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교응허벽 皎皎凝虛碧하고
달밤에 스승과 제자가 함께 거닐면서 고요하게 나누는 법담이 일품입니다.
달밤에 공양을 하면 좋겠다는 말은 달을 부처님께 공양시키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인행因行보살 시절에 달밤에 나무 밑에서 선정에 들었습니다.
그 모양이 너무도 보기 좋아 주변에 있는 새들이 꽃을 물어다 나르기도 하고 짐승들은 먹을 것을 갖다놓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나무 위에 있던 원숭이들은 무엇을 공양하여 저 수행자를 기쁘게 해드릴까 하고 서로 연구하다가 마침내 물 속에 비친 아름다운 보름달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저 달을 공양시켜드리자.”
그리하여 오백 마리의 원숭이들은 나무 위에서 서로서로 손을 잡고서 연못으로 내려갔습니다.
맨 끝의 원숭이가 달을 잡기 위하여 물에다 손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물결이 흔들리자 달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후 다시 물결이 사라지니 또 달이 나타났습니다.
또 손을 집어 넣었습니다. 다시 달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월천담저수무흔月穿潭底水無痕 즉 달이 못 밑을 뚫었어도 물 위에는 흔적이 없는 법입니다.
이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는 가운데 원숭이들은 팔에 힘이 빠져 드디어 모두 물에 떨어져서 빠져 죽고 맙니다. 기어코 달을 공양시키겠다는 이 공덕으로 오백 마리의 원숭이는 뒷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오백 아라한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달을 건지려고 애쓰는 모습을 선가에서는 ‘노월撈月’이라고 말합니다. 수행이란 원숭이가 끊임없이 달을 건지려고 하듯 자꾸자꾸 끊임없이 애쓰는 것입니다. 물에 비친 달을 『증도가證道歌』에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일월一月이 보현일체수普現一切水라. 일체수월一切水月을 일월섭一月攝이로다.
한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고 모든 물의 달을 한 달이 포섭하도다.
하늘에 있는 달은 하나 뿐인데, 이것이 천강만수千江萬水에 비치어서 달이 천개 만개가 되고,
그 천강만수에 있는 달은 모두 하늘에 있는 달 하나가 거두어 잡는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많은 법문을 하시면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인 것이지 달그 자체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내 법문에 의지해서 스스로 자성自性을 깨쳐야지 나의 말에만 집착해서는 자성을 깨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는 것을 늘 경계하였던 것입니다.
야부도천冶父道川 선사는 달밤에 길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달빛이 얼마나 좋았던지 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 곳을 지나가 버린 뒤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게송을 남깁니다.
유시有時에 인호월因好月하여 불각과창주不覺過滄州로다.
어떤 때는 달이 하도 좋아 창주 땅을 지나가는 줄도 몰랐도다.
장사경잠長沙景岑 스님이 어느 날 앙산혜적仰山慧寂 스님과 달구경을 갔습니다.
먼저 앙산이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모두가 이런 일이 있건만 활용하지 못할 뿐입니다.”이에 장사 스님이 말했습니다.
“무방하니 그대 마음대로 활용해보라.”
이에 앙산이 다시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활용하시겠습니까?”
이에 경잠은 얼른 앙산을 걷어차서 쓰러뜨렸습니다. 그러자 앙산은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호랑이같이 되었습니다.”
고요한 달밤에 두 스님이 싸움을 하듯이 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습니다.
조주趙州 선사에게 달밤에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밝은 달이 하늘에 떠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아직 계단 아래에 있는 놈이구나.”
“스님께서 계단 위로 이끌어 주십시오.”
“달이 지거든 만나러 오너라.”
이렇게 같은 달빛 아래서도 각자의 가풍이 다른 법입니다.
마조 선사 역시 달밤에 세 제자를 데리고 나와 공부무게를 달아보았던 것입니다.
마조완월馬祖玩月 공안에 대하여 송원松源 선사는 이렇게 염拈했습니다.
“이렇게 달 밝은 밤에는 공양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라고 한 서당을 향해
“매실을 바라보니 갈증이 멎는구나.”라고 해 버립니다.
“이렇게 달 밝은 밤에는 수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라고 한 백장을 향해
“금으로는 금을 바꾸지 못한다.”라고 해 버립니다.
소매를 뿌리치며 가버린 남전을 향하여 “다만 외말뚝(一) 하나만을 얻었다.”라고 해 버립니다.
마지막으로 세 제자를 평가하는 마조 선사의 말 역시 그냥 두지 않습니다.
“옴 마니다니 후움바탁 사바하.”
그리고는 대중들을 돌아보면서 말합니다.
시회 대중이여!이 한 덩어리의 불이 콧구멍에 떨어지면 우리 모두가 코를 꿰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디로 숨을 쉬려 합니까?
마조 스님의 ‘경經은 지장에게 돌아갔고 선禪은 백장에게 돌아갔는데,
남전만이 홀로 물物 밖으로 벗어났구나.’라는 말에 절대로 코를 꿰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송원 선사 회상의 대중 뿐만 아니라 여기 총림대중들도 숨쉴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삼수도하심천별 三獸渡河深淺別하니
불로정변형연분 不勞精辨逈然分이라.
쟁여거침장범자 爭如巨浸張帆者가
불고파도과해문 不顧波濤過海門이리오.
세 짐승이 강을 건널 때 깊고 얕음은
애써서 가리지 않아도 저절로 판명되네.
그러나 물결 위에 돛을 올리고
파도에 구애없이 건너가는 사람만 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