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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변화된 수행풍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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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7년 04월 182호
어느덧 화제가 된 소유

새삼스럽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여기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서글픈 심정을 갖게 한 토론이 지난 3월 5일부터 사흘 동안 지리산 실상사에서 있었다. 출가자의 올바른 위상에 대해 끊임 없는 자기성찰과 새로운 지향을 연구하고 있는 승가 결사체 ‘선우도량’은 ‘삼보정재와 출가 수행자의 윤리성’ 이라는 주제로 실상사에서 제12회 수련결사를 가졌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 몇 사람의 기조 발표가 있었고 이에 대한 토론 또한 진지하게 있었다.
사실 이런 논제가 거론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청정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아야 할 승가에 청정하지 못한 경향이 자리잡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제 더이상 소유의 문제를 방치하기 보다는, 중요한 현안으로 삼아 대중의 공의를 통한 건강한 수렴이 절실해 졌다고 보아야 한다. 수련회의 토론 과정에서 한 스님은 “무소유를 계속 주장만 하다보면 오히려 삼보정재가 음성화되는 경향이 초래될 것”이라며 “올바른 여론 형성을 통해 현 승가가 갖고 있는 빈부격차 등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기야 할 것”이라고 할 만큼 승가의 소유는 당연시 되고 있으며 그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빈자와 부자로 나뉘기에 이르렀다.
단적으로 출가 수행자의 소유는 이제 특별한 차원이 아니라 빈부의 갈등이라는, ‘계급장’ 을 거론할 만큼 만연되어 있는 형편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성정에도 변화가 오고 무소유의 원칙이 흔들려야 한다는 점이 서글플 따름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법 도량을 세우고 다듬는 갖가지 불사에 대한 세간의 지적도 적잖이 나오고 있으며, 또불사를 둘러싸고 비리가 발생하여 심한 경우 사회법에 휘말리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또 지난 94년의 개혁불사로 탄생한 개혁회의에서는 출가사문의 승용차가 너무 고가의 고급승용차인 탓에 불자들의 비난을 살 우려가 있다 하여 일정한 기준을 정해 그 이하의 승용차를 이용토록 하자는 권고안을 발표한 바도 있다
하지만 그 권고는 반짝 효과가 있는 듯하더니만 요즘에는 오히려 더 고가의 차가 즐비하다. 휴대용 전화를 통해 버젓이 길가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다반사이고 아파트를 ‘토굴’ 이라는 가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스님들이 상당한 숫자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불교 시대에 맞는 포교와 사회적 역할의 제고를 위해 현대의 문명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향이 주류를 이루어 나간다면 대체 청정과 수행의 가풍이 제대로 지켜 질 수 있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좀더 검소하고 근면하여 대중의 정신적 숭앙을 받아야 할 존재가 출가사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최근에는 수행의 한 방편이 수익을 위한 사업이나 행사로 된다든지 아니면 대중에게 공덕을 쌓게 한다면서 실은 돈벌이를 꾀하고 있다든지, 또는 자신은 소유를 강화하면서 대중에게는 무소유를 강조한다든지, 심한경우 언론에 멋진 그림을 제공하기 위한 ‘이벤트성 행사’로 명예를 탐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 출가 수행자의 윤리를 스스로 망가뜨려 승가 공통체에 빈부가 존재하고 편의적으로 방편이 본질을 대체하여 간다면 장래는 명약관화하다.

