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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식과 민중의례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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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진철승 1988년 10월 80호
불교의 의례체계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따라서 불교의식에 대한 분류 방식도 그만큼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다양함은 사실 다분히 자의적이거나 체험적이다. 그것은 의례 및 의식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례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이 행위체계로서의 불교의식 전체에 대한 학문적인 분석은 아니기에 전체적인 분석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전문적인 기여를 지닌 범패승에 의해 치루어지는 불교의식에 대해서만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의식은 수행자를 중심으로 하는 부처님에 대한 일상적 예경 의례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신앙대중’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반대중의 생활상의 요구와 소망에 부용해야 하기 때문에 민중적 습속이나 세계관과의 습합이 가장 두드러지는 불교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범패전문승에 의해 집전되는 불교의식 중 대표적인 것으로 상주권공재(常住權供齋), 시왕각배제(十王各拜齋), 영산재(靈山齋), 수륙재(水陸齋),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의 다섯 가지를 꼽는다. 이들은 대개 재공양(齋供養)으로 불리며, 재를 설한 설재자(設齋者) 외에도 다수의 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따라서 하나의 불교적 대중집회와 같은 양상을 보이는 바 불교가 대중과 직접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만나는 가장 대표적인 통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외에도 방생재, 점안식, 부처님 사대 명절, 우란분절, 정재불사(頂載佛事), 대장경 수호만등불사 등의 각종 의식도 대중적 집회임에 틀림없으나, 이는 신앙대중의 직접적인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분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위에서 말한 재공양들은 모두 기본적으로는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의례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들은 산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례이며, 재에 참여한 대중들의 집단적인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죽음과 천도와 삶이 억지로 구분되지 않으면서, 죽은 이의 극락왕생과 산 자들의 인간다운 삶이 동시에 비나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재공양은 대개의 경우 시련(待輦)-대령(對靈)-관욕(灌浴)-불공(佛供)-시식(施食)-봉송(奉送)의 순서로 진행된다. 시련은 망자(亡者0를 극락으로 인도할 나무대성인로왕보살(南無大聖引路王菩薩)을 앞세우고 망자를 가마[輦]에 태워 모시는 절차이다. 절 바깥의 적당한 장소로부터 재가 진행되는 절마당까지 모시는 절차인데, 각종 깃발[幡]과 범패승들을 선두로 하여 모든 대중들이 뒤따르는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며, 범패소리와 작법이 어우러지면서 대중을 의식의 공간으로 몰입시킨다.
대령은 망자를 모시고 그동안 주린 배를 채우도록 일차로 대접하는 절차이다. 그리고 관욕은 망자의 심신에 배인 탑, 진, 치 삼독(三毒)을 깨끗이 씻어내는 절차이다. 이로써 망자는 부처님 전에 나아갈 수 있는 청정한 몸이 된다.
관욕 다음에 괘불이운(掛佛移運)과 신중작법(神衆作法)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괘불이운은 야외법회를 할 때 부처님 그림을 의식이 벌어지는 현장에 옮겨 당간지주(幢竿支柱)에 거는 절차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흔히 괘불재(掛佛齊)라고 불리는데, 문화적인 욕구를 채울 수 없었던 봉건 시대의 민중에게는 이것이 대단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작게는 수미터에서 크게는 수십 미터에 이르는 괘불은 큰 구경거리였으며, 그와 더불어 재현장을 장엄하게 해 주고 대중들에게 경외심과 신심을 고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요사이 민중미술계에 정착되고 있는 걸개그림은 바로 이 괘불의 역사적인 전승에 다름 아니다. 아뭏든 대부분의 재공양이 야외에 괘불을 모시고 진행되기 때문에 괘불재, 야외 법회, 재공양은 모두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신중작법은 불법 옹호의 임무를 띠고 있는 신중들에게 오늘의 법회 도량을 잘 지켜 달라고 청원하는 절차이며, 동시에 신중들의 민간신격의 불교적 수용인 까닭에 산 사람들의 행복을 비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렇게 괘불을 모신 다음에 비로소 불공이 시작된다. 불공은 말 그대로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이지만 그 규모는 일상적인 법당에서의 삼보통청(三寶通請)에서부터 재공양의 여러 불공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전문적인 범패승에 의해 이루어지는 불공은 상주권공재, 시왕각배재, 영산재에서의 불공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법식대로 하면 상주권공은 하루, 시왕각배는 이틀, 영산은 사흘이 걸린다고 한다. 이 불공은 오늘 재를 설하여 불·보살님을 청하는 이유를 아뢴 다음, 강림한 불·보살님께 대해 예경과 찬탄과 공양 등을 한 뒤 축원문을 낭송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 중에서 특히 불·보살님에 대한 예경, 찬탄, 공양을 얼마나 규모있게, 그리고 정성들여 하는가에 따라 재의 규모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상주권공재는 가장 흔하게 치루어지는 천도의례이나, 오늘날은 대개의 경우 49재시에 스님들이 법당에서 세시간 안팎에 걸쳐 진행한다. 그러나 하루 걸려 진행되던 이전의 상주권공재는 절마당에 괘불을 모시고 진행된, 재에 참가한 마을 사람 모두의 만남의 장이었을 것이다.
