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눈물로 얼룩진 천팔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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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정현
2000년 08월 222호
며칠간 수련생들을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왠지 설레임과 잘할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된다. 하지만 내가 피교육자로서 행자교육을 받았을 때 습의사 스님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졌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수련법회 습의사로 권고 받고 처음엔 동참을 망설였다. 왜냐하면 아직은 나의 불교적 소양과 수행으로 누구를 지도한다는 게 부족함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속에서 매스컴을 통해서 서울 조계사 총무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부 스님들의 그릇된 모습을 보고 실망해 온 비불자나 초심자를 위하여 산사에서 열심히 수행 정진하는 대부분 스님들의 참된 승가의 모습을 일부분이라도 제대로 알려 줄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고, 그리고 일차에서 칠차에 걸쳐 거의 한달 반의 수련기간이 좀 길어 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게 아쉽기도 하였지만 이것 또한 큰 공부이며 보람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열심히 지도하기로 결심하고 아랫반 스님 네 분과 함께 수련회 지도법사 소임을 맡아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포교국장 스님을 중심으로 수련생들이 해인사에 와서 인생의 새로운 계기가 되고, 자신의 삶에 긴 여운으로 남을 수 있는 수련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보여 줄 다양한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머리를 맞대어 연구하고 토의하여 해인사 수련회에 오기 위해 일년 동안 설레임으로 준비해 온 수련생의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였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토요일 오후 한시 접수하기 위해 일렬로 줄을 서 있는 수련생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자신이 4박 5일 동안 잘 버티어 낼까하는 걱정의 눈빛이 가득하다.
우리는 “차수하세요” “묵언하세요” 처음 시작하는 수련회 습의사 소임이었지만 스님들 모두가 성심 성의껏 지도하고, 수련생 한 분 한 분도 정말 열심히 정진하니 하루하루가 보람된 수련이었다.
이젠 사경시간.
일자일배一字一拜하며 모두가 정말 정성껏 사경하는 모습은 내 마음 속도 그 무엇인가 뭉클한 감정과 환희심으로 충만되어 눈물을 보일 뻔했는데 아마 수련생 모두가 그러했으리라.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암자순례 시간.
비는 왔지만 우산을 쓰고 구름 자욱한 가야산 속의 오솔길을 걷는 수련생의 모습은 안개 속을 노니는 신선 같기도 하고, 세상의 번민을 다 털어 버린 수도인修道人 같기도 하였다.
만물을 일깨우는 도량석에 맞추어 새벽 세시에 일어나 예불, 천수경, 108배, 좌선 등으로 육신을 조복 받느라 오전 강의 시간엔 피곤하겠지만 모두들 열심히 청취하는 모습은 너무나 엄숙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강원에서 강사스님들께 강의 받던 내 자신을 생각해 보니 나도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마음의 각오가 생겼다. 그래서 수련생 모두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나를 공부하도록 나툰 선지식처럼 정말 근엄하게 보였다.
그리고 모두가 어렵게 생각하지만 그러나 가장 관심이 많은 수행의 진수眞髓 좌선시간.
오랜 좌선은 대부분이 처음이라 모두 다리가 아플 것이다. 물론 나도 좌선을 자주 하지 않아서 결가부좌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좌선은 최대한 부처님처럼 결가부좌를 하면서 자세를 잡아 참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또한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원칙대로 시범을 보여야 하기에 힘들었지만 수련생과 함께 결가부좌를 하며 정진하였다.
처음에는 25분 좌선에 10분간 포행으로 시작하여 뒤에는 50분 좌선에 10분간 포행으로 짜여져 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참고 따르는 수련생들을 보며 나도 그 속에서 많은 걸 느꼈다. “나 자신이 누구인가” 라는 보이지 않는 공통된 화두로 인해서 우리 모두는 부처님 앞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좌선을 풀고 습의사 스님들은 수련생들에게 다가가 위로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고, 수련생 상호간에도 서로 위로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은 어려운 과정을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점차 하나가 되어가고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더 생겨남을 보았다.
저녁이 되어 서울에서 참가하는 수련생 중 한 분이 배가 아프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가 요령 없이 다그쳐서 너무 힘들어서인가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또한 젊은 보살이기에 습의사에게 말못할 생리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구체적인 사안을 물어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체 수련 리듬에 흔들리는 인정도 베풀 수도 없고… 이럴 땐 비구니 습의사가 있었으면 조금은 도움이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으로만 걱정뿐 어쩔 수 없었다. 허나 모든 것은 신심으로 이겨내야 함이 수련자의 기본 덕목이라 생각하고 마음은 아팠지만 모르는 척했다. 저녁에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치고 아침 예불 시간에 참가한 그 분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오늘은 사일째 되는 날. 1080배를 부처님 전에 올리며 참회하는 날이다. 대부분이 처음 수련회에 참가하여 절을 많이 해 보지 않아서 모두가 걱정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특히 나는 1조에 편성된 불자들에 대해서 애착이 가는 것 같다. 아마 그것은 1조가 발우공양시 퇴숫물이 깨끗하지 못하여 자주 퇴숫물을 나눠 마시게 하는 벌을 주어서 미안한 감정이 어려운 고비에 애착으로 생각이 미치는 걸 보니 나도 아직은 마음수행이 너무나 부족함을 느낀다.
1080배가 시작됐다. 염주 한알 한알 굴리면서 시작하여 물을 마실 수 있는 540배가 되었을 때 모두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모두가 잘했는데 모두가 1080배를 마치길 마음 속으로 부처님께 기원했다. 여기에 모인 수련생 모두의 힘듬과 어려움을 내가 대신할 수만 있다면… 땀과 눈물로 절하는 모습들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자주 고개를 돌리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힘든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뒤에 가서 눈물을 닦았다. 인정이 많으면 도심이 흔들린다 했는데… 내 수행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걸 또다시 느꼈다. 무엇이든지 들어 주고 대신해주는 것이 능사能事가 아니듯이, 수행자로서 진정한 자비심은 어떻게 함인가를 생각케 했다. 1070배 1071배 1072배… 모두가 숫자를 세며 절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1080배가 끝나 석가모니불을 울먹이며 큰소리로 정근할 때, 나는 수련생들의 모든 업장이 녹아지고 참회되어 자신이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지길 두 손 모아 부처님께 축원했다.
1080배 일정이 끝나자 또 한사람이 아프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 수계식 올리는 마지막 날인데, 힘든 생활이 다 끝나고 아프다고 하니 걱정이다. 아마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저녁에 쉬게 하고 내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새벽 예불시간에 참석하는 걸 보고 마음이 놓였다. 수련과정에서 처음 보는 할머님과 손녀 같은 젊은 보살님들이 서로 묵언하는 과정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며 안마해 주는 모습을 보니 이것이 부처님의 품이기 때문이리라.
정들자 이별이라 했던가! 서운한 생각이 들어 아쉬웠지만 모두가 가정으로 돌아가 이곳에서의 수련이 일상 생활과 연결되어 진실된 삶이 되길 바랄 뿐이다.
회향식을 마치고 떠나는 모든 수련생들의 얼굴에는 강한 자부심과 내일을 향한 희망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리라 마음을 가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