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횡석애의무로山橫石碍疑無路러니 조주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요?
만가지 법은 하나로 돌아가지만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아재청주我在靑州하야 작일령포삼作一領布衫하니 중칠근重七斤이라.
내가 청주땅에서 살 때 베 장삼 한 벌을 지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
만약 한 방에 대뜸 가야할 곳을 알면 천하 선지식들의 급소를 일시에 뚫어 버리더라도
납자들을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면 강을 이루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조주 스님의 발 밑에 있는 꼴이 될 것입니다. 불법의 핵심은 번잡스러운 언어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그 납자가 조주 스님에게 \"만법은 하나로 돌아 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라고 묻자.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베 장삼을 한벌 지었는데 그 무게가 읽곱 근이더라.\" 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만약 밑에서 이를 분별하고자 한다면 저울 눈금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함부로 저울질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울끈이 끊어져 버리면 무게를 달려고 해도
들어올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길래 저울 눈 보는 법을 제대로 알아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구語句를 분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또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 공안은 보기는 어려워도 알기는 쉬우며, 알기는 쉬워도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렵기로는 은산철벽이요. 쉽기로는 곧바로 뚜렷하여 비교한다거나 시비할 수 없습니다.
조주 스님은 경계를 가지고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사의 말씀은 궁극의 꼼짝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한 번 꿈쩍하여
자연스럽게 뒤덮었다고 할 것입니다.
조주 스님은 이렇게 말로 하기 힘든 어려운 깨달음의 경지를 말로써 아주 잘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제방에서는 조주 스님의 선풍을 \'구두피선口頭皮禪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는 조주 스님이 마당을 쓰는데 어떤 객승이 말을 걸어 왔습니다.
\"당신은 큰스님인데 왜 먼지를 쓰십니까?\"
이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비수가 들어 있는 말입니다.
즉 \'먼지\'는 티끌을 말하는 것으로 번뇌와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도를 많이 닦았다는 큰스님께서 왜 번뇌가 있느냐는 말이 됩니다.
\"티끌이 밖에서 왔다.\"
그러자 그 객승은 다시 대들 듯이 물었습니다.
\"깨끗한 수행 도량에 어찌 티끌이 있습니까?\"
본래는 깨끗한데 더러움이 밖에서 왔다고 하니까, 그러면 깨끗한 본성이 왜 오염되느냐는 말입니다.
자기 딴에는 매우 날카로운 지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주 스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맞아쳤습니다.
\"아이구, 여기에 큰 먼지 하나 날아왔네.\"
네 놈이 바로 번뇌를 만들어내는 먼지라는 말입니다. 객승은 졸지에
그 자리에서 큰 먼지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조주 스님은 그저 무심하게 자신의 언어로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낼뿐입니다.
정주 鼎州땅 문수응진文殊應眞화상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아황하구곡黃河九曲이니라.
황하는 아홉 굽이니라.\"
이처럼 \'만법귀일\'공안은 많은 선객들의 의심덩어리였습니다.
운봉분열 선사에게 어떤 잡자가 찾아와서 이를 또 물었습니다.
\"누군가 조주에게 묻기를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한뜻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선사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喝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어두운 납자는 그래도 감을 제대로 못잡고 어리둥절한 채로 있었습니다.
운봉선사는 이 납승에게 자비심으로 또 물었습니다.
\"그래! 조주가 뭐라고 대답했던가?\"
이 말에 그 납자가 또 \'청주포삼\' 어쩌구 하면서 입을 열려고 하는데
선사가 불자佛子로 입을 틀어막아 버렸던 것입니다.
도대체 만법은 한 곳으로 돌아가느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눈썹을 곧추세우고 활활 타는 불덩이처럼 화두와 함께 살아도 같이 살며 죽어도 같이 죽으며
갈 때도 같이 가고 머물 때도 같이 머물다가 홀연히 의심이 생기거든 겁내지 마십시오.
큰 싸움에 임한 듯 다른 것 돌아볼 틈 없이 올바른 경계이건 거슬리는 경계이건
만나거든 잘 조화시키십시오.
돌아갈 곳을 모르겠거든 다른 일을 해도 좋지마는 철산을 때려부수고 나서
보물창고에 걸터앉아 눈 깜박거리고 눈썹 치켜드는 것에 모든 기연機緣 다 나타낼 수 있으면
청주의 베옷은 일곱 근이지만 황하는 여전히 아홉 굽이일 것입니다.
황하구곡黃河九曲이요 칠근포삼七斤布衫이로다.
호마시북胡馬嘶北하고 월조소남越鳥巢南이로다.
납승흡도진상처衲僧恰到眞常處하면
어불기인면불참語不欺人面不慙이로다.
황하는 아홉 굽이요 베 장삼은 일곱 근이라.
오랑캐 나라의 말은 북풍에 우짖고
월나라의 새는 남쪽 가지에서 운다.
납자가 때마침 참되고 항상 한 경지에 이르러면
말로써 사람 속이지 않으매 얼굴 부끄러운 빛 없다.
시회 결제대중이여!
이 산승에게 누구가 물어온다면 이렇게 대답해 줄 것입니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기래끽반飢來喫飯하고 곤래수困來睡 하리라.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잘 것이니라.\"
억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