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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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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8년 10월 80호
점례는 판순이와 함께 이집저집 기웃거렸다. 그러나 대문은 모두 굳게 잠겨 있고 어찌할 수 없었다.
둘은 큰집들을 다 지나쳐 버리고 개천가 굴다리 쪽으로 갔다. 거기엔 시골장터 가게처럼 다닥다닥 붙은 작은 천막과 판잣집들이 널려 있었다.
양철로 만든 풍로에다 생석탄을 피워 코우크스를 만들고 있었다. 어떤 집은 벌써 석탄의 검은 연기를 모두 태우고는 새빨간 코우크스(석탄숯불)불에다 남비를 얹어 놓고 죽을 끓이고 있었다.
둘은 같이 멈춰서서 둘레를 바라보았다.
\"너희들 왜 거기 서있냐?\"
가까이 천막 앞에서 열심히 풍로에 부채질을 하던 늙수구레한 아저씨 한분이 물었다.
판순이가 조금 망서리다가 아저씨에게 말씀드렸다.
\"저희들은 피난왔어요.\"
\"그래, 나도 피난민이야.\"
아저씨는 판순이와 점례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럼, 너희들은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왔단 말이니?\"
아저씨가 딱하다는 듯이 물었다.
\"우린 고향에 가려고 나왔어요. 고향에 가서 우리끼리 살고 싶어요.\"
\"고향엘 어떻게 간다는 거냐? 고향은 지금 한창 전쟁중이야.\"
\"전쟁 중엔 고향에 가선 안 되어요?\"
점례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전쟁 때문에 쫓겨왔는데, 어떻게 도로 전쟁 속으로 간단 말이니.\"
\"……\"
판순이도 기운이 쑥 빠져 다리가 떨렸다. 다리뿐만 아니라 손과 발과 얼굴이며 온 몸이 추워서 벌벌 떨렸다.
\"그래, 너희 앞 못보는 동생은 어디에 있니?\"
\"저쪽 큰길 모퉁이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점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어서 가서 데려오너라. 여기 내가 밀가루수제비를 만들테니 같이 먹도록 하자.\"
둘은 고개를 숙인 채 꼬불꼬불 길을 돌아 점득이 한테로 갔다.
모퉁이 담자락에 점득이가 기대어 앉아 있고 기만이는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왜 이제야 왔어.’‘
점득이는 꽤 긴 시간 동안 기다린 것만 같았다.
\"아니야 아직 반시간도 안됐다. 어서 저쪽으로 가자.\"
그 움막동네로 왔을 때, 아저씨는 까말게 그을린 커다란 양철통에 이미 수제비를 가득 끓여놓고 있었다. 아저씨는 이웃집에서 숟가락과 양재기 그릇을 빌려와서 수제비 국을 떠서 나누었다.
\"박씨는 어제 받아온 밀가루 다 털어서 거지들을 먹이는 구려, 쯧쯧.\"
석탄가루가 온 몸에 시커멓게 묻은 한 아주머니가 건너다보며 혀를 찼다. 점득이와 판순이, 점례 가슴이 뜨끔하게 찔렸다.
\" … 거지들을 먹이는구려 … \"
결국 아이들은 거지가 되어 있었다.
\"쓸데없는 참견 말아요. 피난 온 사람, 거지 아닌 게 어디 있답디까?\"
박씨 아저씨는 아이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너그럽게 웃었다.
비좁은 움막 안에 다 들어갈 수 없어 아저씨는 거적문 밖에 엉거주춤 앉아서 수제비 국을 먹었다. 따뜻한 수제비 국을 먹고 나니까 마음과 몸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점례가 빈 그릇을 씻으려고 물을 찾았다.
\"그냥 두어라. 물은 조금 뒤에야 나올 텐데 그때 받아와서 씻으면 된다.\"
점례는 포개어 들었던 빈 그릇을 도로 놓았다.
\"너희들, 이 아저씨 말대로 해야 한다.\"
박씨 아저씨는 잡도리를 하고 앉아 말을 꺼내었다.
\"……\"
아이들은 금방 마음이 굳어졌다.
\"어서 일어나 고아원으로 돌아가거라.\"
\"예?\"
\"고아원 안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은 짐작으로 알겠다만, 그러나 바깥은 더 어렵다는 걸 너희들은 모르는구나.\"
\"자 어서 일어나 가거라.\"
\"아저씨---\"
\"뭐야?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냐?\"
\"차라리 우련 거지가 되겠어요.\"
점례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다부지게 말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자고 어디서 먹고 무얼 하겠다는 거야\"
\"우리한 우리 손으로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판자집도 지을 거예요. 그리고 석탄 장사도 할 거예요. 동진이 오빠도 고아원을 나왔어요. 그리고 천수도 차라리 거지가 되겠다고 달아났어요. 장 목사님도 우리를 두고 떠나셨어요. 아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다 떠나고 있어요.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살핀다고 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을 이용하고 학대하고 있어요. 팔아먹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병신도 만들고…\"
점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자꾸자꾸 쏟아져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판순이네 할머니도 오빠도 우리 엄마도 비행기 폭격으로 죽었어요. 아버지는 소련군의 총에 맞아 죽고, 점득이는 눈을 잃었어요. 우린 어른들을 믿지 않아요. 우리끼리 살아갈 거예요. 아저씨가 걱정 않으셔도 되어요.\"
점례는 일어나 점득이 손을 참아 얼으켰다.
