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조계사 맞은편 골목 안에 있는 생명 나눔 실천회(전화 734-8050)에는 지난해까지 상근 직원이 겨우 둘, 올해 들어 둘이 충원되어 넷으로 늘어났다. 그들이 목적 사업으로 삼고 있는 것은 장기 이식 수술비 지원, 가족간의 교환 이식, 헌혈 운동, 골수 및 신장기증접수, 사후 각막 및 시산 기증접수, 뇌사시 장기 기증 접수 등이다.
이 일을 원만히 이루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바가 적지 않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적 보살행에 동참하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깨우쳐 주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한 차례 서울의 조계사 등에서 정기 법회를 열 뿐만 아니라, 기회가 닿는 대로 법문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불교방송, 교계 신문, 그리고 사찰단위의 모임에서 이 운동의 뜻을 알리는 한편, 도움이 필요한 위급한 환자를 고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화를 보시하라고 전하가는 쉬워도, 장기 기증 운동에 참여하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다. 가치관을 건드리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기 기증을 신청하는 사람은 부모에게서 받은 몸,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유교의 생각이 은연중에 깊이 젖어 있는 나이 든 사람보다도, 생각이 자유로운 삼사십대의 젊은층이 두렵다.
큰 차이는 없지만 남자보다는 여자가 조금 더 많고, 승속의 생각이 다를 바 없는지 칠백쯤 되는 스님 가운데서도 6대 4쯤으로 비구니 스님이 더 많다.
다음 생에서 몸을 받을때는 이 생에서 삶을 마무리할 때의 몸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진 스님도 적지 않아 이 일에 동참하기를 권하는 사람을 면전에서 꾸짖어 쫓는 사람도 있다. 젊은 학인 스님들에 비해 나이든 스님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큰스님 아니 종단의 중책을 맡은 스님들이 솔선해 참여해 주시면 파급효과도 적지 않을 텐데, 형편이 그렇지 못한 점도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아쉽게 만든다.
이타행이야말로 대승불교의 핵심을 이루는 것일 텐데도, 어렵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제 삶을 회향하려는 사회적인 인식이 약하고, 상대적으로 건축 불사나 자신의 안녕과 복을 비는 기도에 더 치중하고 있는 점에서도 그렇다.
지난 9월 1일, 법장스님은 기독교의 장기 기증 운동 단체인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 본부의 창립 기념식에 참석했다. 본부장인 박진탁목사는, 스님이 후발단체의 본부장으로서 천주교 오태순 신부와 함께 만남의 자리를 주선했던 뒤로, 특히 막역하게 지내오고 있는 터라, 덕담이 없을 수 없었다. ‘장기 기증이야말로 사랑을 베푸는 일이며, 사랑을 완성하는 일이며, 그것은 곧 내가 되돌려 받게 될 만덕과 만복의 근원”이라는 내용의 법문을 하고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업 현황을 보고 받으며 이쪽의 형편과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독교쪽은 장기 기증 운동을 불교쪽보다 몇 년 앞선 90년도에 창립하기는 했지만, 출발점이 같았더라도 같은 성과를 과연 이루었을까 싶게 그쪽은 크게 활성화되어 있다. 기증신청 회원만 해도 칠만여 명에 이르고, 서울사무실의 직원만해도 스무명쯤 된다. 무엇보다 그만한 규모로 성장한 데에는 불교가 자의적인 신앙 양태에 머무르고 마는 점이 강한 데 비해, “우리를 온전히 주관하시는 그 분의 뜻?”에 따른다는 적극적인 포교 자세와 그에 상응하는 탄탄한 조직력이 바탕이 되어 주었을 터였다.
“크게 이름 떨칠 일” 아니라서 그런지 이런 운동에 관심 갖는 스님도 드물고, 기증신청뿐 아니라, 확실한 원력을 세워 이타행의 길을 걷고자 하는 굳은 마음 보이는 봉사자나 일꾼도 드물다.
후원 회원으로 동록한 사람 수효는 적지 않지만, 고정 송금자는 월 이삼백 명에 지나지 않으니, 총재본부장, 이사, 운영위원들로 이루어진 스님들의 “회비”에 의지하는 면이 크다. 그러나 이런 일에 관심을 갖는 스님의 수효는 한정되어 있으니, 비슷한 일에 걸쳐진 인연도 적잖을 것이고 보면 피차 민망하고 버거운 일일 터였다.
골수기증 신청자야 대한적십자 병원과 관계하고 있는 일이니, 따로이 검사비를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신장 등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혀 오면 수혜 대상자와의 적합여부를 미리따져 보아야하는 만큼, 검사자를 지원해 주어야하고 기타 부대 비용도 꽤 든다. 수혜 대상자가 기증자의 것을 포함한 만만찮은 수술비를 부담할 형편이 되지 못하면 관련 국가 기관에 지원 요청을 해 주기도 하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이 곳에서 담당할 수밖에 없으니, 94년 이후로 그런 경우가 세 번 있었다.
