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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있는 곳에 연기가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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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택 1990년 06월 100호
옛 선사의 말씀에 “내가 이 산에 들어온 뒤로 잎이 푸르게 펴고, 잎이 누렇게 지는 것만 알 뿐 몇번이나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지만 나에게는 해인사의 여러 불사(佛事)를 놓아두고 어린 날의 철없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아직 속진(俗塵)이 덜 떨어진 탓일까?
지금도 그러하지만 수학여행이라면 으레 민족의 얼을 되새긴다는 의미에서 경주의 고적 답사가 우선이었던 시절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변변히 시골여행 한번 다녀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경주와 포항으로 떠나는 수학여행은 실로 가슴 설레이고 벅찬 기대를 가질 만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배웠던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안압지, 동산같은 왕릉 등… 생님께서 침이 마르도록 그렇게 칭찬하던 우리 문화재가 아닌가.
그러나 막상 석굴암의 대불을 보고도,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고도, 나는 지금 생각하면 철없게도 “에이 큰 보물도 아니고 별것도 아닌 돌이구마는 저게 무슨 보물이야”는 말이 주착스럽게 튀어나와서 선생님으로부터 혼줄이 난적이 있지만, 그 어린 날 나의 눈에는 위대한 석굴암의 부처님도 다보탑도 석가탑도 여느 돌덩이와 다름없는 하나의 돌덩이로만 보였다. 그 어린 날 나의 눈에 비친 그것들은 그저 하찮은 돌일 뿐이었다. 내게는 오히려 포항 바닷가에서 주은 조개껍질이 훨씬 귀중했으며, 난생 처음 본 바다만이 잊혀지지 않고 푸른 날을 세우고 내 뇌리 속에서 출렁거렸다.
이렇게 국보 중의 국보, 세계적인 성보를 일언지하에 돌이라고 외쳤던 그 인연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십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공교롭게도 출가하는 몸이 되고 말았으니 곰곰이 생각하면 세상 일이란 참으로 묘하다.
얼마 전 오랫만에 어린날의 추억도 생각하며 석굴암에 가서 다시 바라본 그 위대한 얼굴 앞에서 어릴 적 주착없던 그 말이 생각나 피식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예불 때 바라본 부처님의 얼굴은 그대로 살아계신듯 자비와 위엄을 함께 띠고 있었다. 그 여실한 표정에 어쩌면 저렇게 돌 속에 생명을 불어 넣었을까 하는 감탄과 벅찬 법열을 억누를 수가 없어 한동안 정신이 황홀하기까지 했다. 이튼날 석가탑과 다보탑 앞에서도 그런 감정은 마찬가지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예초에는 어린 날의 내 말처럼 한개의 돌덩어리에 불과했겠지만 천년이 지난 오늘에 오히려 그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그때 오로지 신앙심에서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는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절집에서 이루어 가는 모든 불사들도 이렇게 정성이 깃들고 후손들에게 길이 길이 감흥과 법열로 이어지는 불사였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불사여야 한다.
흔히들 요즈음의 불사를 두고 거대주의에 빠진다는 등, 민중의 아픔을 외면한다는 등하며 남이 애쓰는 불사를 시류에 따라 비난하는 소리를 하는데, 그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작은 불사든 큰 불사든 우리 모두 혼을 불살라 불사를 이루어야 함에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불국사가, 석굴암이, 팔만대장경이, 부다가야익 대탑이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한 불사는 아닐 것이다. 그 시대 시대마다 필요성에 따라 최선을 다한 불사였고, 그리고 그것이 역사 속에 살아남아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여기에 있으면서 우리들에게 선조의 얼과 부처님의 위신력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시대에도 정말 정성이 담긴 불사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먼 훗날의 후손들에게도 새삼 부처님의 위신력을 깨우쳐주는 불사를 많이 이룩하여야할 터이다. 그것이 곧 물질에 찌든 우리들의 정신을 청정케 하고 부처님의 자비와 평동사상을 온 누리에 전하는 길이라 믿는다. 언제나 불사에는 그럴 만한 신심이 거기에 있다. 불이 있는 곳에 연기가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