\"자 나가자.\"
그러나 박씨 아저씨는 일어서는 점득이의 다른 쪽 손을 붙잡았다.
\"가려면 너희들만 가라! 점득이와 기만이는 내가 고아원에 데리고 갈 테다.\"
\"안 되어요, 점득인 고아원에 가면 죽을 거예요.\"
점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박씨 아저씨는 점득이 손을 놓았다.
\"그래, 점례 말이 모두 맞다. 어른들은 모두 벼락이라도 맞고 없어져야 해.\"
아저씨는 일어났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 보아라.\"
그러고 나서 덧붙여 말했다.
\"만약 안 되거든 고아원으로 가든지 아니면 나한테 다시 오너라.\"
박씨 아저씨는 움막에 기대어 세워뒀던 빈지게를 지고 둑길로 올라갔다.
아저씨가 나간 뒤, 아까 밀가루를 거지들에게 다 먹인다고 나무라던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너희들, 저 아저씨 말씀대로 따르는 게 좋았어. 그래, 서로가 잡아먹으려는 세상에 도도 개도 아닌 너희들에게 수제비 국 끓여 먹이는 어른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해.\"
아주머니는 꾸짖듯이 나무라는 것이었다.
\"아주머니 잘못했어요. 하지만 고아원에는 죽어도 돌아가기가 싫어요. 그러니까 저희들도 이 근처에 움막이라도 짓고 살게 해 주셔요. 무슨 일이라도 하겠어요.\"
점례가 아주머니의 그 시커먼 옷차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리로 와봐.\"
아주머니가 돌아서서 개천가를 걸어갔다.
‘판순아 넌 점득이랑 기만이 데리고 여기서 기다려.\"
\"아니야 점득이하고 기만이만 예서 기다려. 나도 따라가 볼께.\"
판순이는 점득이와 기만이의 손을 끌어다 잡아주고는 얼른 아주머니 뒤를 따랐다. 꼬불꼬불 움막집 사이를 돌아서가니 쓰레기더미가 쌓인 자리가 있었다.
\"자 이 쓰레기를 저쪽 다리 밑 구석에다 옮기고 집을 짓도록 해라.\"
아주머니는 말하면서 쓰레기를 두손으로 한아름 안았다. 똥덩이도 있고 죽은 쥐도 있고, 녹슨 깡통이랑 온갖 잡동사니로 된 쓰레기는 참 더러웠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더럽다는 눈치는 조금도 없이 끌어안고 다리 밑 구석으로 가지고 가서 버렸다.
점례는 이를 꼭 물었다. 박씨 아저씨께 무엇이든지 한다고 다짐했으니 이것도 망설여서는 안 된다고. 점례가 치마를 벌려 쓰레기를 끌어 담자 판순이도 얼른 그렇게 쓰레기를 퍼담았다.
다리 밑 구석에 쓰레기를 버리자 그곳의 움집에서 한 아주머니가 내다봤다.
\"여기 쓰레기 버리는 게 누구얏!\"
아주머니는 화가 난 모양이다.
\"미안합니다. 저기 빈자리에 움집을 지으려니 쓰레기를 치워야 해서 그렇습니다.\"
이쪽 아주머니가 부드럽게 사과했다.
\"하지만 남의 집 앞에다 가져오면 어떻게 하나요? 다른 데로 가져 가셔요.\"
다리 밑 아주머니는 여전히 화를 내고 있었다.
\"여기밖에 다른 곳에 버릴 데가 없읍니다. 집 앞이라도 이만큼 떨어진 곳이니 양해해 주십시오.\"
그러는데, 움막 안에서 얼굴을 내밀고 누가 내다봤다. 머리칼이 하얗게 센 할머니였다.
\"얘야 어쩔 수 있냐? 다 같은 피난민인데 불편해도 함께 살아야지.\"
할머니가 부드럽게 타일렀다. 판순이는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했다. 고향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이쪽구석에다 잘 모아둘 테니 너무 걱정 마셔요.\"
쓰레기더미는 한 시간 뒤에 깨끗이 옮겨졌다.
\"너희들은 가서 나무토막이든 양철 조각이든 있는 대로 주워오너라.\"
점례와 판순이는 거리로 나갔다.
