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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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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당 솔바람 - 경성 2000년 07월 221호
옛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무너져 가는 교실과 정립되지 못한 교권은 이제 그 위험수위를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스승이 매를 들면 주먹을 마주 올리는, 수업시간에 아예 엎어져 잠자는 아이들,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은 아랑곳없이 저희들끼리 웃고 떠드는 아이들, 존경받는 스승의 자리는 이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우리의 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의 문제 가운데에 작은 부분일 테지만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교사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은 정치인이 아니라 교육정책 전문가에 의해 입법되고 시행되어야 할 것이며, 교사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로 환원하여 몰락해 버린 교권을 다시 회복시켜야만 한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임금과 스승과 어버이는 동일한 존재로 몸과 마음을 다해 섬겨야만 함을 강조하는 말이며, 처음 출가한 스님들의 수행 지침서인『사미율의』가운데 「항상 스승을 뒤에서 따라 반드시 그림자를 밟지 말아야 한다. 상수사후 부득이족답사영 常隨師後 不得以足踏師影」은 제자의 스승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의를 알지 못하고, 옥을 다듬지 않으면 그것을 이룰 수 없다. 인불학부지의 옥불탁불성기 人不學不知義 玉不琢不成器」배움의 목적은 깊은 지혜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함으로써 의義와 인仁을 알고 인생에 대한 올바른 시야를 갖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의와 인을 체득하기 위한 첫 단계가 바로 스승과 제자의 예의를 갖추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배움 자체가 목적이 되고 지식을 얻는 수단만으로 변질된 우리의 현실이 원망스럽다. 『화엄경』에서는 스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선지식善知識이란 곧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으니 부처님을 탄생시키는 집이기 때문이다. 선지식이란 자비로운 아버지와 같으나 한량없는 일들로 중생들을 유익하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이란 곧 양육하고 보살펴주는 자가 되는 것이니 일체의 악惡을 행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이란 곧 위대한 스승과 같으니 교화敎化하여 보살계를 배우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이란 곧 길을 인도해 주는 사람과 같으니 교화하여 피안彼岸의 길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이란 곧 어질고 현명한 의사와 같으니 모든 번뇌의 근심을 치료해 주기 때문이다. 선지식이란 곧 설산雪山과 같으니 밝고 맑은 지혜의 약을 장양시키기 때문이다. 선지식이란 곧 용맹스러운 장수와 같으니 일체의 모든 공포를 방호防護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이란 곧 크고 단단한 배와 같으니 모든 중생을 생사生死의 바다를 넘어 건너가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이란 곧 노를 젓는 사공과 같으니 모든 지혜의 법보法寶의 섬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스승은 제자에게 있어 자모慈母·자부慈父·양육수호자養育守護者·대사大師·도사導師·양의良醫·설산雪山·용장勇壯·뇌선牢船·선사船師와 같은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스승은 인격을 탄생시키는 모태이며, 여러 가지로 이익을 주는 자이며,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최선의 교육자이며,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경계하도록 가르쳐주는 존재이다. 또한 진리에 이르게 하는 길잡이이며 번뇌의 병을 고쳐주는 훌륭한 의사인 동시에, 밝음의 지혜를 장양시켜 주는 터전이며 모든 공포를 막아주는 장수인 것이며, 생사의 고해에서 건네주는 배이며 진리의 섬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사공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스승은 우리의 인격완성의 실현에 있어 이처럼 중요한 존재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공경심으로 스승을 모셔야 함을 강조하셨다. 부처님께서 싱갈라에게 세속적 인간관계의 이상적인 지침과 방도를 설하여 주신『육방예경六方禮經』에서는 스승을 남방에 할당하여 다음과 같은 예의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첫째, 자리에 일어나 예를 행해야 한다. 제자는 스승이 멀리서부터 오는 것을 보면, 일어나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며 자리를 만들어 앉으시게 하고 부채질을 해 드려야 한다.
둘째, 곁에서 모셔야 한다. 제자는 스승을 하루에 세 번 가까이에서 모셔야 한다. 또한 기술을 습득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스승 곁으로 가야만 한다. 이것은 오늘날 수업에 규칙적으로 출석하는 것과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제자라면 스승을 방문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열심히 들으려고 해야한다. 스승의 말을 한 구절도 놓치지 않고 듣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스승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넷째, 안부인사를 드린다.
다섯째, 공손한 태도로 학문과 예술을 익힌다.
공손한 태도로 스승을 모신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시 되어야 한다.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공경하는 태도가 자연히 우러나오는 것으로 제자들에게 존경 받는 스승이 되기 위해서 제자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다.
첫째, 잘 훈육한다. 이렇게 앉고, 이렇게 일어서고, 나쁜 친구를 피하고 좋은 친구와 친해야 한다는 등의 행실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습득한 것을 잊지 않게 한다. 한번 습득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잘 가지고 있도록, 뜻과 문구를 바르게 알아 가지고 활용하는 방법을 보여서 받아들이게 한다.
셋째, 모든 학문과 기술의 지식을 설명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학문과 기술을 제자에게 합당한 방편으로 설명하고 전수하여 제자의 지혜가 스승보다 뛰어나기를 바란다.
넷째, 친구나 동료들에게 제자들을 널리 알린다. \"이들은 내 제자인데 재주가 뛰어나고 학식이 깊어 스승인 나와 맞먹을 정도이니 잘 이끌어 주십시오\"라고 제자들의 장점을 말해서 스승이 제자를 감싸주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모든 방면에서 아껴준다. 기능을 가르쳐 그것을 배워 익힌 제자를 추천해서 그에게 존경과 이익이 생기도록 해 주며 항상 그를 키워주는 것을 의미한다.
자모·자부·도사·양의와 같은 스승, 그러한 선지식을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 정도의 존경심으로 스승의 학문과 기예를 배우고 익히는 제자, 백년의 미래를 이루어 내는 교육지대계의 구심점求心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