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에 절하는 것은 우상 숭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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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7년 10월 188호
많은 종교 가운데 유독 불교를 선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불교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종교라는 것에 있을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불타Buddha는 ‘눈 뜬사람’(覺者), 곧 사물의 참다운 모습, 인생과 우주의 실상에 눈뜬 이를 의미한다.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도 바로 이 눈 뜬 자다. 따라서 신이 아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신이 아니라면서 불상에 왜 절을 할까?
석가모니를 신神이라 보아야 하느냐 인간이라 보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과제다. 만일 신이라 한다면 인격신을 믿는 기독교나 다른 타종교의 신과 무슨 차이가 있으며, 또한 만일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불교는 무엇을 대상으로 신앙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과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잠시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와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를 비교해 보자.
석가모니도 예수도 역사상의 한 인간으로 태어났고, 죽은 뒤에는 차츰 신격화되어 갔다는 점에서는 두 교주가 꽤 비슷하다. 그러나 신격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경우는 예수가 이 세상에 출현하신 단 한번의 역사성을 강조한 반면에,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출현 그 자체의 특수성이나 역사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석가모니가 설한 가르침, 곧 진리를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결코 예수와 같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에 견주어, 불교에서는 누구라도 이 진리를 깨달으면 석가모니와 같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임종할 때, 후계자를 지목해 줄 것을 기다리는 많은 제자에게 “내가 죽은 뒤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석가모니를 의지하려 하지 말고 내가 설한 가르침 곧 법(진리)에 의지하라”고 했다. 인간 석가모니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의지할 바가 못되지만, 그가 설한 가르침인 법은 만고에 통하는 영원한 진리이므로 이 법을 믿고 의지하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법이란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 곧 만물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무상의 진리’나 ‘인연의 법칙’등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자는 모두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석가모니는 신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으며,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불상에 절하는 것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 생기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처음부터 불상을 모셔 놓고 예배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불교신자들이 석가모니 대신에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예배하기 시작한 것은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그 유골을 나누어 탑을 조성한 뒤부터다. 석가모니가 입멸하시자 유골, 곧 사리는 여덟 개로 균등히 분배되었으며, 사리탑 숭배는 기원전 3세기에 아쇼카 왕의 출현으로 본격화되었다. 기원전 2세기 후반에는 석가모니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그런 ‘본생도本生圖’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 그림 속에는 석가모니의 모습은 없고 대신에 보리수나 탑 등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경부터 동서 교통이 잦아짐에 따라 인도에는 서방의 다른 민족 문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기원후 1세기경에는 그리이스와 로마의 문물까지 인도로 들어오게 되었다. 인도 불교인들에게 있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특별한 존재였지만, 서방의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사람’ 이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석가모니를 서방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저항감 없이 불전도佛傳圖 속에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 연대는 대체로 기원후 1세기 말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서방 문물의 인도 전래와 함께 서방사람들에 의해 예배 대상으로서의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인도의 불교신자들 사이에서도 불상을 형상화하여 예배하고자 하는 사고 방식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불상에 예배하기 시작한 기원이다.
불상을 조성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삼게 된 이유가 이렇다 하더라도 아직 불상이 우상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석가모니가 입멸할 때 ‘법(진리)에 의지하라’고 한 것과 모순되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 석가모니는 분명히 ‘법에 의지하라’고 했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그 제자들은 법에 의지하여 수행할 수 있지만 재가신자들은 이 법에만 의지하기에는 너무나 약했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유골을 모신 사리탑을 석가모니 대하듯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얼굴도 모르는 석가모니의 추상적인 설법에만 의지해 수행하기는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또한 교단의 유지를 위해서도 구체화한 석가모니의 모습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진리, 곧 법을 상징하는 불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이론적 근거에서 보면, 석가모니를 존경하고 예배하는 것은 석가모니가 설하신 법, 곧 진리를 존경하고 예배하는 것이며, 이 진리는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영원하므로 이 진리를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석가모니 외에도 과거, 현재, 미래의 많은 부처님을 조성하여 예배할 수 있으며, 보살상도 이와 마찬가지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사찰에 부처님이나 보살상을 모신 까닭은, 유형의 불상을 통해 무형의 진리(법)를 감득하기 위한 것으로 불상은 어디까지나 어리석은 중생을 진리로 안내하기 위한 방편-일시적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불상 앞에서 절하는 까닭은, 석가모니가 불교의 가르침을 폈다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마음과 과거, 현재에 깨달음을 얻은 모든 부처님과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미래에 깨달은 모든 이에게 존경과 겸허의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 곧 석가모니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님에게 예배하는 마음도 결국은 깨달음으로 향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의 원대한 소망에서 나온 것이므로 불상 앞에 절을 하는 것은 결코 우상 숭배가 아니라 깨달음을 향한 나의 각오를 다짐하는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