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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에 우리와 함께 계신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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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의 샘 - 보광 1997년 10월 188호
부처님을 조각하고 조성하는 일을 하고 있는 불모佛母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불모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실달타 부처님을 낳은 것은 마야 부인이지만 진정한 부처님은 깨달음이 낳았으므로, 불모는 반야 곧 지혜를 말합니다. 그 다음 실달타를 낳은 마야부인을 불모라고 하고, 부처님을 조각하고 조성하는 여러분 같은 사람들도 불모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사명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부처님에 가까운 부처를 탄생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조성한 연원은 부처님이 계실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부처님이 계실 때 우천왕이 있었습니다.
마침 부처님께서 마야 부인을 위해 법문을 하러 세 달쯤 천상에 가 계실 때였습니다. 우전왕은 부처님을 존경한 니머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자 허전하고 의지가 안 돼 나라의 제일 가는 조각가를 불러 부처님을 조성하게 했습니다. 전단향나무로 조성한 목불木佛을 안에서는 물론 나갈때도 꼭 모시고 다니며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러다 세 달 뒤 부처님이 천상에서 내려오실 때 목불木佛을 모시고가 마중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강림하시자 목불이 자리를 비켰다고 합니다. 진불이 오면 가불이 비켜난다는 얘깁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목불을 가리키면서 “앞으로 내가 열반한 뒤에는 나를 대신해서 목불이 이 세상 불법을 홍포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예언하고 수기하셨다고 합니다.
또 역사적으로 불상의 연원을 살펴보면,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난 이백 년 뒤에 아쇼카왕이 인도전역을 평정하고 불국토를 만들어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한 아쉬움에 불상을 조성했습니다. 아쇼카 왕이 왕이 되고 큰 복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전생에 연등불을 만났던 공덕 때문이었습니다. 아쇼카왕이 대여섯살때 일이었습니다. 한 친구와 함께 집도 짓고 떡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하는 소꼽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마침 그들 곁으로 연등부처님이 지나가셨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여기 진짜 부처님이 지나가시니 이 떡을 드리자’며 흙으로 빚어 놓은 떡을 집어들었습니다. 키가 작아 한 아이가 등을 구부리고 다른 아이가 그 위에 올라가 부처님께 떡을 드리니, 그 연등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참으로 희유한 공덕을 지었구나.” 연등부처님은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기하시면서 “너희는 다음 세상에 날 적에 오늘 나를 만난 공덕과 나에게 공양올린 공덕으로 대국의 왕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아쇼카왕은 그렇게 연등부처님을 만난 공덕으로 국왕이 되었고 그때부터 인도를 불국토로 만들고 불상을 모셨던 것입니다.

깨달음으로써 탄생한 부처님은 과거 수억 겁 전에 이미 깨달으셨습니다. 디만 사바세계에 와서 모습을 보일 때 사바세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것이 부처님의 위신력입니다.
사바세계에 오셨으면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태어나야 할텐데 어찌 그리 훌륭하신가 하면 다생 겁동안 닦아온 수행의 공덕 때문입니다. 우리 범부의 모습이 지저분하고 제멋대로 생긴 것은 자기 업 대로 멋 대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모양은 이전 삶의 모습이 현재에 결실로 맺어진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제 업 대로 만들어진 것이지 조물주는 없다는 얘깁니다. 자연도 아닙니다. 이 세상 존재하는 것들은 단세포가 없습니다. 여러 수천 가지 인과 연이 모여 모습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을 인연법이라 말하고 업으로 되어 있다 말합니다. 업은 곧 행입니다. 모든 사람의 행위에 대한 결실이지 본래부터 그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행위로 만들어진 물체는 어느 시간이 되면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모습을 가장 근접하게 조성하려면 부처님이나 대보살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조성된 부처님으로 석굴암 부처님을 꼽습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전과 함께 세계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누구나 할 것 없이 석굴암부처님을 이유없이 가장 완벽하게 조성된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경전에는 ‘일체 범부는 조성할 수도 알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부처님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석굴암 부처님을 어떻게 사람이 만들었느냐하는 논란이 있기도 합니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만대장경 팔만이천장에는 글자가 오천이백만자가 된다고 합니다. 글자를 새겨 칼로 파내야 하는데, 그 많은 글자를 어떻게 한 사람의 글씨체로 쓸수가 있었는지 하는 것도 불가사의하고, 사람이 칼로 파다보면 오자와 낙자가 있을 수 있으니 한자가 틀리면 앞뒤 나머지 몇 백 자는 다 허사가 되어 버립니다. 그 많은 양을 오늘날엔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재현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결국 삼매, 곧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조성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조성된 불상을 보고 신앙심을 생기게 하는 것도 없어지게 하는 것도 불상을 조성하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바세계는 범부와 성인이 함께 거주하는 곳입니다.
대승경전에서는 부처님이 계신 곳이 극락이고 정토라고 했습니다. 사바세계 부처님이 계신 곳에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셔 놓으면 바로그 곳이 극락세계를 사바세계에 옮겨 건립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극락세계에는사실상 부처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곳에 있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갓난 아기 옆에 어머니가 있게 마련이듯 너무나 몽매하고 철부지 같고 어리석은 중생 곁을 부처님 또한 한시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은 사바세계에 와 계시므로 사바세계는 몽땅 불국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바세계는 극락이요 불국토라고 했습니다.

「조상경」에 “사바세계에 절을 짓고 부처님을 조성하는 것은 그 공덕이 무량하다’고 했습니다. 흔히 큰 것에 많은 공덕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부처님을 보리일반하게 조성해도 그 공덕은 무량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원만한 조성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조성한 부처님을 어디에 내놓아도 제자된 도리로서 부처님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불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불상을 보면 고개가 숙여질 수 있도록 정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