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꽃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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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동정
2000년 07월 221호
여름은 일년 중 가장 많은 꽃들이 피는 계절이다.
들녘이나 산야에 가 보면 앙증맞고 화사한 꽃들이 오종종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봄부터 내내 피어 있는 것들도 있지만 짧은 동안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도
무수히 많다. 잎이 피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철쭉은 초여름의 꽃으로 꼽힌다.
신라의 향가 <헌화가>에 나올 정도로 우리 민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모란과 작약은 흔히 장독대 주변이나 울타리 가에서 볼 수 있다. 작약이 활짝 웃는 모습이라면
모란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 예부터 꽃 중의 왕이라 했던 모란은 그 농염한
자태가 왕성한 여름의 생리에 어울린다. 부귀를 상징하는 꽃으로 그림의 소재로도 등장하였다.
작약은 함박꽃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깊은 산 속에서 자라며 맑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함박꽃은 꽃송이가 무척 크다. 그래서 함박꽃이라 부른다. 함박꽃, 함박눈, 함박웃음에서 보듯
\'함박\'이라 함은 \'함박\' 즉, 큰 바가지라는 뜻에서 나왔다.
치자꽃은 한여름에 잘 어울리는 희고 작은 꽃이다. 여름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선명한 광택과 꽃의 자태는 맑은 향기와 더불어 청신감을 더해 준다. 하얀꽃과 은은한 향기는
그 어떤 꽃나무에도 뒤지지 않는다. 치자꽃의 빛깔은 흰빛이나 뒤에 가서는 노란빛을 띤
황백색으로 변한다. 여느 꽃들과는 달리 꽃 이파리가 여섯 개인 것도 이 꽃의 특색이다.
여름 내내 피어나는 봉선화는 소녀들의 손톱을 아름답게 물들여 주었다.
꽃 모양새가 봉황을 닮았다고 해서 봉선화라 부른다던가. 실제로 줄기와 가지 사이에 피어난
꽃을 가만히 보면 그 모양새가 마치 날개와 깃, 그리고 발을 모두 갖춘 봉황새와 비슷하다.
무더운 여름날 밤, 계집아이들은 싱싱한 꽃을 따서 동무들과 혹은 조무래기 동생들과
시시덕거리며 여름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손톱에다 봉선화 물을 들였다.
봉선화 물은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하얀 손톱눈이 눈썹 달 모양으로 커지면서
아름다움을 더해 간다. 첫눈 내릴 때까지 봉선화 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소녀들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하였다.
저녁에 피어나는 분꽃을 보고 아낙네들은 저녁밥을 짓기 시작하였다. 꽃은 6월경부터 붉은색,
노란색, 분홍색, 흰색으로 피는데 늦가을까지 볼 수 있다. 원래는 오후에 피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진다고 하지만. 해만 떨어지면 슬그머니 꽃잎을 오므리곤 하였다.
우리 나라는 예부터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 초여름 밤나무 곁을 지나가면
독특한 밤나무 꽃냄새가 흐른다. 아카시아나무는 자생적인 수종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 나라 곳곳에 심어져 여름을 장식해 주고 있다.
꽃에서는 꿀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꿀벌들이 찾는다.
배롱나무의 꽃은 여름 동안 백날 계속해 핀다고 하여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외에도 우리 나라 산기슭과 마음 근처에는 쥐동나무, 고아나무, 찔레꽃, 산딸기, 들장미, 싸리,
층층나무, 조팝나무, 노각나무, 으아리들 하며 수많은 여름 꽃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초본식물(풀줄기로 된 식물)로는 연두빛 강아지풀에서 금강초롱에 이르기까지 종류나
빛깔이 다양하다. 흔히 들에 피는 것으로는 닭의장풀, 흰개여귀, 백선분홍자붓빛메꽃, 달맞이꽃,
붉은자줏빛꿀풀 등이 있으며, 산기슭에는 원추리, 꽃창포, 참나리, 범부채, 패랭이꽃, 마타리,
잔디, 도라지 따위의 꽃이 핀다. 깊은 숲 속의 어두운 곳에는 수정난풀, 눈빛승마,
솟대승마꽃 같은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여름의 꽃나무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석류나무이다. 석류나무 꽃은 자손의 번성을 상징한다고
하여 예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는 가지 끝에 선명한 분홍색으로 핀 석류 열매의 맛이란.
바닷가 모래땅에 자라는 해당화도 여름의 대표적인 꽃이다.
해당화는 곧잘 내륙 지방에 피는 찔레꽃에 비유된다.
꽃잎의 색깔만 다를 뿐 열매의 형태나 향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특히 꽃의 향기는 장미의 향기처럼 진하고 좋아 화장품의 향신료로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갯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고 하여 많이 알려져 있는데,
어촌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꽃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을 근처나 공원 또는 길가에 심어 놓은 무궁화는 은은한 색깔에 황금빛 꽃술이 돋아 있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내내 그 모습 그대로인 이 꽃은 초가을까지
1백여일 동안 정갈함을 잃지 않는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다섯 장의 꽃잎은
푹푹 찌는 땡볕에도 자태를 흐트리는 법이 없다.
흔히들 여름을 젊음의 계절이니 개방의 계절이니 하는 말들은 한다.
여름의 한복판, 가까운 곳으로 들꽃 관찰 여행을 더나 보는 것도 무더위를 이기는 지혜가
될 것이다. 식물은 애완 동물처럼 기어오르며 재롱을 떨지는 못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의 정서를 아름답게 가꾸어 준다. 인간은 자연과
동떨어진 개체가 아니라 자연의 품에서 자연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 땅의 꽃 치고 우리가 모르는 멋들어진 이름과 흥겨운 사연 한 자락 없는 게 있을까.
그 꽃 이름 하나 하나에는 우리 조상들과 들풀들이 부대끼며 쌓아온 역사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