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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상생(相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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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관암 2000년 08월 222호
산사의 여름 계곡은 해맑다.
푸른 숲 늘어진 사이로 햐얀 물줄기를 그리며 떨어지는 크고 작은 폭포와 여울, 가야산 홍류동으로 흐르는 깨끗한 물살이 오늘 따라 빨라 보인다. 어서 빨리 저 집단이기주의로 혼탁한 저자로 내려가 뭇 생명들을 살리고 저자의 모든 오물과 먼지를 쓸고 담아 바다로 나아가려고 그러는가! 그리고는 언젠가 흰 구름 되어 다시 가야산 중턱 청산에 걸려 만물을 살리는 근원으로 시작하리라. 순환하는 살아 있는 자연계. 연기연멸緣起緣滅, 상의상자相依相資의 진리인 진정한 상생의 논리와 실천은 일류에겐 영원한 과제일 뿐인가. 간단한 상식으로 말하면 내 것 내 자식이 중요하면 남의 것 남의 자식도 중요하고, 내 주장 내 생각이 옳으면 남의 주장 남의 생각도 배려할 줄 아는 의식과 실천력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나투시어 인류에게 남기신 유음이다. 허나 이런 상식 같은 진리가 사회나 국가간에 통용되기란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쉽지는 않다. 그것은 인간의 삼독심을 정화하지 않는 한 요원한 숙제가 될 뿐이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유사 이래로 싸움은 다 뺏느냐 다 뺏기느냐이며, 주인이 되느냐 종이 되느냐이었다. 이것은 싹쓸이의 심보와 종을 두!고 군림하고자 하는 인간 탐욕의 발로이리라. 그러나 인간은 이성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제로섬 게임의 사고로는 인간이 이중적으로 갖고 있는 인간 이성인 백(善)과 탐욕인 흑(惡)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람은 탐욕과 이기를 근본적으로 정화하지 않고 순수이성으로 미화시키면서 유·무형의 가치창조와 부가가치 제고에 눈을 돌린 것이다. 쉽게 표현한다면 남을 위해 기도하면 복을 더 많이 받는다 하기에 열심히 소리내어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격이다. 촛점은 나를 위한 더많은 이익이며 남은 나의 이익 창조를 위한 수단과 방법이 되는 사고이다. 2차 대전 후 승자는 패자에게 제로섬 게임으로 끝내지 않고 전후戰後 복구를 위해 엄청난 재물을 패자에게 제공하는 소위 마샬 플랜도 이런 논리인지 모른다. 경제 논리로 푼다면 싹쓸이로 가져가 봐야 일회성이고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기에 어느 정도 도와주어 구매력을 창출시킨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한물간 기술과 자본을 개도국에 전가 이전시켜 자국의 더 높은 가치 창조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이 나라간의 현실이다. 이처럼 명분과 논리는 그럴듯한지 모르나 의식 저변에는 진정한!연기와 상생의 패러다임이 깔려 있지 않다. 현실의 정치 사회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인간 이성의 숭고함을 부르짖으면서도 이기와 탐욕의 속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부쩍 상생의 정치, 대승적 견지를 부르짖으면서 집단 이기주의와 보혁保革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것도 지성인이요, 알만한 사람들이… 그래서 상생은 말로써, 안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더불어 잘 사는 사회, 다양한 상생의 패러다임 구축은 사람의 삼독심을 정화하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보여 준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 산사 수련회는 인류의 업보를 정화하는 밀알이며 희망이기도 하다. 산사에서 땀흘려 절하며 좌선하는 전국의 모든 수련생 여러분께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