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계율을 익혀 받아 지닐 뿐 아니라 보호하고 파괴되지 않도록 수호하는 일이다. 계율이란 개인의 첫 수행의 시작이자 승가의 안녕과 화합의 필수요소이며 법이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경·율·론과 조사어록을 널리 배워 다학 박식해야 하며 그 내용을 늘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불법학습으로 괴로움의 해결을 위한 바른 길을 학습하는 것이니 생사의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원願으로서의 발보리심과 발보리심을 성취시키는 원동력으로서의 신심을 일으켜 수행의 길을 배우는 것이다. 이는 또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니 불법학습은 바로 이러한 정견正見을 세워 자타自他의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배움을 익히는 것이다. 강원의 활성화가 이런 점에서 필요하다 하겠다.
셋째, 선지식이 되어야 한다. 승려의 기본의무는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잘 지도하여 피안으로 이끄는 것이니, 좋은 스승 즉 선지식이 되어야 한다.
넷째, 좋은 벗이 되며 도반으로서 모임을 이루도록 해야한다.
좋은 벗이 되어야 하는 것은 서로간에 수행체험을 교류할 수 있고 격려와 용기를 얻을 수 있어 서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도반으로서 모임을 이루어 영적靈的교류의 장場을 형성하는 것은 수행이란 서로 어울리면서 수행하면 게으름이나 거친 감성을 부드럽게 하고 도반의 영향으로 번뇌를 조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좋은 도반들끼리 모여 수행에 도움이 되는 의견교환을 함으로써 승가나 속세의 공익에 이바지하는 바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혜결사定慧結社와 같은 결사結社운동을 하거나 인권문제나 환경문제에 적극 참여하여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되는 장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죄업을 참회함은 대중의 화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승가의 결속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위해 참회한다면 보살의 대비행으로 보리심이 개발된다.
여섯째, 앞의 네 가지는 내적 수행을 돕는 외적 환경이 되어준다. 따라서 안으로 간화선을 하든 수식관을 하든 일상생활에 늘 회광반조하는 삶을 사는 것이 무명을 깨뜨리는 선정과 지혜를 개발하는 것이다. 만일 회광반조하는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밖의 대상에 끄달려서 갈등을 일으키고 허무와 절망을 맛보게 되어 안심입명安心立命하지 못하게 되는 후회가 뒤따르게 된다. 즉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피고, 내면을 관조觀照하는 이상 퇴굴치 않게 되니 이것이 곧 스님다운 수행자의 모습이다.
일곱째, 사치와 향락은 구도자의 길이 아니다. 이는 무지와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반드시 육체적 정신적 괴로움을 동반한다. 즉 모든 고통은 진리에 대한 무지와 집착에서 비롯된다. 집착을 깨뜨리는 방법은 욕심을 최소화하고 늘 만족함을 아는 생활이 필요하다. 이것이 스님다운 청빈한 소욕지족少欲知足하는 삶이다.
여덟째, 정념으로 일찍이 익히고 들었던 것을 기억하여 잊지 않는 일이다. 왜냐하면 불법에 대한 체험뿐만 아니라 위의威儀와 의식작법은 불법을 먼 후대까지 전승해 가려면 익히고 들었던 것을 잊지 않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라 하지만 과거시대나 현시대나 겉모습은 바뀌었을망정 번뇌가 일어나는 것은 똑같다. 때문에 여기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양하겠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승가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방법을 전승하는 것이다.
아홉째, 항상 정진해야 한다. 불법(眞理)은 앎에 속하지 않고 알지 못함에도 속하지 않으니 아는 것은 망상이요 알지 못함은 무기無記이기 때문이다. 이 정진은 회광반조廻光返照하는 길의 하나로서 악을 끓고 모든 선善을 행하여 선근을 많이 심는 방편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정진을 계속하면 정각正覺은 멀지 않다.
열째, 지혜를 개발하는 것이다. 일체 모든 것의 무상한 흥망성쇠興亡盛衰와 무아無我·공空을 바르게 아는 것은 반야지혜뿐이다. 이 반야지혜야말로 온갖 무명과 번뇌망상을 끓어 없애는 칼이며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는 배이며 내가(자기가) 본래 부처임을 아는 것이다.
열한번째, 구경각究竟覺을 이루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번뇌를 제거하여 무루無漏의 지혜를 얻어야 한다. 즉 감성적 번뇌인 갈애를 해탈하고 이성적 번뇌인 무명(無知), 즉 어리석음을 해탈하게 되면,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무애자재無碍自在함을 이루게 되어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발보리심의 출가정신을 지켜주고 신심을 일으켜 스님을 스님답게 하는 덕목을 살펴보았다. 일부 파계破戒하고 위의威儀가 실추된 승가가 있더라도 부처님 당시의 승가원칙이 확립되어 있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스님의 본분을 잘 지켜 스님다우려면 무엇보다도 배우고 따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발보리심의 출가정신을 잊어버리지 않고 신심으로 법다운 모습을 지니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선배스님이나 어른스님들의 보살핌이 있어야 하고 승가 전체가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