했지만 거기에 상응한 정성으로 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나의 소중한 일터로 가는 일만 남았지만 스님들과 해인사와의 인연을 가슴에 남기고 싶다. 인생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듯 나는 해인사 수련회에서 무엇인가 얻어가려고 꼭 연연하지는 않았다. 해인사라는 큰 도량-해인 정신목욕탕이라 칭하면 어떨까?-에 먹고 자며 몸을 담근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니까?
그 동안의 눈물과 땀이 연꽃 속의 보석처럼 수련회장인 보경당에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