유관 단체의 사정이 거의 비슷하지만, 직원들의 급여는 부양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만한 수준의 것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제 호주머니돈 터는 일도 적지 않다니, 동체대비 할 수 없는 보통사람들 생각으로는 과연 이 일이 언제까지 현실성있게 지속될 수 있을지 염려가 안될 수 없다.
그러나 법장스님이 생명 나눔실천회의 일을 맡고 있는 한 그럴 염려는 놓아버려도 될 듯하다. 스무살쯤될 무렵에 출가한 뒤로 법랍이 마흔이 가까와진 법장스님, 중앙종회 사무처장, 총무원의 사회 부장과 재무부장 소임을 맡아 탁월한 행정승의 면모를 보인 바 있다. 출가본사이자, 스무다섯 해쯤의 세월을 보낸 수덕사의 주지 소임을 맡은지도 벌써 다섯 해가 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신심과,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려는 뜨거운 원력과, 뜻을 이루어 가려 애쓰되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공심公心을 바탕으로 하되, 여법하면서도 푸근하다. 청산의 자리에 앉을 몸은 아니지만 그 자리를 흠모하여 납자들을 정성껏 외호하고, 백운의 자리를 지키되 제 소임에 대한 자긍심이 두터우니 당당하다. 바탕이 이와 같으니 생명 나눔 실천회는, 도모하려는 바가 옳아도 우두머리가 자주갈리어 중도에 뜻이 꺾이고 마는 여느 단체와는 다를 터였다.
그는 나날의 절반 이상을 수덕사의 처소가 아닌 길 위에서 보낸다. 재화, 건강, 학식, 명예 따위는 중생이 한결같이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닌 사람이나 그러지 못한 사람이나, 묘하게도 헐떡거리기는 모두 한가지이니, 그 마음 쉬게 해 주려고 늘 바삐 지낸다. 그로서도 일신을 편히 쉬어 두고 싶은 맘 왜 없겠는가. 그러나 한밥중이라도 그의 도움 청하는 데 있으면 그 마음 말짱하게 사라진다. 그것이 길 위에서 길(道)을 얻을 이치이겠으나 그러리라 미리 헤아려 행해 본 바 없다.
법장스님, 그 자신 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중증심근경색증으로 쓰러져 스무 날 가까이 산소 마스크를 쓰고 누웠다가 일어났다. 요즘도 그래서 한 달에 두번씩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고 있으나, 심장의 오분의 일쯤이 굳어 있는 몸인 까닭이다.
“길 위에서 쓰러질 조건을 맞춤하게 갖춘 몸”이라 했다.
남편은 밖으로만 나돌고, 핏줄 하나 생산하지 못히여 말년이 쓸쓸했던 할머니, 열일곱 범강장달이 같던 아들을 오토바이 사고로 앞세우고, 그 횡액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힘겨웠음에도 아들에 뒤이어 자신도 장기 기증신청을 한 택시 기사가 있었다. 많이 배운 사람, 많이 가진 자보다 못 배우고 지닌 것 없는 사람이 도에 이르기 훨씬 가까움은 고금의 진리이다. 이 일을 하면서 법장스님 다시금 확인한다. 울산서 장사하던 할머니, 여태까지 대충 살았으나, 이제 내 몸은 내 몸아닌 남의 몸이니 마음과 몸을 정결히 간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겹게 일을 꾸려 나가는 스님은 이 일이 단순한 장기 기증운동의 차원의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의식을 새로운 차원의 것으로 바꿔 놓기도 하는 정신 운동임을 새삼 깨닫는다.
귀근왈정, 삼라만상이 이 이치를 새삼스럽게 깨우쳐 주는 가을, 새롭게 읽어야 할 말씀 하나 였다.
전륜왕으로서 칠보가 구족된 사천하의 왕이 된 마하 보살에게 수많은 가난한 사람이 제각기 구함이 있었으니, 수족과 피와 염통, 허파, 머리, 눈, 골수를 달라한다. 보살은 생각한다. “모든 은혜와 애정은 반드시 떠나는 것이고, 중생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한다. 나는 이제 탐욕과 애정을 영원히 버리고 서로 이별하고야 말 온갖 것으로써 중생의 소원을 들어 주리라.” 그리하여 모든 것 베풀어 주고, 뉘우치는 마음도 없고 혐오와 마음도 내지 아니 하나니, 이것을 ‘일체보시’라 한다.
화엄경, 십무진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