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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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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은 경구 - 영덕 1997년 10월 188호
탑 위로 지는 해거름이 짧다. 귓전을 지나는 바람이 스산하다. 마지막 갈무리를 위한 손길은 나직나직 바쁘고, 돌아가야 할 곳을 아는 발길은 허둥거린다. 마음 가득차 오르는 풍요로움이 있는가 하면 밑을 알 수 없는 깊은 적막과 긴 겨울에 대한 예감으로 고개를 숙인다. 만추晩秋라는 한마디 말에 산하대지의 희로애락이 예년보다 골 깊게 들어온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물의 입장을 이해하는 밑변이 넓어지는 것인가보다. 이른 봄비에 촉촉하게 젖은 나목을 바라보며 경이로워 했는데 다시 체로금풍體露金風을 응시하며 숙연해진다. 한해 한해 해가 간다. 이승에 살다 가는 날이 잠깐어련만 하루해를 보낸 뒤 남은 후회로 뒤척인다. 덜어지고 덜어져서 묵묵담담해져야 하련만, 넓어지는 면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입장을 주장할 때에는 철저하게 이기적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막힌 부분에서 참회가 시작되고 더 넓은 마음으로 나아가려 애쓰며 오늘도 하루를 살았다. “사는 게 별거간디…… 이렇게 사는겨. 아침에 치문반 스님을 너무 심하게 야단친 건 잘못한 일인 것 같어. 하루종일 마음에 걸려 편치가 않어. 잘하라고 그러했지만 그것도 내 욕심일 뿐이지. 왜 이렇게 강강해지는지 모르겠어? 옹송거리는 속을 풀어내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냄새 많이 나지? 구수한데요 뭘.’
‘구수? 후후…… 구수라 저는 이따금 속이 답덥할 때면 거름뱉에 나가서 심호흡을 해요. 그러고나면 기분이 편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져요. 이 냄새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데요.’ 파란하늘을 이고 앉아 아침 일찍부터 은행을 주웠더니 아무리 손을 씻어도 예의 구수한 내음이 남아 있다. 사교, 화엄반 때도 남보다 일찍 나와 은행을 주운적이 있다. 나도 은행에서 나는 거름 내음을 좋아했나 보다. 그해 가장 먼저 주운 것으로 후원 조왕님께 천신 올리고 어른 스님께 구워드린 다음 열심히 은행잎을 모았다. 한주먹씩 모이면 새벽바람만 씌어도 기침을 하며 가슴을 눌러야하는 같은 반 스님 책상 서랍 속에 넣어 주곤 했다. 은행이 폐와 기관지에 약이 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예년에 없이 은행이 많이 떨어지지만 한번 떠나간 스님들은 소식이 없다.
겨울이 일찍 오는 곳. 남쪽 유리창밖 잎진 미루나무 가지에 까치집이 걸려 있었다. 바람을 타며 늘 위태해 보였고 하얗게 내린 무서리를 밟고 교무실에 들어서면 「불유교경」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였고 「유교경」을 접으며 하루를 마감하였다. 내 옆의 총각선생님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 시절 왜 그렇게 열심히 「유교경」을 읽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다. 군포교용으로 나온 누런 표지에 기초교리와 「불유교경」이라고 적힌 그 책을 닳을 때까지 갖고 다니다가 훌쩍 출가하였다.

낮에는 부지런히 착한 법을 닦아 익히고, 밤중에는 경전을 읽어라. 잠만 잠으로써 나날을 아무 소득 없이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언제나 덧없는 불길이 온 세상을 불사르고 있음을 생각하여 빨리 자신을 구제할 것이며 부디 깨어 있으라!
부끄러움의 옷은 모든 장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다.
참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용기 있는 대장부라 할 수 있다. 성내는 마음은 사나운 불꽃보다 더 무서운 것이니, 늘 막고 지켜 마음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공덕을 빼앗는 도둑으로는 성냄보다 더한 것은 없다.
굽히어 아첨하는 마음은 도와는 어긋나는 것이니 그 마음을 순박하고 정직하게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음을 단정히 하고 순박하고 정직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듯하지만 사실은 부유하다. 「불유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