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세계와 함께하는 말씀 너희들은 빨리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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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원섭
1988년 10월 80호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기 위해 거울 앞에 섰던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는 낯선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여윈데다가 탄력을 잃은 얼굴에 눈빛만 날카로운 사나이. 반백이라고는 인사말로도 하지 못할 정도로 흰머리를 한 그는, 제가 있을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 사람처럼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멍청한 모습이다.
‘저 자는 누구인가?’
의아해 하며 뚫어지게 바라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빗질을 하다가 거울 속의 인물이 똑같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야 그것이 바로 나임을 알았다.
머리칼이 쭈삣 곤두서고 전류 같은 것이 온몸을 휘감는다. 어디에서 어떻게 방황하고 있었기에 이런 몰골이 되었단 말인가 덕스러운 데라곤 하나도 없이 이렇게 지치고 천덕스러운 꼴이 되었단 말인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너희들은 빨리 나오라’는 부처님의 음성이 귓전을 때리고 지나간다. 너희들은 빨리 나오리(汝等速出) ? 그렇다. 나는 이 말씀을 전에도 들은 일이 있다 몇 해가 되었던가 어느 출판사에서 법화경의 번역을 종용해 왔을 때 나는 경솔하게도 성큼 용해 버렸고, 그런 인연으로 천태대사의 「법화문구」와 「법화현의」를 읽기도 했다. 그러므로 비유품의 화택유(火宅喩)에 나오는 이 말씀과는 구면이라면 꽤 구면인 셈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문득 벽력처럼 내 머리를 때리고 지나감은 무슨 이유인가 쭈그러진 내 얼굴을 비치는 거울 속에서 젊은 날의 내 모습과 유년 시절의 내 모습이 함께 포개져 비친다. 시간이 온통 정지해 버린 듯한 어느 시골 마을. 어린 내가 마당에서 친구들과 뛰놀고 있다. 점심을 먹으라고 어머니가 부르신다. 글을 읽으라고 중조 할아버지가 부르신다. \"원섭아 원섭아 원섭아….\"
허물이 많았던 젊은 시절. 불이 뜨겁다고 가르쳐 주는데도, 굳이 손으로 불꽃을 만져 보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부처님의 충고를 무시하고 여인에게 접근했다.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귀중한 나날을 문학을 한답시고 어정버정 보냈다. 워낙 재주가 메주인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했으니 남들 만한 명성도 얻지 못했지만, 설사 이태백의 할아버지 같은 성과가 있었더라도 그것이 필경 무엇이란 말인가 중년에 이르러서야 이를 알게 되어서 문학 쪽은 거의 폐업을 해 버린 채 하루의 대부분을 불교를 생각하며 살게 되었지만 어정버정하기는 매한가지다. 불법에 대한 지식은 조금 얻었으나, 실제의 수행이라곤 해 본 적이 없었으며 그냥 되는 대로 살았을 뿐이다. 사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나를 불러 주실 집안의 어른들이 안 계시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내 어머니가 나를 부르지 않으셨을까 듣지 못한 것은 내 탓일 뿐, 내가 빗나갈 때마다 어머니는 애타게 나를 부르셨을 것임에 틀림없다. \"원섭아 원섭아 원섭아….\"
그런 어머니의 목소리가, 왜 그런지 오늘 아침에는, ‘어서 나오라’는 부처님의 음성과 포개져 들린다.
화택유에서는 집이 온통 불타는 것을 보고서 주인인 장자(長者)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비록 불붙은 집에서 편히 벗어 나왔으나, 아이들은 불꽃 싸인 집안에서 아직 놀이에 미쳐 이를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며 놀라와도 두려워도 하지 않아서, 불이 몸에 와닿아 고통이 다가오되 근심도 걱정도 아니하여 나오려는 뜻 없도다.’
아버지인 장자를 부처님이라고 하면 아들은 분명 우리들 중생을 비유함인데 불타는 집과도 같은 이 세상의 모습은 장자에게는 보여도 아들에게는 안보인다. 생사의 고(苦)에서 해탈하신 부처님은 생사의 실상을 따지되, 중생은 고(苦) 속에 있으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데에 고가 고일 수밖에 없는 심각함이 있다. 오히려 우리는 고를 낙으로 생각한다 ‘놀이에 미쳐 이를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며 근심도 걱정도 아니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서 인생이란 얼마나 매혹적인 한마당의 놀이판인가 애욕의 세계는 감미롭고, 부니 명예니 하는 것들은 우리의 넋을 앗아가기에 족하다. 학문과 예술과 스포츠 같은 것들은 또 얼마나 즐거운 놀이감이랴.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필경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 대답해 주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생전에 무엇을 하고 어떤 업적을 올렸는지와는 상관없이 사형수처럼 두려움을 안고 죽어가야 하므로, 끝없는 매력으로 비쳤던 부와 권세와 사랑 따위의 일체는 그 동안 우리를 속여온 한낱 신기루 같은 것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낙이라고 여겨온 것이 사실은 고였으니 ‘불꽃 싸인 집안에 아직 남아 놀이에 미쳐 있는’ 우리네의 무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불타는 집안에 남아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이란 기실 중생이라기보다는 바로 나임을 깨달아야 한다. 중생이나 인류니 하는 것은 일반적 개념이므로 고를 깨달음도 객관적인 깨달음의 정도에 그칠 수 있지만 불에 타서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깨달을 때는 해탈을 구하는 마음도 절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어서 나오라.’
사실 부처님의 서원은 이 한마디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불타는 집과도 같은 생사의 구렁 속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안타까와서 \"어서 나오라\".\"어서 나오라\"고 부처님이 간절히 말씀하시는 것일 게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아니 나는 어떠했던가 ‘아닙니다. 여기도 괜찮은데요. 나가는 것이 원칙일지는 모르나 여기에 남아서 놀렵니다.\" 이렇게 대답하지는 않았던가.
어서 나오라는 부처님의 음성이 들려 온다.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가 들려 온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소리는 하나가 되어 나를 부르고 있다 ‘원섭아 어서 나와, 어서 나와\" 하고. 그 소리에 거울 속의 그가 놀라고 나도 따라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