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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갖는 작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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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대 - 성원 1997년 04월 182호
용맹정진이 막끝나고 제주도에 있는 처사가 참례 왔었다. 오래 전부터 해인사 새벽 예불에 꼭 한번 참례해 보기를 원했는데 드디어 바람이 성취되어 몹시 기뻐했다.
일찍이 객실을 찾아 잠을 청한 처사는 새벽 도량석 소리에 잠을 깼고, 몸을 단정하고 바로 법당에 가서앉아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봄 잠바 차림으로 해인사의 새벽 추위를 이겨내기에는 너무도 역부족이었다. 도량석이 막끝나고 법당에 들어갔으니 종성과 북, 대종, 목어, 운판으로 이어지는 삼십여 분을 손을 부비며 참고 참아야 했다. 그는 그 아침 해인사의 엄숙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예불이 시작되어 합장하고 서 있어야 하는데 도저히 손이 시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해인사 아침 예불에 참례해 보고 싶은 오랜 바람을 팽개치고 예불 도중에 법당을 나가고 말았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그 처사를 만났는데 대뜸 하는 말이
‘스님! 아직도 해인사 수각의 얼음은 안 녹았지요’ 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늘 해인사에 살아서 그런지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내복은 커녕 빨래할 때를 놓치면 여름에나 입음직한 승복을 입기도 하고, 겨울에도 윗도리는 짧은 소매가 오히려 홀가분하게 느껴지는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제주도의 여름은 새벽 예불부터 선풍기를 틀지 않고는 더워서 견디기 힘들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가 좁다지만 결코 좁은 것만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와 더위에 대한 저항력은 사람에 따라 많은차이를 보인다.
해인사가 산중이지만 여름의 더위는 정말 대단하다. 도심의 날씨와 온도계 눈금으로 단순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바람 한점 없는 여름 날 사시 불공은 우리에게 인욕 정진을 가르치기에 충분하다. 대부분의 학인들은 동절기와 하절기 장삼이 따로 마련되지 않아서 춘추복을 사계절 모두 입는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무더운 여름 날 큰스님들의 시원스런 장삼과 얇디 얇은 가사는 우리 젊은 학인들의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비지땀을 흘리며 불공을 마치고 안행해 관음전으로 사시 공양을 하려고 들어갈라 치면 아찔하다.
한번은 도반스님들과 여름용 짧은 소매 승복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있다. 결론에 가서는 승가의 보수성과 승가에서의 우리의 초라한 위치를 자조하다가도 반 가운데에 누가 종정이 되고 총무원장이 되면 꼭 실현시키자고 굳은 언약(?)만 해 두고 말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강원을 졸업하고 내게도 얇은 여름용 장삼과 가사를 마련하고 바쁘지 않은 일상을 보내게 된다면. 그 때 젊은 스님들의 고통을 잊지 않고 짧은 소매 승복을 부르짖을 수 있을까 의심이가기도 한다.
행전 문제를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렇다. 강원에서는 사교반이 되어「능엄경」을 마치고 대교반 스님들의 허락을 받고서야 행전을 풀고 생활할 수 있다.
강원 생활 중에는 꿇어 앉는 일이 많기 때문에 행전은 보통 성가신 것이 아니다. 치문반 때부터 대교반이 되면 곧바로 행전부터 풀자고 결의하고, 한때는 행전의 역사까지 찾아본 적이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를 뭉치게 한 것은 대부분의 선배 스님들이 행전을 묶지 않고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하지 않으면서 후배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까닭을 붙인다 해도 평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인 승가에서는 올바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우리도 어느새 행전을 풀고 다니는 위치에까지 왔고 뿐만 아니라 이젠 강원의 모든 문제를 결정지울 수 있는 화엄반이 되었는데도 누구 하나 이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일은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렵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 않았던가?
작은 일 하나하나를 잘 기억했다가 때에 맞추어 고쳐나가는 것이야말로 점진적인 진보일 것이다.
지금 또다시 우리가 더위와 추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뒷날에 가서는 한낱 단편의 추억이되고 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은 몹시 더운 여름이었다.
한 스님이 꾀를 내서 행전만 차고 바지와 동방을 벗어두고 장삼과 가사만 입고 예불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너무도 시원한 탓에 자신이 승복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큰방에 들어와 그만 가사와 장삼을 훌렁 벗어 버린 것이었다.
반스님들의 놀라움과 윗반스님들의 분노가 겹쳐 그 스님은 오랫동안 과보를 받아야반 했다. 부처님도 입지 않으셨고, 하라고 시키지도 않은 승복을 잠깐 벗었다고 그 스님이 받은 과보는 참으로 혹독했다.
많은 것들을 새로이 그 시대에 맞게 잘 원용한 옛 스님들이야 말로 진정 용기 있고 합리적인 분들이었던 것 같다.
어느 시대에 필요하여 만들었다면 이 시대에는 이 시대에 맞게 재수정하여야 한다. 인욕바라밀만을 강조하지 말고 최소한 외부 환경과 불필요한 힘 겨루기를 하지 않고 선정바라밀을 닦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바라문교의 형식과 가식을 용감하게 거부하고 진리의 실체로 우리를 이끌어 주기에 힘쓰신 부처님의 후예답게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실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름에 관광객의 시원한 옷차림을 부러워하는 내게 ‘스님! 그게 그렇게 부러우면 집에 가면 될꺼아이가” 하는 도반 스님들의 구박을 올 여름에도 받아야 할 걸 생각하니 벌써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보다는 가야산에는 곧 봄이 올 것이고 시원한 봄의 향기가 가득하고, 생기가 넘치는 좋을 때만을 생각하고 싶다.
또 인욕의 계절 여름의 횡포보다는 더위를 걷어내고 우리를 맞이줄 시원한 가을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희망차게 마지막 남은 강원 생활을 엮어가고 싶다.

오늘은 꼭 해인사 얼음이 다 녹았다고 그 처사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얼마나 기뻐할까, 해인사에도 따스한 봄이 왔다는 사실을 알면. 그리고 내일 아침 예불 시간에는 아름다운 제주도에까지 명량진중한 해인사 예불 가락이 들리도록 정성을 다해야지. 모두 함께 희망찬 봄을 맞아 부처님의 세계를 노래하게 해야겠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