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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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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임완숙 2000년 07월 221호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이었다. 어딘지 낯익은 듯한 시골길을 걷다가 나는 서너 명의 불량배들에게 쫓기기 시작했다.
\"이거 봐, 아가씨! 시간 좀 빌립시다!\"
겁에 질린 나는 무작정 어느 초가집 사립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루에는 웬 청년이 빙긋이 웃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도와주세요! 깡패들이 쫓아와요!\"
나는 다급히 외쳤다. \"걱정 말아요. 내 깡패들을 쫓아 줄테니, 더운데 저 시원한 마루로 올라 가시지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회색옷을 입은 용모가 수려한 젊은 스님이 내 뒤를 막아서며 말했다.
그리고 마루위의 청년을 가르키며 그는 자기의 동생이니 안심하라고 했다. 나는 가슴을 쓸 어 내리며 문득 눈을 떴다. 밖에서는 긴 가뭄 끝에 기다리던 반가운 빗소리가 시원하게 들리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 여름 어느 날의 꿈이 었다. 그 후로도 나는 똑같은 이 꿈을 두 번이나 더 꾸었다. 한 번은 결혼하기 직전이었고, 또 한 번은 결혼 후 2년쯤 되었을 때였다. 마루 위 청년은 지금의 남편의 모습이었다. 이 꿈은 꾸었을 당시 나는 아직 불자가 아니었다. 불교에 대한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었을 뿐, 불교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던 때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 꿈속에서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잘 생긴 젊은 스님에게 구함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 후 생활속의 많은 체험 속에서 굳건한 확신을 갖고 불교에 귀의하게 된 나는 이처럼 어떤 위기 상황 속에서 스님으로부터 구함을 받는 또 다른 꿈을 여러번 꾸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스님들을 점점더 친근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스님들의 부드러운 회색빛 옷을 볼 때마다 저절로 이는 환희심으로 합장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비롯한 우리 불자들의 신앙 형태는 어떠한지 올바른 재가 불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신도들의 수준이 곧 그 종교의 수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도들이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외면하고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기복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 불교는 소아적인 기복 신앙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며 사회 기여도가 낮은 소극적인 종교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신도들의 모습을 꿈꿔본다.
첫째는 수행하는 불자의 모습이다. 나는불자라면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누구나 수행에 힘써야 한다고 믿고 있다. 수행 정진하는 삶의 모습이야말로 불교가 다른 어느 종교보다 뛰어난 점이기 때문이다. 그 수행의 첫째는 계를 지키려 노력하는 생활이다. 출가한 스님들은 오계를 지키고 재가자는 세속오계를 지킴이 어떨까 한다. 전적으로 수행에 몰입할 수 있는 스님들과 달리 재가자에게는 오계를 있는 그대로 지키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신라 시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지키게 했듯이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세속오계를 주어 재가 불자들이 모두 지킬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일어날 때 비로소 우리의 의식은 깨어나고 불자로서의 자긍심도 갖게 되리라. 그리고 계를 지키려 노력함과 더불어 매일매일 기도하는 생활도 빼놓을 수 없는 수행의 한 모습이다. 아침저녁 간단히 예불을 모시는 일과 경전을 독송하고 주력하는 일등 모두 수행하는 모습 아님이 없다. 꼭 절에 가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내가 있는 그 어느 곳이든 모두 법당이라 생각하고 생활 속에 수행을 게을리 말 일이다.
둘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는 불자의 모습이다.
이것은 불자라면 누구나 경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 진정으로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불자라면 부처님의 말씀 중 최소한 연기법 정도는 꼭 알아야 하겠다. 연기법을 제대로 이해하면 저절로 나누는 삶,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며 맹목적이고 미신적인 믿음에 빠져 들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러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무조건적인 기복신앙에 매달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교도들의 그럴듯한 감언이설에 넘어가기도 하고 자녀들이 이교도가 되는 걸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올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불자들의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고 수행생활을 할 때, 우리의 삶은 당당하고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그 수행과정에서 수많은 기적과 뜻 아니한 행복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이치를 바로 알아야 하겠다. 실제로 살다보면 우리는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가피를 얼마나 많이 받는지 모른다. 그야말로 어떤 때는 기적의 연속에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마음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그 이치를 분명히 알면 그저 감사한 마음뿐 생활에 혼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부처님 말씀을 열심히 배워야 할 것이다.
셋째 불법의 홍포와 외호에 힘쓰는 불자의 모습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되면 저절로 나누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누는 삶이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정신적인 풍요를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어지며 저절로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온 세계가, 온 우주가 그대로 부처님 말씀으로 가득 차도록 기원하고 행동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불법을 파괴하려는 삿된 무리나 생각앞에서는 단호히 불법을 지키려는 용맹심을 내서 삼보를 외호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불자들은 재적사찰을 정하여 수입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보시했으면 싶다. 부처님 오신날이나 특별히 어떤 날 등 하나 달고, 보시 몇푼 하는걸로 끝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타종교인을 보라. 그들은 십일조라 하여 수입의 십분일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엄청난 자금으로 계획된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우리 불자들도 재적 사찰을 갖고 매달 일정액을 보시하게 되면 우리의 사찰들도 계획적으로 적극적인 포교활동과 사회 사업과 같은 대사회적인 일들을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사부대중이 애정을 갖고 함께 참여하는 사찰운영이 이루어 질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 불교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재가불자들이 변하면 자연스럽게 스님들도 더욱 열심히 수행하는 풍토로 바뀔 것이고, 우리 불교가 또다시 민족을 이끄는 정신적 종교로 약진하게 될 것이다. 저 꿈속에서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젊고 수려한 스님이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듯이 젊은 불교 힘있는 불교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