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범부중생들이 유사 이래로 만들어 놓은 법이 많고도 많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물건 사이 등등, 각각의 이해관계를 따지고 집단의 질서와 평등을 위해서 정해 놓은 법은 정할 그 당시에는 최상의 법 이었을 테지만 가치관과 환경이 바뀜에 따라 법도 바뀌기 마련이고, 그리고 지금 현재도 자신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이미 결정되고 시행중인 법일지라도 바꾸는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회 곳곳에서 치고 박고 싸움이 끊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여 바꾼 법도 얼마 안 가서는 또 바꿔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 때는 또 다시 서로 싸울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런 법들은 모두 어떤 기준이나 일정한 잣대를 정해 놓고 만든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떤 기준이나 잣대는 상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고 더욱이 기준과 잣대를 정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관마저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법, 도道를 구하는 사람에겐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것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진리에서 보면 어떤 기준이나 중심을 정해 놓고 집착하거나 주主와 객客을 분리하면 그 순간부터 어그러지는 것입니다.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도 이미 다 틀렸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내가 모든 사물의 축일 것이라는 헛된 집착으로 우리가 사는 지구까지도 은하계의 중심으로 내세우게 된 것일 뿐입니다. 우주는 어느 것이 중심이나 기준이 됨이 없고 주와 객이 없이 서로 맞물려 돌고 돌며 인연 따라 생生·멸滅을 거듭합니다. 지구보다 더 큰 별들이 태어나고 죽어 마침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하니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멸함이 있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사람은 생生·노老·병病·사死를 이루고 우주는 성成·주住·괴壞·공空을 이룬다 일렀지 않습니까. 금강경 제칠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음)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깨달아 얻은 무상등정각과 설한 바 법이 있느냐?”고 묻자, 수보리는 “부처님께서 깨달아 얻은 무상등정각과 부처님께서 설했다고 이름 할 만한 고정된 법이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무유정법無有定法 즉 정함이 없는 법이 영원한 법이며 최상의 법이 됩니다.
그런데 범부 중생은 무엇이 최고이고 좋은 것이라 일러 주면 급기야는 그것에 집착하고 마는 병을 달고 삽니다. 정함이 없는 법이란 집착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또한 그 반대로 범부중생에게 사법邪法이나 비법非法은 물론 정법에도 집착하면 안 된다고 일러 주니 이번에는 세상의 일들은 다 부질없고 덧없는 허망함으로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는 불교는 염세주의요, 허무주의 종교라고 생각하여 귀한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정신 못 차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범부중생에게 무엇을 일러 주면 집착에 빠지거나 아니면 허망함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이 산승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은 범부중생의 병에 따라 약을 베푸는 응병여약應病與藥의 설법이어야 하고, 범부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수준에 차등을 두는 대기설법對機說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먹고 잠만 자고 게을러서 살이 찐 중생에게는 “그 똥자루, 피 고름 주머니 몇 년 못 가서 허물어질 몸을 무엇 하러 잘 먹이고 보살피나, 아무 소용없는 것이네. 예전에 성철 큰스님은 칠일七日 칠야七夜 식음을 전폐하고 용맹정진 하셨고, 경봉 스님도!잠을 쫓기 위해 얼음을 입에 물고 정진하셨다네.” 얼마 안가서 주름지고 허물어질 허망한 몸뚱이에 집착하지 말고 정신차려 공부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런가하면 몸 소중한 줄 모르고 자신의 몸을 학대하여 비실거리고 급기야는 환청幻聽이나 환상幻相에 시달리는 중생에게는 “수레가 헐어지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요. 몸뚱이 없고 힘없이 무슨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이 몸이 보배인줄 알고 몸을 잘 돌보는 것도 큰 공부라네.” “입도 잘 쓰면 금구金口(부처님 입)가 될 수 있지만, 못 쓰면 구시화문口始禍門으로 화근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이처럼 정한 법이 없는 무유정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것을 살리며 바른길로 인도하는 인연법인 것입니다.
세상이란 울퉁불퉁 다양하고 차별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현실이지만 실상實相은 하나입니다. 근본 실상을 통해 현실을 보고 현실 속에서 실상을 보아야지만 정견正見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함이 없는 무유정법이 최상의 법이라 하면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받아들여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좋은 게 좋을 것이지” 하고 세상을 달관한 듯 옛 어른 흉내나 내면서 자기 언행을 합리화시키는 일은 범부중생들의 병통 가운데에서도 큰 병입니다. 원효를 들먹이고 황희 정승을 들추면서 말입니다. 조선 초기 황희 정승은 매우 청빈하고 덕과 학문을 겸비한 조선 최고의 정승이었습니다. 그분이 말년에 금강경의 무유정법을 살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화가 전해옵니다. 집안에 대립되는 문제가 생겨 저쪽에서 찾아와 물어도 당신이 옳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 찾아와 물어도 당신이 옳다고 하기에 이것을 듣고 있던 자식이 “아버님!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은 대답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하자 황희 정승은 “그래 듣고 보니 네 말도 옳구나” 했다고 합니다. 선문의 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화두가 연상되는 말씀 같습니다만 아무튼 황희 정승은 일정한 법을 세우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방편을 베풀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히 올곧고 철저한 원칙주의자였습니다. 우의정 시절에 북방 여진족을 정벌하고 육진을 설치하여 두만강까지 국경을 넓힌 김종서 장군은 세종대왕이 아끼고 믿는 당시의 실세 중의 실세였는데 함길도 병부관찰사였던 김종서 장군이 병조 판서로 승진하자 김종서는 승진 축하연을 자기 집에서 열었는데 나라의 공금을 사사로이 축하연 음식비로 전용했다는 이유로 잔치가 벌어지는 그 자리에서 모든 신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종아리를 걷게 하고 매를 후려쳤다는 이야기가 실록에 전해옵니다. 강직과 올곧기로는 황희 정승에게 뒤지지 않았 좌의정 맹사성도 황희 정승에게 “좋은 날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하자 황희 정승은 “오래지 않아 우리가 늙어 정사政事를 돌보지 못하게 되면 김종서 저들이 나라 일을 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저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넘어간다면 앞으로 만 백성의 민생과 복리는 누가 챙기겠는가!” 하였습니다. 원효 스님 또한 터질 것 같은 자비의 가슴으로 민중의 아픔을 대신하며 우매한 백성들을 한마음으로 껴안고극락 정토로 인도하려는 원력에서 무애가無碍歌를 피웠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의 언행을 자기 것인 양 도용盜用하거나 속아 넘어가지 말고 무유정법에 심지를 곧게 세우고 언제나 주인공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우리 해인사 대적광전 옆 응진전 법당에 다음과 같은 좋은 글귀가 주련에 걸려 공부인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한정일발낭 閒情一鉢囊
임조래상열 林鳥來相悅
제천영리종 諸天影裏鍾
공안욕화우 公案欲花雨
산공화자개 山空花自開
한가로이 부질없는 생각들을 바랑 속에 담아 두고
날아드는 수풀 속의 새들과 더불어 선열을 나누노라
제천의 그림자는 저 종소리 속에 담겨 있고
공안*의 꽃비를 내리고자 할진댄
사상산*을 비운다면 꽃은 저절로 피어나리 □
※공안公案:화두
※사상산四相山: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