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地平線 너머로 간 사람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한용호 2000년 07월 221호
나는 이 글월의 서두를 어디서 어떻게 뽑아내야 할지 자못 아련하기만 하다. 마치 침울하고 습기찬 빈민굴을 걸쳐 나온 것처럼 아린 마음 헤아릴 길이 없다. 좋은 환경에 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육신의 장애를 딛고 살아 온 나, 실망하지도 비관하지도 않고 오직 땀 어린 시집을 펴내겠다는 일념으로 생활해온 나에게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이요, 구렁텅이 절망감이었다. 그만큼 내가 여리고 이 인욕적인 세상을 느슨하게 생각한 맹추인지도 모른다. 붓을 잡은 가슴에 다시금 울분이 앙금처럼 짙어져 간다.
며칠 전 부모님과 어느 장애인 요양원을 찾았다. 그 곳은 멀리 떨어진 전원田園에 위치한 사회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장애인 수용소<나는 이 인용들을 심히 개탄한다>였는데 3층 짜리 새 건물이라 겉으로는 비교적 깨끗하고 단아한 인상을 주었다. 그 곳을 찾은 건 답답한 마음이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설익은 과일같이 엉성하리라 반신반의했으나 그래도 하는 어떤 조그마한 기대감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 그 복도에 들어선 나는 온 심신心身이 허물어지는 아픔을 느껴야 했고, 멋대로 펼친 내 상상을 자조해야 하였다. 아니 뼈속으로 스미는 처절한 슬픔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사약을 받아 든 이의 헤아릴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으리라. 적어도 내 심정으로서는 말이다.
새로 지은 건물이 무색할 정도로 꾀죄죄한 복도와 냄새가 찌들은 방에 나처럼 장애를 걸머진 사람들이 구지레한 몰골로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 나에게 너무나 비참하고 너절한 모습을 시위하듯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이 많은 노인에서 어린아이까지 있었는데 모두 구질구질하고 무엇에 굶주린 초췌한 형상들이었다. 방에서 자주 비우지 아니한 소변기가 누렇게 탈색되어 놓여 있을 뿐 작은 가구들도 책상들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소지품, 심지어 벽에도 옷걸이 하나 없이 썰렁하기 이를 데 없었고 어디에도 적당한 시설은커녕 케케묵은 역겨움만 가득 풍기고 있었다. 내 짧은 글 재주로 일일이 표출할 수 없을 만큼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그들은 이렇게 내일이 암울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大衆의 터전에 밀려 난 사시랑이들처럼 말이다.
이럴 수 있는가. 아득한 마음으로 둘러본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물리 치료 시설은 아직 없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은 하고 있어야 그래도 사람 사회가 아닌가, 하물며 작은 권리마저 철저히 단절된 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지내왔었을까. 나는 자꾸만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가슴 속 모든 신념들이 일시에 무너지는 듯 했고 아름답기만 한 내 영혼화단靈魂化壇이 밉살스러웠다. 내가 풍요로운 집에서 가당치도 않은 글을 쓰고 있을 때, 그들은 그 어두침침한 궁핍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맛깔스런 음식을 입안에 넣고 있을 때 그들은 온갖 질병에 고통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처럼 부끄러운 자아를 절실히 느낀 적은 없었다. 지금도 나의 왜소矮小함이 내부를 스물스물 기어다닌다.
그들은 거의 버려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가족이 있는 사람도 있으나, 그 일가一家들도 의탁해 놓고는 발길을 끊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병이 나면 손을 쓸수도 없어 그대로 방치해 둔다는 것이다. 마침 방 한구석에 몸을 괴로이 움츠린 사람이 있었다. 나이도 어린 그는 시종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에 번지는 씁쓸함에 나는 실성한 사람인 양 실실 웃었다. 야박스럽고 이지러진 인간의 행위에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건 당연지사當然之事가 아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더구나 살붙이를 버리는 그 무도無道함에 심한 혐오와 염증과 더불어 아연질색啞然窒塞할 따름이다. 그러나 나를 더 슬프게 한 것은 성하다는 사람들이 신발로 다니는 눅눅한 복도를 그들은 기고 뒹굴며 옷이 내려 간 맨살로 뜨거운 시멘트 바닥에 나가 멀거니 않아 있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주위에 신문 잡지나, 하다못해 소일 할 아무런 물건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지구가 뭔지를 모를 것이다. 단지 먹고 자고 방에서 복도로 그 곳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기어다니며 강아지들처럼 아침과 밤을 맞으면 되는 그들.
