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45 작전
l0·27 법난은, 잘 알다시피, 80년 10월 27일 무장한 계엄군이 새벽 4시를 기해 전국의 주요 사찰을 일제히 침입하여,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월주스님을 비롯하여 전 총무원장 송원스님, 도선사주지 혜성스님, 제주도 관음사 주지 지선스님, 낙산사 주지 원철스님, 동화사 주지 의현스님 등 46명에 이르는 주요 스님들을 강제로 연행해 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때에 개운사 주지 직을 겸하고 있던 월주스님은 계엄군에 불잡혀 조계사로 끌려가 총무원 사무를 일단 정리하고, 오전 9시쯤에 군 수사대로 연행되어 그곳에서 23일 동안조사를 받고 나서 총무원장직과 개운사 주지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행되어 간 스님들이 받은 수모와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며, 많은 스님들이 고문까지 받으니 원철스님 같은 분은 그 후유증으로 입적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계엄군은 각 사찰의 주지와 총무, 재무 관계자들의 방을 마구 뒤져 사찰의 서류와 예금통장을 압수해 갔다.
다음 날 계엄군은 \"불교 내에서 각종 비리와 부패, 범법행위를 일삼아 온 사이비 승려 및 상습폭력배 등 46명을 연행,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동기에 대해서는 \"불교는 민족전통 종교로서 민족정기와 주체의식을 함양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 국민의 정신 영역을 계도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부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사이비 승려와 폭력배들이 난무, 발호하는 비리지대로 화하여 뜻있는 성직자나 신도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지탄과 빈축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에 계엄당국은 과감한 숙정과 정화조치를 단행하면서도, 종교가 지니는 특수성과 독자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불교계 자체의 자율적 정화와 숙정이 있기를 기대해 왔던 것이나,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여도 아무런 자체 정화의 움직임이나 효과를 나타내지 못할 뿐 아니라 자력으로는 도저히 갱생의 힘이 없는 것으로 판단, 부득이 사회정화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종권을 장악하기 위한 파벌간의 암투와 폭력에 의한 강점과 폭력의 자행, 승단내외 폭력 및 상해 행위 빈발, 사원의 병역기피자, 폭력사범, 사기 횡령자같은 전과자의 도피 은신처화, 음주와 사음 등의 퇴폐 행위를 자행하는 일부 사이비 승려, 수도 생활의 기피 또는 환속과 입산을 반복하며 사찰을 생활터전화 하거나 승려 생활을 치부의 수단화하는 것, 사찰 재산의 착복, 각종 불사를 빙자한 부정행위 등등, 모두 열두개 항목에 걸쳐 주요 조사내용을 밝혔다. 이와 같은 계엄사의 발표가 제도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니, 일반 국민에게는 불교가 마치 부패와 타락의 온상인 듯이 비치게 되었다.
이어 10월30일에는 군-경합동으로 사찰 내의 용공분자 및 범법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조계종, 태고종을 비롯한 l8개 종단에 속한 전국의 3,000여 사찰을 일제히 침입하여 수색하였다 이 날까지 강제로 연행된 사람의 수효는 스님과 신도가 55명, 참고인 98명으로 모두 153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1월 14일, 계엄사는 비리와 관련되었다는 승려 10명과 일반인 8명을 구속하고, 불교정화 중흥회의(10월 27일과 30일 사태 직후에 조계종 원로 스님들로 구성한 모임)로 하여금 스님 32명의 승적을 박탈하여 종직을 사퇴하도록 하였으며, 범죄 혐의가 없는 5명은 훈방하였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계엄사는 또 승려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사유화한 재산이 2백억 6천만원에 이른다고 하면서 이를 종단에 귀속시키고, 앞으로 5년 동안 불교주변에 기생하는 깡패, 상습 사기배 등에 대하여 계속 단속할 것도 발표했다.
10·27 법난이 일어난 원인
불교에 이같은 전대미문의 수치를 안겨다 준 10.27 법난은 정말, 정부의 발표처럼 불교계가 사이비 승려와 폭력배들이 난무하는 비리 지대로 화하여 국민으로부터 지탄받고 빈축를 사는 대상이 되어서 일어난 것인가?
