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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필라 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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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철 1997년 10월 188호
도반이 새로 주지 소임을 맡아 나갔는지라 도반 스님 절에 인사 겸 얼굴도 볼겸 해서 들렀다. 마침 내일 사암연합회 행사 준비로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조금 기다리면 온다는 공양주 보살님의 말을 듣고는 걸망을 내려놓았다. 도량을 살펴보니 주변 산등성이의 가야 고분들을 중심으로 공원을 꾸며 놓은 곳이었다. 언덕으로 을라갔다. 동산만한 고분들이 연이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치 경주의 어느 한 곳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분을 둘러보는데 웬 노보살님이 신심 있는 모습으로 인사를 하였다. 옆에 젊은 청년을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몇 가지 불교적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나니 다음에는 속가 성씨를 묻는 것이었다. 정작 쉬운 물음에 대답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속성俗姓을 대답하려니 불법에 맞지 않고 불성인 석씨釋氏라고 하려니 그 보살님이 듣고자 하는 대답이 아닌 까닭이다.
절집에도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예사로 법명 앞에 속성을 붙여 쓰고 있다. 속명이 곧 법명인 경우도 있으며, 같은 법명이 많아 구별하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며, 사회의 관습이 워낙 깊은 탓도 있다. 관공서에서 나오는 고지서. 예비군 훈련 통지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동창회나 종친회에 참석해 달라는 공문까지 오는 걸 보면 출가를 해도 완전히 사회제도와 핏줄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초기 교단은 출신 계급과 출신 집안을 부정한 평등의 출가공동체였다.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불교가 이동하면서 스승의 성을 따르는 승려가 많았다. 그 때 승려들의 성씨는 출신지에 따라 촉씨(인도), 지支씨(대월지국), 안安씨(안식국), 강康씨(강거국) 등이 붙여졌다. 이에 도안道安(3l2 ~ 384) 법사는 불교도의 진정한 스승은 석존이므로 불제자가 된 사람은 모두 석釋으로써 성씨를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 석씨가 절집의 성씨로 보편화되었다.
운문종의 불인요훤佛印了元(1032 ~ 1098) 선사도 속법을 따르는 것은 지혜의 눈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석씨를 써야한다는 입장이다. 고려 왕족 출신인 의천義天(1055 ~ 1 10l ) 대사가 중국에 유학을 갔을 때 일이다. 가는 절마다 왕에게 하는 예의로써 맞이하고 전송하였다. 그러나 금산사金山寺의 불인요원스님은 선상禪床에 앉아 큰절을 받고는 “의천 역시 다른 나라의 승려일 뿐이다. 갖가지 성씨가 출가하면 누구나 석씨의 아들로 이름하는 법이니 어떻게 귀족을 따지겠는가. 만일 불도를 굽혀 속법을 따른다면 무엇보다도 지혜의 눈을 잃어버릴 것이니 내가 무엇으로 그에게 모범을 보여 주겠는가?” 라고 하셨던 것이다.
세간법을 따르면 지혜의 눈을 잃어버린다는 선지식의 우려와 함께 속성俗姓을 사용하다 보면 재산상의 법률적인 문제가 부수적으로 파생된다. 신도의 시주로 이루어진 삼보정재가 개인명의로 등록된 경우 절집안과 속가 집안 간의 분쟁으로 송사가 일어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재산을 미리 교단 재산으로 등록해 두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출가할 때 미리 양자 들어가듯 석씨로 입적시켜 버리는 제도를 확립하는 것도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한 방법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