과연 그들에게 내일의 개념도 오늘의 개념도 있을까 나는 절박하게도 속으로 외쳤다. 『글씨 아는 사람 있습니까. 책 읽을 줄 아는 사람 있습니까』 그러나 이런 내 간절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그 날 나를 쳐다보며 알 수 없는 슬픈 표정을 지어 여아女兒인지 남아男兒인지 모를 이가 불현듯 가슴에 그려진다) 나의 휠체어를 만지거나 반갑다고 손을 내밀어 오기만 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엉엉 울고 싶었다. 어찌 그들에게 결여 된 것이 그것들뿐이랴. 인간이면 마땅히 갖고 있을 이상理想도 희망도 어떤 기대들도 그들에게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만 단조로운 얼굴에 미련스런 웃음만이 유일한 표정이었다. 분명 정신들은 지니고 있을텐데 왜 움틀대지 않을까. 육신이 그렇다고 쓸모 없는 인생을 살아야만 되는 것인가. 그들 앞에서 차마 울지 못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토해내는 듯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래도록 울었다. 모든 것이 야속하고 허망했다. 울어도 흐느껴도 더해 가는 슬픔이었다. 요컨데 그들은 수치심도 굴욕감도 자존심도 없는 하나의 깨어있는 생물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의미한 세월에 그들은 하나 둘 바람인생이 되어 갈 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히고 원통한 노릇인가. 몹시 분하고 개탄스럽다. 아니 무겁고 박정한 우리의 멍에가 원망스럽고 미워진다.
장애자는 영혼을 가진 한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동등하게 살면 안될 저주받을 더러운 족속들인가! 진정 우리들은 버러지 신세밖에 안될까?
그러나 나는 안다. 그들이 그런 누더기 옷을 스스로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필경 어쩔수 없이 주섬주섬 꿰어 입었을 뿐이리라. 인간본연의 감정은 가슴속 흐르는 물에 다 씻어버리고 말이다.
이 고질병 같은 어둡기만하고 그야말로 불구적인 사회 고정인식에 신랄하고 신랄한 욕설을 퍼붓고 싶을 지경이다. 이 삐뚤어진 장애인에 대한 관념은 언제나 장쾌하게 깨뜨려질지 가히 까마득하고 갑갑하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그들은 튀겨지는 그 흙탕물들을 묵묵히 용서하는 더할나위없이 선선하고 깨끗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악함이란 존재치 않은 순수심성純粹心性의 소유자들이라고 내가 깨우쳐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선善한 무無에서 가식 없는 실팍한 순종을 아름드리 피어 낸다. 어떠한 운명, 혹독한 버림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넉넉하고도 너그러운 순정! 아마 그들은 세계 모든 종교의 교리를 터득한 달인達人들일게다.
그 동안 나는 넉살 좋게 살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짜여진 일상 생활을 권태로워하고 얇은 시련에도 곧잘 의기소침해 하기도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녀석이다. 새삼 내 자신이 불쌍해진다.
이제 풀어진 마음의 매듭을 다시 조이고 삶을 좀더 멀리 내다보아야만 되리다.
이렇듯 거기 그들의 처참한 생활이, 다소곳한 그들의 자세가 나를 가만히 일깨웠다.
그리고 내 쓰라림을 오히려 따듯하게 치료해 주었다.
슬픔이 큰 만큼 소중한 것을 얻었다. 또한 나는 그들에게 숙숙肅肅하고 숭고한 인간 영혼이 어떤 것인가를 재삼 알았다.
잘 가라는 듯 흔드는 그 어진 웃음들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하늘을 창망히 우러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