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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자주화 운동의 자취를 더듬어 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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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도각 1988년 10월 80호
무덥고 지루한 여름을 밀어내는 소슬바람 속에서 하나 둘씩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산 전체를 현란함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하지만 가을이 보여 주는 이러한 아름다움도 마침내 겨울의 찬 서리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말리라. 이렇게 무심한 자연의 변화도 잘 관찰해 보면 어떤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법칙은 어떤 절대 신의 신비한 조정에 의한 것도 아니며 돌연변이 적인 우연에 의한 것도 아닌, 우주 전체가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는 법칙이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 운동이 기온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러한 변화가 사물에 일정한 영향을 주면서 변화와 이행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는 개체 일반이 외부의 영향에 대하여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변화가 아니라, 사물 내부의 변화 가능성으로 인한 개관적인 조건과 상황 속에서의 변화이다. 아무리 외부의 개관적인 상황이 변하더라도 내부에 변화의 성질이 없다면 세계는 객관적인 조건과 상황 속에서의 변화이다. 아무리 외부의 객관적인 상황이 변하더라도 내부에 변화의 성질이 없다면 세계는 관념론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변화하지 않는 고정 불변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변화와 발전을 증명하는 과학적 진리 속에서 이러한 형이상학적 논리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으며, 결국 내부의 변화 가능한 성질과 외부의 조건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사물 일반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 변화에서의 개체와 전체의 상관성, 보편성과 특수성의 차이, 우연한 것과 필연적인 것의 관계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속에 범주화했을 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지금과 같은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역사 발전에 일정한 구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건이나 사고는 오랫동안 사회 변화의 진행과 극적 모순이 누적되어 나타난 것이지 우연히 일회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하여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원칙을 엄정하게 세울 때, 역사의 발전을 바른 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고 속에서 사회 발전의 법칙을 이해할 때 오늘날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지대한 당면 과제는 민족 통일 운동이다. 이 과제는 밖으로는 8.15 해방 이후에 반도의 남부를 강제 점령한 미제국주의 세력의 수탈을 물리치는 반외세 투쟁을 통해서 민족 자주화를 성취하는 일과, 안으로는 외세의 하수 정권인 군사 파쇼와 반봉건적 매판 세력의 척결을 통한 사회 민주화를 이루는 일이 동시적인 차원에서 달성될 때,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다.
사십년 만의 더위라도 하던 올 여름 무더위만큼이나 열화 같이 타올랐던 남북 학생 회담의 열기는 작년의 6월 민주 항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여기에 승가의 진보적 세력을 대변하면서 사회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왔던 불교 운동 단체가 민족화합 공동 올림픽 쟁취를 내세우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 불자 공동 기원 법회를 추진하게 된 것은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라 하겠다.
그러나 88년 여름은 오늘 이 땅의 불교의 운명이 국가와 민족의 앞에서 희망적이나 절망적이냐를 판가름해야 할 매우 중대한 시점에 서 있음을 절감케 하는 아주 다른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았다. 하나는 소림사 영화에서나 보아 왔던 승려들의 무술이 우리들 안방 TV에서 승려와 신도들의 각목 난투극으로 나타나면서, 불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처구니없는 좌절과 비애에 빠질게 한 봉은사 사태이며, 다른 하나는 8월 15일 진보적 불교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 속에서 치러진 남북 불자 공동 기원 불자 공동 기원 법회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화될 수 밖에 없는 불교 교단의 오늘을 객관적인 사회 상황과 내부의 동향으로 나누어 분석해 봄으로써, 그 구조적 모순과 극복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로써 불교 자주화 운동의 올바른 좌표를 세워야 한다. 오늘의 불교 교단의 모습은 오랫동안 역사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지만, 80년 군사 파쇼 정권이 불교 정화라는 이름아래 저지른 꿈에도 잊지 못할 10.27 대법난이 그 커다란 역사의 단초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8.15 해방 이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국가를 건설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지만, 우리의 해방이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 벌어진 패권 전쟁의 부산물로 이루어진 성격 때문에 미국이 일제를 대신하여 한반도를 지배함으로써 해방전과 같은 점령 정책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일제에 기생했던 친일 매판 세력이 그로 온존함으로써 해방 조국의 건설이라는 우리의 간절한 염원은 여지없이 무산되었으며, 불교 내부도 이러한 외세의 강제 점령 정책에 의해서 민족 자주 세력으로서의 성격이 흐려지면서 어용적 보수화의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에 맞서 꾸준하게 저항함으로써 자주적인 모습을 지켜오던 불교혁신 세력은 해방 뒤 친일적인 매국·보수 타락 승려의 제거와 교단 정화의 기치 아래 불교 혁신 동맹을 결성하고 일제 식민지 통치 기구의 하나인 교단 중앙 기구와 대립을 계속했다. 그러나 남북정당사회단체의 연석회의가 내외의 방해 공작으로 무산되면서 그들의 행동의 궤적을 같이 했던 혁신 세력의 힘도 약화되었으며, 육이오 전쟁을 거치면서 그 세력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 뒤 이승만 정권의 불교 정화 유시로 시작된 대처와 비구의 싸움에 의해 다시 한번 불교는 민족 자주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이 크게 위축되었으며, 결국 불교는 불교 정화 운동이라는 거창한 구호와는 달리 외세와 독재 정권의 불교 분열 책동에 놀아나게 되어서, 싸움만 일삼는 집단이라는 오명과 폭력의 병폐만을 남긴 불교 교단은 박정희 정권의 불교 재산 관리법이라는 족쇄가 채워지면서 어용 불교로 극심한 예속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나 궁정동 총성으로, 우리에게 굴종과 노예적인 삶을 강요했던 유신 독재도 그 비극적인 역사의 장을 마감한 80년, 서울의 봄으로 불리던 민주화의 물결이 역사의 대세를 몰고 갈 때, 불교 교단 역시 고질적인 종권 다툼의 병폐를 쓸어내고 참신하고 자주적인 불교를 건설하기 위한 작업에 힘쓰게 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방안은 정권의 시녀 역할이나 하는 어용적이고 관제 적인 불교에서 탈피하는 것이며, 불교를 근본적으로 탄압하고 분열시키는 책동의 고리가 되는 불교 재산 관리법을 철폐하는 것이고, 승단 내에 만연하는 불신 풍조와 부패 타락 현상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 민중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서 집권한 군사 정권은 자신의 비정통성과 폭력성을 은혜하기 위해 불교를 희생물로 삼아서 정화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탄압을 함으로써, 자주적인 불교를 건설하려는 노력은 파국을 맞게 된다.
