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나쁜 사람도 성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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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7년 04월 182호
「열반경」은 석가모니의 입멸을 주제로 삼아 그의 죽음의 의의를 철저히 추구한 경전이다.
「열반경」을 구체적으로는 「대반열반경大盤漫盤經」이라 부른다. ‘대반’ 이란 ‘마하-빠리’ 곧 ‘완전한’ 이란 의미이고, ‘열반’ 이란 ‘니르바나’ 곧 적정寂靜이란 뜻으로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번뇌의 불을 다 꺼버린 경지, 곧 멸도滅度를 의미한다. 따라서 ‘대반열반’이란 석가모니가 육체인 생신生身을 버리고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열반경」은 크게 「아함경」에 포함되는 소승의 「열반경」과 대승의 「열반경」으로 나눈다. 소승의 「열반경」은 석가모니 입멸 전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서 소본小本 「열반경」이라 하고, 대승의 「열반경」은 석가모니가 입멸 직전에 설한 교법, 특히 열반의 의미를 대승의 입장에서 교리화한 것으로 대본大本 「열반경」이라 한다. 현존하는 대본 「열반경」 가운데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량北京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416-423)한 13품 40권의 「대반열반경」. 일반적으로 「대반열반경」이라 부르지만, 때로는 ‘북본北本열반’ 또는 ‘40권본’ 이라고도 한다.
둘째, 유송劉宋(420-479)의 혜엄慧嚴 등이 번역한 25품 36권의 「대반열반경」. 이것은 북본 「열반경」이 남쪽의 송나라 지방으로 전해지자 혜엄과 혜관慧觀 등이 40권본 외 전반을 6권 「니원경」과 대조하여 25품 36권으로 나눈 것인데, ‘남본열반’ 혹는 ‘36권본’ 이라고도 부른다.
셋째, 동진의 법현法顆과 불타발타리佛院跋馱羅가 공동 번역(416-418)한 l8품 6권의「불설대반니원경」. 이것은 「북본열반」의 최초의 5품까지에 해당하며, 일반적으로 6권 「니원경泥洹經」이라 부른다.
넷째, 당의 약나발타라若那跋陀羅와 회녕會寧이 공동 번역(664-665)한 「열반경후분漫葉經後分」2권. 대본 「열반경」에 입열반의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음을 알고 추가한 것이다.
대본 「열반경」은 쿠시나가라 근교의 두 그루의 사라나무 아래서 2월 15일에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시려고 하는 때를 기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내용은 열반의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신의 열반은 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에 불과하며, 실은 법신法身의 열반을 설하는 것이 주안점이다. 그러므로 대본 「열반경」에서는 ‘불신의 상주’ , ‘일체중생 실유불성’ ‘천제성불’ 등을 설하여 불성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본 「열반경」은 석가모니의 입멸이라고 하는 중대 시기를 피악하여 단지 석가모니의 죽음, 곧 입멸을 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열반경」의 주안점인 불신관佛身觀을 전개하였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세간의 무상한 법에 따라 생신의 입멸을 보이지만, 실은 불신佛身은 생멸 ·변화가 없는 상주常住라고 하는 것이다. 번뇌로 덮인 전도顧倒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신의 입장에서만 보는 자에게는 석가모니의 죽음은 분명히 무상할 것이다. 그러나 달이 반월, 만월, 월식이 되는 것은 태양이 가리기 때문이며, 달은 언제나 만월인 것처럼 불신도 상주라고 하는 것이 「열반경」의 주장이다.
또한 대승불교의 궁극적 사장인, 일체의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고 선언한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聚生 悉有佛性’ 이란 쉽게 말하면 모든 중생은 불타가 될 가능성 곧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불성은 시간적으로는 상주常住이고 영원하며, 공간적으로는 보편성을 가지기 때문에 모든 중생은 다 이 불성을 가지게 되고, 불성이 있기 때문에 번뇌를 끊고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같이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는 한, 일체의 선한 근본(善根)을 끊었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없다고 하는 일천제一闡提라 하더라도 이 보편성의 불성이 없을 리 없고, 따라서 일천제도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열반경」의 종교적 귀결이며 논리이다. 선근은 끊을 수 있다 하더라도 불성은 선천적으로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선근을 끊는 것과 불성을 갖춘다고 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일천제는 불성을 갖추고 있지만 무한한 죄업의 두께로 덮여 있기 때문애 끄집어 낼 수가 없다. 이것은 마치 누에가 스스로 허물을 벗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체중생에게 법을 인정하는 대열반의 세계에서는 일천제라 하더라도 믿음(信)의 마음이 소생한다고 하는 것이 대본열반의 후반에 전개하는 천제성불闡提成佛사상이다.
한편, 대본 「열반경」 ‘성행품’ 에는 유명한 설산동자의 사신捨身구법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옛날에 부처님은 바라문이 되어 설산-히말라야-에서 수행하였으므로 설산동자라 불렸다. 어느날 제석천이 동자의 마음을 시험하기 위해 무서운 나찰의 모습으로 ‘제행諸行-만물-은 무상無常한데. 이것은 생하고 멸하는 법-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라는 게송을 설하였다. 동자는 이것을 듣고 환희하며, 이와 같은 해탈의 문을 열어주시는 분은 누구일까? 누가 생사生死의 짐에서 홀로 깨어 이런 말을 설하는 것일까? 생사의 세계에서 굶주리고 있는 중생에게 누가 이런 깨달음의 진미를 보여주는 것일까? 생사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생을 위해 좋은 선장이 되어 주시는 분은 누구일까? 중생은 번뇌의 중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데 좋은 의사가되어 주시는 분은 누구일까?’라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거기에는 나찰이 서 있을뿐이었다.
동자는 어쩌면 나찰이 과거 불로부터 이 게송을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나찰에게 나머지 게송을마저 들려주면 평생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나찰은 너무 배가고파 더이상 외울 수가 없으며, 자신은 사람와 고기와 피를 먹고 살아간라고 했다. 동자가 나머지 게송을 들려주면 자신의 몸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자, 나찰은 나머지 게송으로 “생生과 멸滅이 모두 멸해 버리고, 적멸을 낙樂으로 삼는다’라 읊었다. 동자는 이 게송을 돌과 나무, 벽, 길, 의복에 새긴 뒤 나무에 을라가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 때 나찰은 제석천의 모습으로 돌아와 공중에서 떨어지는 동자를 받아 지상에 안치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정법을 구하기 위해 몸까지 버리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있는 정법이나마 지키려 애쓴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어수선하지는 않을 텐데.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