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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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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바라봅시다 - 이죽내 2000년 07월 221호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아 왔는데, 이유인즉 약 한 달 전부터 공부가 하기 싫다면서 결석이 잦고 혼자 방에 앉아 공상하거나 잠만 계속 자고 어머니의 걱정에 신경질적이고 이유 없이 울기도 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난폭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은 앞으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싶은데 어머니가 의과대학에 들어가라고 해서 이과 반에서 공부를 해 왔는데 수학공부 하기가 힘들고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자신감이 떨어졌고 점차로 공부할 의욕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국민하교 때부터 반에서 항상 일, 이등을 해 왔고 부모와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온 모범생이었다. 부모들은 이 학생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해주었고 부모의 기대가 컸다. 부모의 기대란 의과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기대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아 불안해졌고 부모에 대한 죄책감, 열등감에 사로잡혀 집중이 안 되고, 학교 가기가 두렵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기가 싫어졌다.
이 학생은 우울증 상태였다. 정신 치료를 하는 도중 의미 있는 첫꿈을 이야기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머니와 대학진학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문과 반으로 옮겨야겠다고 하고 어머니는 그대로 이과 반에서 공부하라고 했다. …… 그러던 중 갑자기 어머니가 무서운 귀신의 모습으로 바뀌어 놀라 깨었다.\"
이 꿈에 대한 학생의 연상은 다음과 같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대학진학문제와 관련하여 문과 반으로 가려고 했으나 어머니의 태도가 워낙 강경하여 더 이상 주장을 펴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이과 반에서 공부해왔다. 수학공부 하기가 싫다. 문과 반으로 바꾸고 싶다. 어머니는 나의 뒷바라지를 잘 해주셨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느낌이 든다. 꿈에서 어머니가 갑자기 귀신으로 바뀌어 너무 놀랐고 깬 후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너의 어머니가 너에게 귀신처럼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했더니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보따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국민학교 때 동화책을 읽고 있는데 공부는 안 하고 그런 책을 읽는다고 꾸중했고, 방과 후 학급 친구들과 학교에서 놀다 집에 늦게 돌아왔다고 야단맞았고, 하기 싫은 피아노 공부를 시킨 이야기, 일요일 날 사촌언니한테 놀러갔다가 공부는 안 하고 놀러 다닌다고 꾸중들은 이야기, 중학교 일학년 때 성적이 학급에서 삼등 하였다고 야단맞은 이야기, 학교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항상 책을 보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야기 등을 했다. 중학교 시절엔 어머니가 자신의 생모가 아니라는 공상을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그 동안 억눌러왔던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드러냈다. 그 부정적 감정이 꿈에 귀신같은 어머니로 나타났다. 어머니는 자신이 딸에게 귀신같은 어머니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딸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해 주었고, 딸이 자신에게 고맙게만 생각하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자신이 딸에게 귀신같은 어머니, 딸을 숨막히게 해온 어머니였다는 것을 자각함으로써 치료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업하는 남편과 결혼하여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열등감이 많았다. 그 열등감을 자신의 딸을 통해 보상하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헌신해 온 것이 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후 점차 학생과 어머니는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 역시 그 동안 사업관계로 자녀교육을 전적으로 부인에게 맡겨 두었다가 딸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딸의 발병으로 부모의 자세가 달라지고 가정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사례는 마음이 서로 통하지 않아 병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음이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은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이 학생의 어머니는 그 동안 딸이 순종적으로 공부도 잘 했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딸과 마음이 잘 통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 것은 딸이 속마음을 억눌러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정신건강은 마음이 통하는 관계에서 비롯한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감정이 통한다는 말이다. 감정이 통하지 않는 인간관계는 기계적 관계에 불과하다. 이런 관계속에서 인간은 의미를 상실하고, 사물화事物化한다. 선진문명사회일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사고는 발달되어가는데 감정은 억눌려 미숙해져 있다. 인격의 성숙은 사고의 발달뿐만 아니라 감정의 성숙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고와 감정은 대극적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사고가 발달하면 감정은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지난 산업사회와 현재의 정보화 사회는 감정보다는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에 감정이 소외당해왔고 계속 소외 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열 때 가능하다. 내 마음을 열 때 남의 마음을 알 수 있고, 남의 마음을 알아줄 때 남의 마음이 열리게 된다. 서로 마음이 열릴 때 서로의 마음은 \'한\'마음이 된다. 그것이 바로 마음이 통하는 공감共感이다. 우리는 흔히 열린 사회니 열린 교육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각자가 마음을 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말로만 떠드는 그런 말은 오히려 인간의 마음을 닫게 한다.
자신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진심眞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심에서 나오는 말이라야 생명력이 있고 상대방에게도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은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진심의 체험에서 나온 말은 살아 있는 말로써 사람을 살리는 말이라면, 그저 내뱉는 말과 이기심에서 나온 말은 생명력이 없는 말, 독毒이 있는 말로써 사람을 해롭게 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통하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진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진심을 드러내는 삶 자체가 사랑이다. 진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가능한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자신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기 쉽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에는 말이 많다. 그것은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는 징표다. 그래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 간에는 별 말이 필요 없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것이다. 이심전심이 마음으로 통하는 원래의 모습이다. 정신치료에서도 비언어적非言語的 의사소통이 언어적 의사소통보다 본질적이라 함은 이런 뜻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