이러한 10.27 대법난은 불교 교단에 두 가지 유형의 대응양식을 가져왔다.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갖고 있는 종단 내의 기성 보수세력은 종권 다툼과 절 뺏기에 혈안이 되어 일년에도 몇 번씩 총무원장이 바뀌는 진통을 연출했으며, 마침내는 신흥사 사태라는 전에 없던 추악상을 보였다. 그 뒤 소장 승려를 중심으로 하여 비상종단이 이루어져 교단의 개혁을 시도하나 그들 구성원이 지닌 사상과 이념의 조급성과 대중 조직의 불완전함 등으로 인하여 좌초하고 말았으며 결국 종단은 월정사와 불국사 등의 폭력 정화 형태로 비화되면서 그 진로가 더욱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이처럼 불교는 본래의 목적인 중생 구제의 책무를 방기한 채 서로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를 계속하다 급기야는 봉은사 사태라는 어이 없는 싸움판을 벌려 종단의 위신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뜨리고 말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광주 민중 항쟁을 통해서 비로소 미제국주의 세력이 한반도의 통일에 가장 큰 장애임이 드러나서 반외세 투쟁이 없이는 조국 통일 운동을 이룰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보적 청년 승려와 재가 불자는 불교의 자주화 역시 사회 민주화와 민족 통일 운동을 동시에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각성을 10.27 대법난을 통해서 확인하고서 새로운 형식의 대중 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시발이 산중 불교와 기복 불교에서의 탈피라고 인식하여 사원화 운동을 전개했으며, 불교 운동의 이념적 돌파구로 제창되었던 민중 불교 운동은 승속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불교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러한 노력에 의해, 아직까지도 반민중적이고 비역사적인 교단을 구태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정토 구현 승가회가 창립되었으며, 이곳의 기존 조직을 바탕으로 하여 87년 6월의 민주 항쟁에 불교가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줌과 더불어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에서 불교가 비로소 자기의 역할을 찾게 되었다. 작년의 대통령선거에서 뼈아픈 좌절을 경험한 진보세력은 88년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형태의 불교 운동 단체를 결성하면서 마침내 남북불자 공동 기원 법회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불교는 조국통일 운동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지금의 불교 현실을 분석해 보면서 다시 한번 불교의 진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대외 종속적인 군사정권이 6.29라는 기만적인 민주화로 진보세력의 진로를 막았듯이, 올림픽 대회를 통해서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 동구권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통일문제마저도 저들이 독점한 채 미일외세의 구도대로 한반도의 영구분단과 민족분열을 책동하는데 서슴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은 전(前)정권이 했던 것처럼 또다시 권력 구조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해 불교를 희생의 제물로 삼으려고 할 것이며, 이러한 기도는 이미 봉은사 사태를 통해서 노골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매스컴을 총동원한 사태의 확대 보도, 사건 당사자의 폭력을 부채질하여 악순환시키는 기관의 교묘한 이간 책동, 정체가 분명치 않는 정풍회라는 신도회 단체의 부상 등과 같은 우려할 만한 징조가 여렷 보이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불교운동은 상반기 통일 운동에서 확보한 역량을 한데 모아서 이러한 군사정권의 책동을 세상에 드러내야하며, 국회 5공 비리 조사에서 안건으로 채택된 10.27 대법난의 진상을 명백하게 규명해서 공개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이렇게 저들의 음모를 분쇄함과 더불어 대중을 각성시켜서 그들이 불교 자주화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10.27 대법난 진상규명 작업은 지금까지 정권 밑에서 반민중적이고 반역사적인 행위를 일삼은 보수 교단에 경종이 될 것이며, 불교 자주화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또한 분단으로 인하여 남북 대결을 일삼는 무모한 낭비와 대외 종속으로 인한 수탈을 막아내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루기 위한 통일 운동에 일조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승가 대중이 올바른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불교는 진정 이 땅의 고통에 찬 분단현실을 끝내고 중생의 삶에 구원의 등불을 밝힐 것이며 민중의 향도자로서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도각/해인 강원을 졸업하였으며, 지금은 중앙승가대학 2학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