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스님의 법력이 그립습니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특집 - 김희균 1997년 10월 188호
스님! 꼭 스물두 해 전 이맘 때였습니다. 단풍이 곱게 물들던 어느 날 함께 불교를 공부하던 시람이 조만간 스님이 되러 가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낙엽이 스산하게 흩날리던 깊은 가을날 여러 사람의 축복을 받으면서 시정을 떠나갔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갈 차례였습니다. 저도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저는 신심이 매우 돈독했고, 불교의 궁극을 만나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 길을 가야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가을날 이후 스님이 되고자히는 마음 한켠에 두려움이 차오르곤 했습니다. ‘내가 끝내 온전한 불자로 부처님을 욕되게 하지 않고 절밥을 먹을 수 있을까. 가서 빈둥거리고 게으른 스님으로 남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두려움은 컸습니다.

출가! 불교를 믿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 보는 생각입니다. 살아 볼수록 뼈에 사무치는건 부처님께서 이루신 도를 성취하는 길 밖에는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허망한 세상에서 평생 도를 찾고 닦기 위해 스님 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속인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어서 더욱 동경의 대상이 되고도 남습니다.
이직도 이쪽세계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는걸 보면 절밥에 대한 책임감 이면에는 내가 인식하지 못했거나 떠나기 싫어한 또 다른 어떤 까닭이 도사리고 있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이제는 제가 발붙이고 사는 지금 이 속세에서 ‘갈수 있는 데까지’의식을 진화시켜 보자는 의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님! 스님께서는 이미 출가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도 ‘내가 만일 출가자의 길을 간다면…’ 하는 수많은 고민 끝에, 결연한 다짐 뒤에 그 길을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설사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스님이 되신 분일지라도 그분께서는 전생 아니면 전전생에 이 길을 이미 발원하셨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는 정말 그런 의미만으로도 스님들께선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저회는 법회 때마다 듣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를 뛰어넘기 위해 출가를 감행하셨노라’고. 불교서적 전반에서 흔히 볼수 있는 구절이고, 많은 분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지요. 스님께서 출가를 하신 뜻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스님들의 모습에서 그 초발심의 간절하고 다부졌던 원력이 잘보이지 않습니다.
스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요즘의 승단풍토를 탓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꽤 많은 스님의 모습에서 수행자의 법향法香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청정함도 간절함도 절박함도 보이지 않는다며 절망하는 신도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스님들을 비라보는 시각이 냉소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스님께서도 이미 아시는 일입니다. 이런 불만의 소리는 기실 승가내부에서도 쏟아지고 있는 줄 압니다.
스님 ! 여기서 저는 스님께 여쭙고 싶은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오늘날의 승가에 위계질서는 살아 있는 것입니까? 계율은 얼마나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까? 스님께서는 출가자 본연의 정신에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수행정진에 목숨을 걸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시정에 내려오셔도 물들지 않을 만큼 자내증自內證의 법력을 확보하고 계십니까?
스님! 감히 말씀드리건대 수행정신이 투철하지 않고서는 설혹 역사 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설득력과 실천력이 나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수행정신 없이 올바른 시각을 지닌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스님, 이 시정에서 세속인들과 똑같이 세속인의 마음으로 ‘세속 사업’ 에 몰두하고 계신 분들은 또 누구신지요? 심지어 총무원 부근(?)에도 재가신도와 한무리를 이루어 잡기雜技로 세월을 보내시는 스님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분들 마음속에 사심邪心과 사욕私慾이 자리잡고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그분들은 결국 옳게, 어렵게 공부하시는 많은 스님들께 폐해와 좌절을 안겨주고 말 것입니다. 그분들을 그저 역행보살쯤으로, 스님과 불교를 비방하는 중생들의 업력을 키워 주는 일 정도로 스쳐가면 그만일까요?
여기서 저는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지금 한국 불교는 도반이면서 도반에게, 선배이면서 후배에게 충고와 격려를 할수 있는 관계와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정능력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승가 정신에 투철하신 스님들마저도 허무주의 속에서 좌절과 절망만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는 정말이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오늘날의 승가정신이 올바로 정립되지 않은 혼돈스런 상태에서도 해마다 행자 교육을 통해 새로 탄생되는 스님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에 대한 미래는 또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지나요?
이 걱정스러운 승가의 모습이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 갈 수 있는 대안은 너무도 간단하고 명백합니다. 스님들 한분 한분이 철저한 수행정신, 수행자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이미 출가한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할 어떤 이유도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승단을 구하고 사회의 목탁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스님 한분 한분이 초발심의 원력으로 돌아가 실현하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부처님의 출가정신”, “스님 자신의 출가 정신” 그 하나에 목숨을 걸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스님! 하찮은 명분에 속지 마시고 수행정진에 목숨을 거십시오. 계율을 생명처럼 여기십시오 계율을 지키지 않고도 바른수행이 될 수 있되면 부처님께서 굳이 계율을 정하시고 생명처럼 여기라하셨을 리 만무합니다. 스님 한분 한분이, 승가공동체가 청정함을 담보했을 때만이 한국 불교는 빛니는 영광을 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처님 정신을 지켜 나가는 일이며 중생의 귀감이 됨은 물론 스님 된 보람을 찾으시는 일입니다.
스님께서는 ‘사업’ 에 손을 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업’ 이라는 말 자체가 세속사람들의 욕망을 채워 주는 도구가 아니던가요. 스님, 세속사람들은 정말 치열하게 산답니다. 가정과 직장을 오고 가며 이 불확실하고 험란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가엾을 지경이지요. 스님들의 고급스런 취미 생활과 잡기를 곱게 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워 종단분열을 일삼는 분들을 뵐 때는 극히 민망함을 느낍니다.
스님! 이제는 무엇을 또는 누구를 존중하는 시대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더욱 철저히 자기 점검을 해 가시는 모습을, 치열한 구도열과 청정함을 확보해 가시는 모습을 뵙고 싶습니다. 때로는 철저히 소승불교가 되십시오. 스님의 그런 모습을 뵙는 것만도 중생은 감화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왜 그런 구도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남의 말이 아닌, 스님 자신의 절절한 수행정신과 체험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보살정신이란 곧 그 절실함과 간절함이 농익은 뒤라야 발현된다고 들었습니다.
스물 두 해 전, 어느 가을날 떠나신 그 스님을 그 뒤로 한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어디선가 정말 열심히 정진하고 계시겠지요. 그런 분들이 적잖이 계시기에 저희는 결코 회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불법이 그릇될 리도 없습니다.
스님, 이 시정일랑 염려하지 마시고 저 산에 계신 분들처럼 정진에 매진하십시오. 서울조계사 앞에서 종로거리에서 스님을 뵐 수 없을 때는 저희가 산으로 찾아가 뵙겠습니다. 스님! 스님께서 시정의 어떤 모습과 일을 맞닥뜨려도 탐진치食輯梅 삼독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가 되시거든 시정에 나오십시오. 아니면 더 갈고 닦으십시오
스님 ! 지금 스님들께서 시정에 내려와 계시지만 한국 불교에 법력이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 것이 저회들의 슬픔입니다. 진정 저회는 삿됨이 벌벌 떨수있는 법력이 그립습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