시왕각배재는 생전의 선행과 악행을 구별하여 망자가 극락으로 갈 수 있는 가를 판단하며, 열시왕(十王)님께 공양드림으로써 생전의 과오를 용서받고 망자의 극락행을 염원하는 의식이다. 이 각재배는 가끔 무속의 재수굿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천도재임에 틀림없다. 다만 중국의 도교적 민간신격인 시왕이 산 사람들의 행·불행에 대한 판관의 기능까지 지닌 것으로 인식되고 신앙됨으로써 행복을 비는 재수불공의 기능이 이 각배재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일 뿐이다.
영산재는 영취산에서의 부처님의 설법 장면인 영산회상(靈山會相)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의식이다. 그래서 이 영산재는 그 장엄함이나 신성함 때문에 한 개인의 영혼 천도를 위해 열리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나라의 안녕이나 출정하는 병사들의 무운장구(武運長久), 그리고 큰 단체의 번영 등을 위해 열리며, 동시에 수많은 무주고혼의 천도도 중요한 목적이 된다. 이 영산재는 불교예술의 총화이며 또한
하나의 의식으로서도 장엄함과 정밀함을 자랑하는 최고의 수준에 서 있다. 그러나 영산재는 그 규모나 목적에서 알 수 있듯이 민중의 생활에서의 필요나 욕구에 부응하는 의식은 아니며, 국가의례의 형태를 띠거나 권세가의 요청에 의해서 열리게 된다. 따라서 민중에게는 평생에 한번 보기 힘든 희귀한 구경거리로 여겨졌을 뿐이다.
의식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불공이 끝나면 다음 차례로 시식이 진행된다. 이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이제 아미타정토에 왕생하게 된 망자에게 마지막으로 음식을 풀어 먹이는 순서이다. 하단(下壇)의 영가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곳에서 상징적인 음식공양을 마친 뒤 봉송으로써 망자는 산사람들과 헤어져 왕생의 길로 떠난다.
수륙재는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신승(神僧)의 계시에 의해 스스로 수륙의문(水陸儀文)을 편찬하고 재를 설한 것이 그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그 목적은 법계함령(法界含靈)을 널리 구제하여 공덕을 쌓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수륙재의 기원이나 그 이후 의식의 목적을 살려 보면 정치적 격변기에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들을 달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수륙재는 특히 권력 투쟁을 거쳐 등극한 왕권에 의해 설행(設行)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고려 광종 이후 국중수룩대재(國中水陸大齋)가 설행되었다는 기록이 많이 보이며, 이성계도 진관사와 석왕사에서 수륙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수륙재는 이조 중엽까지 국가의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다가 유생들의 격렬한 반대로 그 국가적 전승이 끊어졌다. 그러나 억불의 이조하에서 오히려 민중불교로의 변모를 거친 불교는 민중들과 결합하는 가운데 이 수륙재의 생명을 이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절마당이나 강상이나 해상에서의 대중적 의례로서 재탄생되어 오히려 민중과 더불어 숨쉬는 의례가 된 것이다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 속에서 억울하게 숨져 간 수많은 중음신(中陰身)을 집단적으로 해원하며, 그와 동시에 산 자들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희구를 이 수륙재에 담은 것이다. 그러나 이 수륙재는 이조말과 일제하를 거치며 그 민중적 생명력을 상실한 채 단순히 기복적인 방생재로 전락되어 많은 비판을 받으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는 매우 특이한 재공양이다.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생전에 미리 공덕을 닦음으로써 극락왕생을 보장받고자 하는 의식이다. 따라서 설단(設壇)도 무척 특이하여 상삼단, 중삼단, 하이단 등의 여덟단이 설치된다. 상삼단은 불보살단과 지상단과 신중단으로 구성되며, 중삼단은 시왕단(十王壇), 판관단(判官壇)과 착속단(着屬壇)이며, 하단은 고사단(庫司壇)과 사자단(使者壇)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상삼단은 단지 증명단(證明壇)의 구실을 할 뿐이며 실제 신앙의 중심은 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극락왕생의 심판을 하는 시왕님에게 생전에 복을 많이 지었음을 보이는 것이 주목적인 것이다. 복짓는 방법은 불경을 읽어야 하는 빚과 돈빚을 갚는 것이다. 이에 예수재를 설하여 불경 빚을 갚고 돈빚은 종이돈[紙錢]을 시왕전에 올려서 갚는다. 이 중에서 태우고 남은 종이돈을 간직하다가 죽은 뒤 명부전에 제시하여 중거물로 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의식은 오늘날에도 가장 자주 열리는 의식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아마도 죽음을 얼마 안 남긴 노인들의 절박함으로 인한 것이겠으나 동시에 윤달 -오년에 두 번 든다- 에 한번씩 열리는 가장 흥미있는 마을 잔치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예수재를 보면 당사자인 노인들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과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 서로간의 효성을 가늠하면서, 그와 더불어 흥겨운 노래자랑과 춤과 덕담이 풍성하게 벌어지는 대동의 축제인 것이다.
끊임없이 비난받고 타기의 대상이 되면서도 지금까지 이어져 온 불교의식의 생명력은 다음에 이야기할 대승적 회향의 정신, 그 예술적인 정교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중과 더불어 같이 호흡해 온 대중성에 있다고 하겠다.

진철승/81년에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민중불교운동 연합 문화부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지금은 민족굿연구회 연구위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