\"점례야, 천사의 집으로 갈까? 못하고 나무쪽을 훔쳐오면 되잖니.\"
\"안돼. 들키면 좋지 못해.\"
둘은 기차정거장 근처의 철둑길로 갔다. 철조망이 쳐져있는 그곳은 근처가 시커멓게 더러웠다. 통나무들이 가득하고 한쪽에는 낡은 침목도 쌓였지만 아무도 얼씬 못하고 있었다. 철길을 돌아나와 변두리 먼 곳으로 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어디를 가나 피난민들로 구석구석마다 빈틈이 없었다. 빈깡통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자르고 펼쳐 조각조각 이어 지붕을 덮고 마분지로 벽을 싼 마분지집도 있었다.
둘은 힘없이 박씨 아저씨네 움막으로 돌아왔다. 겨우 찢어진 지우산 하나와 녹이 슨 구멍투성이 함석조각 세 개를 주워왔다.
\"너희들 애썼구나. 이제 살아가기 힘들다는 걸 알 수 있겠지? 거지노릇도 이런 야박한 세상에서는 할 수 없단다. 내일부터 당장 일을 하도록 해라.\"
박씨 아저씨는 점례와 판순이를 데리고 아까 쓰레기 더미를 치워놓은 곳으로 갔다. 거기엔 군용 천막천으로 어설프게 세워놓은 천막이 있었다.
\"이것 누가 만든 집이예요?\"
점례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것 박씨 아저씨가 오늘 번 돈으로 헌것을 사서 대강 지은 너희들 집이다. 앞으로 너희들이 지붕도 바닥도 손질을 더 해야 할 게다.\"
석탄가루 아주머니가 가르쳐 줬다.
\"아저씨…\"
점례는 정말 목이 메었다. 판순이도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하루종일 추위에 떨면서 애쓰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고아원에서 나올 때 헌옷가지라도 싸가지고 왔으면 싶어 후회스러웠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낭 뛰쳐나와 고향으로 가겠다고 한 어리석은 생각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날 밤 점례와 판순이는 새로 지은 움막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갔다. 점득이와 기만이는 박씨 아저씨네 움막에서 꾸부린 채 밤을 새웠다. 찬바람이 움막 틈바구니로 새어들어와 아무리 웅크리고 부둥켜안아도 추워서 덜덜 떨렸다.
판순이는 점례의 머리를 제 가슴에 꼭 안아주면서 마치 아기한테 하듯이 다독였다. 나이 한살 적으면서 키는 점례보다 조금 큰 판순이는 점례보다 마음이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정말 그래서인 듯 판순이는 어려운 일을 더 많이 앞장서서 해나갔다.
이튿날부터 점례와 판순이는 석탄가루 아주머니를 따라 석탄장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이른 새벽에 나가 석탄장수들이 비밀로 뚫어 놓은 기차정거장 철조망 구멍에서 화부들이 건네주는 석탄부대를 약속된 돈과 바꾸는 것이었다. 이날, 아주머니는 석탄 두 부대를 더 받아놓았다. 날이 밝으면 철도직원들 눈에 뜨이기 때문에 어두운 새벽에 자루를 다 옮겨야 했다.
석탄장수 여인들은 한없이 많았다. 그 여인들은 거의가 피난 온 아주머니와 할머니와 처녀들이었다. 시커멓게 물들인 헌 군복을 걸레처럼 기워 입은 여자들은 석탄부대를 이고 골목마다 석탄을 사라고 외치며 다녔다. 힘이 들고 어려운 대신에 이익금이 세곱절이나 되어 열심히 하면 돈을 모을 수도 있었다.
점례와 판순이가 아침에 움막 밖으로 나갔더니 두 개의 석탄부대가 놓여 있었다.
\"자, 이것 하나씩 이고 팔러 가거라. 아침은 팔고 와서 너희들이 손수 지어먹어라.\"
아주머니는 부드럽지만 차갑게 말했다. 그러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피난 온 사람들은 함경도 꼭대기에서부터 황해도 강원도 밑에까지 여러 곳 사람이 모두 뒤섞였지만 서로가 어렵기 때문에 이끌고 떼밀며 살았다. 그 중엔 자기만을 위해 속이고 훔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점례와 판순이는 석탄부대를 하나씩 이고 움막을 나섰다.
\"점례야, 누가 먼저 파는가 내기하자.\"
판순이가 힘을 북돋우기 위해 밝게 웃었다.
\"그래, 어서 가자.\"
점례가 앞장서고 뒤에 판순이가 따랐다.

권정생/동화 작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으며, 제 1 회 기독교 아동문학상과 제 1 회 한국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론 「몽실언니」, 「사과나무밭 달님」, 「강아지똥」, r벙어리 동창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