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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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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최봉희 1997년 04월 182호
한 자루의 촛불이나 석유 등잔불, 천장에 매단 램프의 아늑한 불빛, 안개 낀 런던 거리의 우울한 가스등. 시골집 허름한 부엌의 삼십 촉 희미한 전구의 불빛이라 해도 그것들은 마음의 빛을 내는 고마운 하나의 물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불빛들은 단지 어둠을 밝히는 데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 그것은 절망을 끌어안거나 이겨내거나 건져 올리는 구원의 손길이 되며 희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나는 삼십 년 전에 젊은 어머니로서 내가 체험했던 기적과도 같은 환희와 고통에 몸을 떨었던 그 때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둘째 아기가 생후 구개월이 되던 해 겨울이었습니다.
어미의 젖을 자꾸만 토해내는 심상치 않은 어린 것을 등에 업고 닷새째 오리 길의 황토 고갯길을 넘어 좌일 장터에 있는 의원을 찾아 다닐 때 그는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것이 좋다고 말입니다.
나는 곧장 광주의 잘 알려진 소아과를 찾았던 것이며 그 진찰 결과 아기의 병명은 화농성 뇌막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아기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청천벽력과도 같은 아찔함에 내 눈앞의 세상은온통 노랗게 보였습니다. 참으로 더욱 놀라운 것은 \'병이란 아무나 재수가 없으면 걸린다\'는 허무 맹랑한 의사의 말이었습니다.
그 해 설날도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입원 생활은 허루 세 차례 아홉 대의 주사로 아기의 병을 치료하는 일이었습니다. 아기의 병이 좀처럼 완쾌되지도 않은 불안정한 상태로 보름 만에 퇴원하게 되던 날 하얀눈이 세상밖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광주에서 강진을 거쳐 좌일 장터까지 네 시간의 비포장길을 달려 버스가 닿았지만 어느새 사방은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산기슭에 들어앉은 두 군데의 마을을 지나 바다 끝머리에 인접한 마을인 용일리까지 그 밤에 나는 돌아가야 했습니다. 비탈길의 언덕과 논둑길 그리고 산모퉁이에 눈덮인 길은 보이지 않고 바삐 재촉한 내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겨울의 짧은 하루 해가 어둠에 그만 묻히고 말았습니다.
첫 마을에도 미처 닿기 전이었지요 외투를 푹 뒤집어 쓴 채 등에 업힌 아기는 잠이 들었지만 그 가냘픈 숨결만은 몹시 초조하고 불안하게 가슴으로 전해졌습니다. 먹물을 뿌린 듯 하늘엔 별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혼자 속으로 울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치 앞을 더 갈수 없는 어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슬프고 두렵고 괴로운 것이라고 처음으로 그런 절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의 회복에 어떤 확신이 서지않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막막한 자신의 삶의 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 바로 그 때였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어디선가 사람이 내는 반가운 발자국 소리와 함께 맞은편산기슭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지요. 누굴까? 등불을 밝히고 이 곳으로 오고 있는 저 사람은!
문득 사밧티의 어느 여인이 부처님이 다니시는 길목에 밝혔다는 그 ‘등불’ 이 생각났습니다. 너무 가난한 이 여인은 지나는 사람에게 동전 두 닢을 구걸하여 얻은 돈으로 기름을 사서 등 하나를 밝힌 것입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내 생에는 나도 부처님이 되어지이다.’ 하고 빌었습니다.
수만 개의 등을 켠 연등회에서 이 여인이 밝힌 등불만은 누가 끄려 해도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밝게 빛을 냈던 것입니다. 마음 착한이 여인의 넓고 큰 서원으로 그가 정성으로 켠 등불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내 앞에 기적처럼 나타난 저 등불이야말로 어쩌면 자비로운 부처님의 손을 빌어 현신한 그 여인의 꺼지지 않는 등불 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불빛은 찬공기 속에 뿌옇게 흔들거리며 밝고 둥근 무리를 이루면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웃 마을에 사는 중년의 이주머니, 그는타향에 있는 자식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를 미리 알고 동구밖까지 마중 나온 늙으신 어머님 같았습니다.
‘이젠 살았구나!’ 등불 하나가 새로운 용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는 무겁게 내려앉은 주변의 어둠을갈라놓으며 대뜸 나의 갈길에 앞장서서 길을 열어 주었던 것입니다. 세상엔 생각했던 것보다 고마운 사람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시골 인심은 도시와는 다르고 아직도 그 곳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의 세상이라고 하지만 인간적 비애를 느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이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그 꺼지지 않는 등불은 지금도 나에게 아픈 기억과 아름다운 젊은 날의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등볼 이란 그 의미도 내게는 특별해서 크고 강렬한 그 무엇이며 그 파장의 색채는 실로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고 여겨집니다. 이젠 어른이 된 건강한 둘째 아이를 보며 어린시절 그에게 빛이 되어준 ‘꺼지지 않는등불’ 이 언제까지나 그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