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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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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규갑 1997년 10월 188호
어렸을 적의 일이다. 그 때의 나와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부란 학교에서 하는 것이 다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 마을 앞에는 앞산과의 사이로 논과 밭, 알은 개울이 있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있어서 자연의 일부를 놀거리로 알고 그것을 즐겼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놀거리가 풍부했고, 그래서인지 식사시간을 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놀았다. 여름이면 더운 대로, 겨울이면 추운 대로, 또 낮이면 낮대로, 밤이면 어두운 대로 거기에 순응하면서 잘도 놀았고 또 원 없이 논것도 같다. 그 때는 밥 먹고 뛰어 노는것에만 관심이 있던 우리로서는 경제나 정치가 무엇인지는 알지도 못했고 또 알 필요도 없었다. 특히 종교란 어른들이나 상관하는 것이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다만 여름만 되면 왜 그리도 멀리 있는 큰 물가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그러시는지 귀찮을 따름이었다. 뭐 올해는 물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나? 그 올해가 왜 해마다 되풀이되는지!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때의 일이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꽤 높은 산이 있었다. 해발 사백오십 미터니 지금 보면 그리 높은 산이 아닌데, 그때는 매우 높은 것으로 여겨 감히 그 산을 한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던 터였다. 그런데 그곳을 여러 번 올라간 적이 있는 형들이 우리를 데리고 그 곳에 올라갔다. 어느정도 올라가다가 우리는 산길의 한쪽에 있는 마애불 앞으로 인도되었고, 형들이 시키는 대로 우리는 그곳에 무턱대고 두 손을 합장하 절을 하였다. 그 마애불은 높이가 삼 미터 남짓 되는 좌불상이었으며, 그 주위는 초라하지만 그래도 그 앞에는 서너 명쯤의 공간도 있어서 어른들이 평소에 그 곳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 같았다.
다만 시골 동네를 떠나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부처님이었다. 형들의 말에 따르면 그 산에 올라갈 때는 그 곳에서 절을 하면서 부처님께 무사히 산에 오르게 해 달라고 빌고, 내려올 때도 역시 그곳에 들려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했고, 또 그 산을 올랐다가 내려왔다. 반나절쯤 걸린 그 날의 산행은 어린 우리에게는 커다란 경험이었다.
그 뒤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틈만 나면 우리끼리 그 산을 올라갔고, 역시 그 때마다 시키는 대로 그 부처님께 열심히 절을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놀이터는 자그마한 뒷산을 벗어나, 좀더 큰 산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큰 산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것을 주었다. 먼저 나무가 많고 바위도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어 놀거리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모험심도 키워 주었으며, 이제까지 보기 어려웠던 먼 세상까지 볼 수 있게 해 준것은 물론이고 부처님 앞에 가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절로 고개를 숙이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 부처님이 언제부터 그 곳에 계셨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며, 우리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수백 년 동안 무조건 그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그 산을 오르내렸다고만 들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그 때는 이미 커서 발걸음도 빠르고 힘도 불어서 그 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방학 때는 새벽마다 그 산을 오를 만큼 친숙하게 되었고, 또 평소에도 틈만 나면 산에 올라가곤 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모 대학의 사학과 한 교수님 -지금은 필자도 잘 알고 있는 분으로 불교에 관심이 매우 높으신 분이다-이 그 산에서 고려시대 중엽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을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했다는 것이었다. 그 마예불은 꽤 중요한 문화재로서 연구할 가치가 많으며, 또한 보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매번 절하고 우리의 조상들이 틈만 나면 찾아가 예를 올리던 그 부처님이 이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우리가, 또 우리의 어른들이 그동안 뵈었던 그 부처님은 아직까지 세상에 발견된 바가 없었던 것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면서 발견된 것과 발견되지 않은 것 사이를 수없이 왕래했던 것이다.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며 더불어 살면서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던 우리는 다만 그 부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단순한 신심信心만이 있었을 뿐, 그것의 가치라든지 의미를 파악하고 정리라는 지식이라는 것은 전혀 없었다.
여러 해 전 고향에 살 때의 일이다. 오랫동안 객지로 돌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살던 시절이었는데,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다음 초사흘 새벽에 산에 기도드리러 가니 이번에는 나도 함께 가자고 하신다. 어디로 가시냐고 여쭈니 바로 그 부처님께 가는 것이란다. 그동안 몰랐지만 부모님도 다달이 초사흘이면 새벽마다 그 곳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힌다. 깜깜할 때 출발하셔서 새벽에 돌아오시니 필요할 때만 부지런하고 평소에는 게으르기 그지없던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 날 새벽에 난생 처음으로 부모님과 새벽기도를 올리러 그 곳에 갔다. 이십 년 만에 그 곳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전에 우리가 오르내리며 들르던 그곳에는, 누가 그랬는지 부처님 바로 밑에 제수를 놓을 수 있도록 제석이 마련되어 있고, 조그마한 잔디밭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그 앞의 뜨락(?)은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무너질 듯하던 축대는 나라에서 다시 쌓았는지 튼튼해 보여 마음 든든히였다. 또 입구 한쪽에는 그 마애불에 관한 내력을 담은 깨끗한 안내판까지 서 있어 이제는 누가봐도 작지만 그럴 듯한 명소가 되었다. 그리고 새벽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시종 이 곳에 들러 예를 올리고 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신심만 있고 지식이 없었던들, 그 부처님의 앞마당은 예나 지금이나 초라하고 머지 않아 축대도 무너져 버려 혹 사람이 찾지 않는 발견되지 않은 부처님으로 변하셨을 수도 있고, 또 지식만 있고 신심이 없었던들 그것은 학술보고서의 한 귀퉁이에 기록으로만 남아 똑같은 경우를 당했을 것인데, 신심과 지식이 조화를 이루니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신심과 지식의 조화, 이것을 기다리는 곳에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