일석이조를 노렸지만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작년 l2월 l6일부터 올 5월 31일까지 무려 반년 동안 ‘한민족 공동체를 위한 성금모금사업’ 을 벌인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그 첫째 행사로 지난 2월 26일. ‘이웃과 민족을 위한 자비의 탁발’ 을 거행하였다. 탁발로 모금한 성금은 북한동포 및 귀순자, 탈북자, 중국 조선족 동포는 물론 국내의 절대빈곤자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지난 62년 대처-비구의 분쟁을 종식하며 탄생한 통합종단 이래 탁발은 금지 되어왔다. 부처님 재세시부터 수행의 주요한 방편이었던 탁발이지만 우리의 풍토에는 자칫 출가사문으로서 대중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신을 낮추고 대중에게는 공덕을 쌓게 하는 과정이 비하되어 본래의 좋은 뜻이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이렇게 한것이다. 그것이 관례로 지리잡아 일반적으로 거리에서 탁발하는 사람은 사이비 승려로 인식되게끔 하였다.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종단이 앞장서서 대규모의 ‘행사’ 를 벌이며 탁발을 거행했다. 행사가 행사이니만큼 종단차원에서 꽤나 신경을 썼는지 언론이나 세인의 관심이 지대하게 모아졌다. 하긴 교계 방송사들이 생중계를 했고 대중에게 볼 거리를 제공하는 무대도 있었다. 서울의 중심 곳곳에서 거리탁발을 했으며 지방의 대도시에서도 또한 같은 시간대나 시차를 두고 치루어졌다. 이렇게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행사는 봉축 행사말고 지금껏 없었다.
어지간히 정력을 들여 수행의 방편인 탁발을 ‘행사’로 ‘승화’ 했으나 들인 비용이나 유, 무형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성과는 얻지 못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이번의 전국적 규모의 탁발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지대한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곧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의 구체적 표현이며 민족사회를 향한 불교의 실천적 거보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산중과 염세의 불교에서 제도와 실천 불교로서의 일단면을 보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의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혹여 우리 수행의 근간인 의식들이 수행의 본래 의미를 잃고 행사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단지 기우이길 바라지만 요즘 교계의 동정을 보면 그것이 기우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어찌된 까닭인지 교계에는 각종의 ‘성금 모금 행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불교텔레비전이 겪고 있는 재정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주식공모와 ‘소승대덕 선서화전’ 도 있었다. 물론 가장 손쉬운 방법이 십시일반이라고 불제자들의 적은 돈들이 태산처럼 모이길 바라는 심정이야 이해가 가찍만 특하면 이런 방법이 다반사로 쓰여지는 것은 참으로 곤란하다.

수익 행사는 지양해야

탁발 행사를 마치고 나서 종단에서는 대규모의 방생 법회를 치를 계획이다. 오는 4월 9일 음력으로 삼월 삼짇날을 맞아 경기도 팔당호에서 ‘한민족 공동체를 위한 방생 대법회’ 를 개최하는데 총무원 직할 사찰은 물론이고 용주사, 봉선사 등 두 개 본사의 신도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어 상당히 큰 규모의 방생이 될 것이라고 한다.
방생 또한 탁발만큼이나 좋은 뜻을 갖고 있으나 그것의 역작용에 대해 비판도 오래전부터 폭넓게 있어 왔다. 방생의 의미를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인간방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어 복지시설의 방문, 재소자 위문 등의 사회봉사로 전환한 방생이 점차 좋은 지지를 얻고 있다. 총무원에서도 이미 수차에 걸쳐 각사찰이나 종단 모임을 통해 방생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시정하도록 하라는 공문과 권고를 한 바 있다. 동시에 방생법회가 관광이나 행사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지적도 담겨 있었다.
방생의 이러한 폐단이 지적되고 있기에 우리는 이번의 대규모 방생 법회가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치뤄지길 바란다. 방생에 사용되는 물고기에서부터 방생에 참가한 불자들까지 모두가 그 본래의 목적에 맞는 ‘자연친화적인 방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특히 수도권 이천만 시민의 식수원인 팔당호의 오염 정도가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기에 이번의 방생을 보는 우리들의 염려는 특별하다.
총무원에서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한민족 공동체를 위한 성금모금’은 올해 5월까지 추진된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대규모’ 행사가 있을지 모르나 계속 수행의 방편을 사업의 목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면 그것은 재고되어야만 한다. 수행의 방편이 대중 속에 보편화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면 더 없이 환영할 일이지만 현재의 형태로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들은 뒤돌아 보아야 한다. 성금을 위한 우리들의 시화 가장 합당한 방법이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방법이 우리들의 수행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냉정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승가에 있어서 목적은 방법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승가는 대중의 정신적 귀의처이다. 그렇다면 승가의 도덕적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가. 말할 것도 없이 청정이다. 수행은 그 청정을 양분으로 자란다. 애초 출가 당시 삭발을 하며 다짐하는 서원이 무엇이던가. 소유와 명예 등은 마장을 부른다. 우리 사이에 어느덧 소유가 논란이 되고 빈부격차가 현실로 인정되고. 수행의 방편이 행사로 전락하는 일 등은 오늘 우리 사회의 혼탁에서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이 되어야 할 승가의 자리를 좁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