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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윤리운동과 불교의 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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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김용표 2000년 08월 222호
1. 지구윤리운동
최근 세계 종교계에서 일고 있는 지구윤리운동은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변해가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시대 정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제 인류공동체는 자기 문화권에서만 통하던 독선적 진리주장의 시대를 접을 때가 되었으며, 이른바 ‘독백의 시대에서 대화의 시대로’라는 슬로건이 말해 주듯 언제 어디서나 보편타당한 공동의 진리와 윤리를 탐색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구윤리사상가 가운데 미국 템플대학의 레너드 스위들러는 지구윤리의 보편적 선언 을 제안한 바 있고 독일 튀빙겐 대학의 한스 큉도 세계윤리구상 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여기에서 한스 큉은 세계종교윤리의 공동 요소로서, 인간의 복지와 존엄성, 기본적 인간성의 최대요구, 중용이라는 합일의 길, 황금률, 자발적인 윤리적 동기, 삶의 의미 지평과 목표 설정 등을 들고 있다. 1993년 9월 세계종교의회에서 발표된 지구윤리선언문 에도 평화의 파괴, 지구 생태계의 파괴, 인간의 소외, 어린이의 학대, 사회혼란, 불의, 종교라는 이름 아래의 폭력, 경제적 불평등, 남녀차별, 온갖 탐욕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윤리를 제안하고 있다.
지구윤리운동가들은 세계윤리구상을 위하여서는 모든 학문 연구 기관들이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관계가 없이 전문 학자와 연계하여 지구윤리 를 시급히 제정하는데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요 종교 및 윤리단체도 지구윤리 제정을 위한 조사 연구를 위해 다른 종교윤리 단체와의 협조와 대화가 필요하며, 새롭게 일어나는 지구적 윤리문제들을 평가, 분석, 처방할 수 있는 기관으로 영속적인 지구윤리연구센터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그리하여 1948년에 제정된 국제 연합의 인권선언처럼 인류가 따라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 헌장의 제정과 그 실천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학자나 단체에 의해 제안되어 온 지구윤리의 방향을 보면, 세부적인 윤리적 항목을 의미하는 율법적 의미의 복수로서의 ‘윤리(ethics)’ 보다는 윤리정신을 의미하는 단수로서의 ‘윤리(ethic)’인 ‘에토스(ethos)’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이유는 보편적 지구윤리의 운동은 인류 공동의 선善에 대한 공감을 토대로 전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세계종교윤리의 공통성
종교를 역사적 문화적 현상으로 볼 때, 종교윤리의 다양성은 각 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사회적 가치체계, 신화적 상징과 그 해석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각 종교의 윤리는 그 종교의 우주관이나 신관, 그리고 인간의 종교체험의 내용에 따라 그 유형과 의미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세계종교윤리의 교의적 근거는 각각 다르지만 여러 종교에서 가르치는 도덕률을 비교해보면 거기에는 공통된 지구윤리정신(Global Ethos)이 내재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위대한 종교들은 보편적 인간 권리의 존엄성을 지지하고 있고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소망하며 또한 지구의 보전(오존층의 파괴, 파괴적인 유전인자의 변화 등) 등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종교 윤리의 보편성에 대한 재인식은 각 종교가 지닌 교의나 세계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지구촌의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세계종교가 내세우는 사랑, 자비, 우애의 정신의 실천 문제에서 우리는 세계 종교의 공동 본질이나 인류를 위한 종교의 공동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불교의 5계에 나오는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등의 계율은 대부분의 종교 윤리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윤리 규범은 종교 계율 이전에 사회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률이라 할 것이다. 인도의 자이나교는 살생, 망어, 투도, 비범행, 소유 등의 악덕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는 5대서五大誓의 윤리를 가르친다. 이 오대서는 힌두교의 요가학파의 경전인 《요가경》에는 5대 금계로 설해지고 있다. 서양의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이른바 셈족의 유일신교 전통에 나타나는 10계명에도,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하지 말라, 이웃의 아내나 노예, 가축 등 네 이웃에 속하는 것을 탐내지 말라” 등 불교의 5계에 상응하는 계명을 발견할 수 있다.

3. 보편적 지구윤리로서의 불교의 오계
그러면 종교의 신앙체계와 상관없이 선의 규범을 정의할 수 있는 보편적 윤리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칸트는 인간에게 있어서의 선과 악의 기준은 신의 의지나 특정 종교 창시자의 가르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옳기 때문에 선이라는 도덕률의 독자성을 주장하였다. 그는 도덕률은 모든 사람이 따를 수 있는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두 가지 지상명령을 선의 기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지상명령은 외부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이성의 힘으로 스스로 이를 행하고 존중해야 하는 당위의 법이라는 것이다.
세계윤리구상이나 지구윤리헌장 제정 운동도 이러한 인간주의적 윤리관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계운동은 지구윤리운동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으며, 오계가 지닌 철저한 인간존중 사상과 그 덕목의 인류적 보편타당성은 칸트적 도덕관과 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세계불교도우의회(WFB) 한국본부에서도 1993년부터 국제오계파지운동(International Pancasila samadaniya Movement)을 전개해 왔다. 1998년 WFB 정기대회에서는 이러한 한국본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계파지운동 분과를 WFB 본부의 특별분과위원회로 설치한 바 있다. 이 운동은 본래 현재 상좌부불교, 금강승 불교(밀교), 대승불교 등 크게 세 전통으로 나누어져 있는 불교도간의 대화 운동에서 출발하였으나 이제는 앞에서 언급한 보편적 지구윤리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오계의 덕목은 인류 공동체가 사랑과 신뢰의 바탕 위에 공존하며 성장해 갈 수 있는 윤리 정신을 제시하고 있다. 오계 정신인 자비, 보시, 진실, 청정, 각성의 덕목은 어떤 종교에 대한 교조적 신조나 종파적 교의에 관계없이 전 인류의 윤리덕목으로서 보편성이 있다. 그러므로 오계윤리정신(pancasila-ethos)은 모든 인류가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윤리의 기본 원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제 오계는 단순히 재가불자의 소극적인 계율이 아닌 보편적 지구윤리의 모델이 되어야 할 것이며 오계정신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와 그 실천 방안의 모색으로 새로운 인류의 윤리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할 사명이 모든 불자에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