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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좋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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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로 가는 길 - 박원순 1997년 04월 182호
“특별히 좋은 사과를 준비했으니 절대로 남에게 주지 말고 집에 가서 드시오.”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이 김우석 전 건설부장관을 만나 제철소 해안도로 건설을 부탁하며 한말이라고 한다. 이 말 끝에 일억이 든 사과 상자를 김장관의 승용차에 실어주었다는 것이다. 일억 원짜리 사과라면 참으로 기막히게 달콤할수밖에 없다. 언제나 뇌물은 꿀맛과 같은 것인데 일억 원이 든 사과상자라면 아무리 무거워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터였다.
이런 꿀이 언제나 줄줄 흐르는 것이 권력인 모양이다. 그래서 대통령, 국회의원이 되려고 그 아래 장관 등 고위공직자가 되려고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온 나라 걱정에 잠자리를 설치고, 정책 개발에 골머리를 썩혀야 할 위정자들이 그 자리가 지겹다고 사표 내는 사람이 없는 것도 그 꿀맛 때문인 모양이다. 최근 차츰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작은 대통령 김현철 씨와 그의 주변에 몰렸던 사람들을 보면 권력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삼십대의 철없는 젊은이들마저 꼬이게 만든 것이 바로 권력의 꿀맛이었던 것이다.
정작 김현철 씨는 공직 하나맡은 것이 없는 무일푼의 대학원생 신분이었다.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이유뿐이었다. 그 빽으로 안기부간부와 각료들, 방송계 요직의 인선, 피씨에스사업자 선정과 같은 이권 등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안기부의 주요 간부들조차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며 중요한 정보보고를 수시로 해 왔다는 보도에 국민들은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그와 함께 놀아났던 한 불량한 의사가 녹화한 화면들을 보면서 그는 청와대 수석, 장관들을 “데리고 놀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권력과 이에 따르기 마련인 돈의 연관고리를 이제는 끊을 때가 왔다. 권력과 뇌물에는 언제나 꿀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운 맛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더 이상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부패로 나라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지 않을 제도적 방책을 만들고 권력의 꿀맛에 맛들인 사람들을 단호히 처단하여야 한다.
영국 헨리 4세 당시의 대법원장은 죄를 지은 왕자를 서슴없이 감옥에 가두었다. 헨리 5세가 된 그 왕자는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을 가두었던 그 대법원장에게 묻는다. 대법원장의 답변은 간단명료하다. “다만 법의 위신을 세우고 부왕을 위하여 정의를 다했노라’고. 그 다음이 더 멋있다. 그 말을 들은 헨리 5세의 말이다. 경의 말이 옳소. 왕자에게까지 정의를 행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재판관을 갖고 있는 나는 행복하도다.”
전제군주제 아혜의 용감한 재판관의 이야기가 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에서도 훌륭하게 들리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모든 검찰관과 재판관이 그토록 용감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보장하고 있는데도 모두 비겁하기 짝이 없다. 죄가 있는데도 수사하기를 슬슬 피해가고 죄 있다고 법정에 선 사람들에게도 매서운 형벌이 내려지지 않는다. ‘특별히 좋은 사과, 그런 사과를 맺는 부정한 권력이 이제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도 검찰과 사법부가 제대로 설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