결코 아니다. 11월 14일, 수사 발표 직후에, 계엄사의 한 관계자가 원로 스님들을 모아 놓고 불교계 내부가 밖에서 듣던 바와 같이 부패한 것은 아니다. 앞서의 사태로 불교의 반공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불교가 타격을 입고 불교 신도들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불교계에 획기적인 발전책이 강구된다는 것들을 요지로 한 조사보고서를 상부에 올렸음을 밝혔다고 한다. 이한 곧 계엄사의 X-45 작전은 실패이거나 판단착오였다고 자인하는 모습이었다. 그뿐 아니라, 부산 대각사의 경우 스님(김 용오, 12대 국회의원)과 도선사의 혜성스님이 190억원을 축재하였다는 발표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리고 정부당국의 불교정화조치(?)는 11월 14일의 계엄사의 수사발표를 끝으로 종결되었다. 그러니 5년 동안 단속을 계속하겠다던 발표도 빈 말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네들의 표현대로 민족 전통 종교인 불교에 뚜렷한 근거도 없이 이토록 엄청난 범죄로써 화를 입힌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 무렵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당시의 권력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80년은 18년 동안 계속된 박정희 독재정권이 마침내 청산되고 온 나라에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때였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과 역사의 열망을 5. 17 쿠테타로 짓밟고 광주양민을 학살함으로써 들어선 정권은 국민의 환심을 사는 한편 체제를 개편하기 위하여, 과외공부금지, 대학정원 확대, 공무원 숙정, 부정축재자 처벌, 부실기업 정리, 사회악 일소 따위의, 이른바 ‘사회정화조치’라는 즉흥적이고도 탄압적인 조치를 취하였는데 10.27 법난도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곧 부도덕하고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 국민의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사회를 개혁한다는 기만책을 편 것이며, 그 많은 피해자중에 불교가 포함된 것이다.
그 무렵 불교계는 종정중심체제 주장측(조계사)과 총무원장중심 종회측(개운사)이 합의하여 4월 26일과 27일에 걸친 제6대 중앙총회에서의 총선을 통해 총무원장과 종회 의장단을 선출하였다. 총무원장에 선출된 월주스님은 곧바로 기자 회견을 갖고, \"불교의 자율을 위해서는 불교재산관리법, 공원법 등의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소신을 피력하고, 이어 8월 14일에는 불교관계법개정 5인 추진위를 구성하여 9월 17일에 그것의 개정 시안을 문공부에 제출하였다. 곧, \"아무런 자체정화의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판단 …\" 운운한 계엄사의 발표와는 달리 새 종단은 불교 발전을 위한 의욕적인 출발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해 8월에 전두환 정권에 대한 지지 성명을 내달라는 요청이, 다른 사회 각계에게도 있었듯이, 두 차례나 있었으나 조계종은 그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이는 그 무렵 불교계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불교를 지향하는 기운이 얼마나 드높았던가를 뚜렷이 입증해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불교 내부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10.27 법난에도 불교계에서 보낸 투서가 작용한 바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더라도, 10.27 법난이 분명히 한국 불교의 민주화 및 자주화 움직임에 대한 쐐기박음이요, 민족종교에 대한 몰상식하고 가증스러운 탄압이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꼭 풀어야 힐 숙제
10·27 법난과 같은 해에 일어났던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조사가 곧 본격화될 전망이다. 아울러 제 5공화국 비리에 대한 조사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모두가 지난 역사를 올바로 평가하고, 그를 토대로 자주, 민주, 통일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확고한 의지의 소산이다.
이제 곧 10·27 법난 8주기를 맞는다. 그동안 진상 규명과 정부의 사과 및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며 규탄해 온 목소리가 결코 작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매번 곤봉과 최루탄과 구속으로 맞서 왔을 뿐, 아무런 해명도 없었다. 동시대를 사는 불자로서 이 치욕스러운 사태를 해명하지 못하고는 하루도 불자임을 자부할 수 없는 터에, 정세가 어느 정도 객관성을 띤 지금과 같은 호기를 우리는 놓칠 수 없다.
우리의 역량 또한 적은 것은 아니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8·15 남북불자공동기원법회에 함께한 단체만도 40여 개가 넘었고, 10·27법난에 대한 불교인의 공분 또한 충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하여 나아간다면 법난의 치욕을 씻겠다는 우리의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법난의 피해 당사자들이 과감히 그때의 상황을 증언하고 또한 그에 대해 항의해야할 것이며, 종단은 모든 사실을 취합하여 정확한 진상 규명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모든 불자들이 10·27 법난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럼으로써 불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떨쳐 일어나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