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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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현진
2000년 07월 221호
지난 가을 이곳 관음사에서 산사음악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지역의 불자들과 시민들이 참여하여 국악의 선율 속에 치루어진 음악회는 은은한 가을 밤을 추억과 감동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특히 산사의 분위기와 가을의 정서는 더할 수 없는 훌륭한 공간과 배경이 되었다는 점이다. 음악이라는 장르를 통해 모두가 한마음이 되고 축제 한마당을 이루어 낸 것이다.
산사 음악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도심 사찰의 역할과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다양한 포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동안 일부 사찰을 제외하고는 수행과 법회를 통한 전통적인 포교 방법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산사 음악회는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열린 사찰로서의 가능성과 문화를 통한 포교의 한 형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관음사의 경우 도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산중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점을 장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불자들에게는 수행과 기도의 공간으로, 지역 주민들에게는 쉼터의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적정처寂靜處로서 가장 안성맞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열린 사찰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공간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방법이 될 것 같았다. 종교적 거부감을 줄이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재는 음악이고 그 음악을 통해 마음의 벽이 해소되고, 사찰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이점이 있다. 이러한 일로 도심 사찰의 또 다른 포교의 한 형태로 자리매김 하였고 몇 배의 부가 가치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우리문화에 눈을 돌리고 특히 불교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앞으로 인간의 삶은 문화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삶의 의미도 문화 인프라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의 입장에서는 문화의 세기는 포교의 기회나 다름없다. 우리의 다양한 형태의 불교 문화를 통해 접근한다면 잠재된 불교 인구를 한 자리에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빔비사라왕이 최초도 죽림정사를 기증할 때 사찰의 입지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도시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니까 사찰의 역할은 수행과 청법請法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오랫동안 머무셨던 기원정사도 사위성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번잡함을 피하고 수행과 걸식에 용의한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신도들의 청법을 우선으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죽림정사가 있었던 자리는 왕사 성터와 멀지 않으며 온천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경전에도 죽림정사에는 욕탕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부처님 당시에도 온천이 있었을 것이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수행하는 곳을 정사精舍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온천에서 몸을 씻으며 육신의 때와 마음의 때를 깨끗이 닦았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닦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정사라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부처님 당시의 절은 출가자들의 수행공간으로서의 역할과 재가자를 배려한 포교공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절의 위치 역시 수행자의 정진과 재가자의 청법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곳에 지어져야 이상적인 형태였다.
불국사 또한 신라의 서라벌에서 멀지 않았다고 한다. 불국사에서 신남신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종소리를 듣고 달빛을 즐겼다는 기록으로 보아서, 사찰은 민중들의 숨소리와 함께 하는 이웃집 같은 곳이었을 게다. 번뇌를 맑히는 수행처로, 때로는 공원과 같은 쉼터로, 연인들의 약속 장소로, 탑돌이 하는 문화 공간으로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천여 년 전의 이러한 상황이 오늘날에도 재현되어야 사찰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다면 이 시대의 죽림정사나 다름없다.
최근 서울의 한 사찰에서는 동자승이나 달마스님을 주제로 캐릭터를 개발해 전시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필통이나 연필 등 여러 가지 상품들에 동자승의 모습과 달마스님의 모습 등이 친근하게 표현되어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완주의 한 사찰에서는 고전적인 비천상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캐릭터로 만들어 티셔츠에 새기고 월드컵 마스코트로 활용한다는 소식도 있다. 또한 큰 스님 초청 법회나 학술 세미나가 그 절의 전유물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 영역에 속할 수 있도록 인터넷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기고 한다. 그리고 동자승을 그리는 인기 있는 스님도 있으며, 베스트 셀러 작가로 이름 알려진 외국인 스님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은 달라진 불교의 모습이며 문화와 접목된 사찰의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기존의 포교방식과 다른 유형이다. 이러한 일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불교와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일반인들에게는 호감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어느 포교당은 실직자 가족까지 지원하는 보시 서비스 제공을 통하여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다. 이처럼 불교를 알리는 방법과 사찰의 기능에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사회적 힘은 제3섹터에 얼마만큼 기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국가 부문과 시장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활동을 불교가 맡아야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 환경, 통일 분야에 대안을 제시하고 적극적 방법을 모색하고 그 구심점은 그 지역 사찰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승한 공양은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것이라는 화엄경의 가르침처럼, 중생을 저버린 사찰의 역할은 생명이 없는 구조물에 불과하다.
산중이건 도심이건 그 사찰이 존재하는 것은 중생이 있기 때문이다. 중생이 중심이 되는 사찰로서의 기능으로 전환해야 비로소 절답다. 절이 절다운 것은 중생들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을 때 더욱 돋보이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