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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게송산책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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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회해 - 반산 2000년 07월 221호
항상 부처님을 대하였다고 하지 않은 이가 없다 .

제19, 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에도 역시 수미산정품처럼 부처님께서 향하시는 곳은 항상 길상한 곳이라는 말이 반복된다. 인도인들은 이처럼 천상세계를 늘상 동경해 왔다. 지상이 너무 평화롭고 풍부하면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아니면 물질이 풍부할수록 비리와 부정만 만연할까? 건강한 시민의식이 자리잡히지 않은 나라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된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적인 사실이다. 물질적인 빈곤과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가 오히려 건강한 법과 제도가 잘 정착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됨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지상의 고통과 더위를 천상을 향한 수많은 사유와 명상으로 달래왔다고 하지 않던가!
다음은 제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咽讚品이다. 야마천 설법에서는 화엄경의 특징이 더욱더 잘 나타나는 게송들을 만날 수 있다. 공덕림功德林 보살의 게송을 보자.
부처님 큰 광명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시니 천상 인간의 높은 어른 뵈옵기 환히 트이어 걸림이 없네〔佛放大光明하사 普照於十方하시니 悉見天人尊이 通達無障로다〕
시방세계 보든 곳마다 부처님 여기 계시다만 혹은 인간에 계시고 혹은 천궁에 계시고〔十方一切處에 皆謂佛在此라 하나니 或見在人間하며 或見住天宮이로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내

각림覺林보살 게송에서는 유명한 \'화가의 비유\'가 설해진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나름이니 마음은 그림 잘 그리는 화가처럼 모든 것을 뜻대로 성취한다. 50년 분단의 벽도 한 순간에 허물 수 있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마음을 비우면 통일이 보인다.\'고 할 수 있을까!
마음이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내는데 오온五蘊이 마음 따라 생겨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네.〔心如工畵師하야 能畵諸世間하나니 汚蘊悉從生이라 無法而不造로다〕
마음과 같아 부처도 그러하고 부처와 같아 중생도 그러하니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없네〔如心佛亦爾하며 如佛衆生然하니 應知佛與心이 體性皆無盡이로다〕라 하였는데, 이 부분은 60권 화엄과 대조해 보자.
\"마음과 같이 부처님도 그러하며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여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꼭 같아 차별이 없네〔如心하야 佛亦爾하며 如佛衆生然하니 心佛及衆生이 是三無差別이로다〕\"
선불교에서는 이 게송을 더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본래 80권 화엄에서는 이와 같이 \'心·佛·衆生의 끝없음〔곧 無盡性〕\'을 말한 것인데, 선사禪師들은 \'심즉시불心卽是佛\'의 관점 즉 心·佛·衆生의 무차별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왔다. 마음 한번 돌이키면 이마 넓은 백정도 성불하고,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부처님 재세시에도 제바달다처럼 제도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된 줄을 보라

이어서 산사의 새벽종송에서 항상 지송되어 오는 화엄경 제1의 사구게가 설해진다. 낭랑한 새벽 종소리에 실려오는 「원차종성변법계 철위유암실개명-십조 구만 오천사십 팔자 일승원교 대방광불화엄경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수행인들이 사는 산사의 새벽풍경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이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된 줄을 보라〔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인댄 應觀法界性에 一切唯心造니라〕
마치 여의주가 온갖 빛을 나타내지만 빛 없는 데서 빛을 내는 것 부처님들도 그러하니라〔譬如隨意珠가 能現一切色호대 無色而現色인달하야 諸佛亦如是로다〕

이 부분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60권 화엄에서는 \'심조제여래心造諸如來\'라고 하고 있다. \'마음이 부처님을 탄생시킨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표현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모든 일들이 마음먹기 달린 것이란 어쩌면 너무 평범한 듯한 말씀이다. 하지만 이 말은 연기즉공緣起卽空의 인식론과 연결되어 불교의 유심론적唯心論的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적실하게 표현한 금언이 되어왔다. 그리하여 법구경法句經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고 하였고, 신라대 고승 원효성사元曉聖師는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이 고통이요 죽지 말지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고통이다.\'고 하였다.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부단히 정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보살의 수행〕, 사방을 둘러보아도 본인이 꼭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고 허송 세월 하는 사람〔방랑자〕도 많은 것이다. 아래 두 게송은 지림智林보살의 게송인데 마지막 게송은 마치 금강경金剛經의 사구게四句偈를 보는 듯하다. \"만일 색상으로 여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부처를 찾는다면 삿된 길을 가는 것이니 마침내 여래를 볼 수 없으리〔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고 한 내용과 같은 의미이리라.
서기 이천년의 여름은 우리에게 기대가 가득 찬 설레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남북정상이 서로 포옹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민족통일의 그 날이 바로 가까워진 듯한 부푼 기대를 낳기에 충분하였다. 불교인들이 조석예불이나 불공 때마다 「남북평화통일을 축원해 온 그 공덕」도 이제 성취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