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l997년 6월 9일자 중앙일보기사의 일부이다.
“똑- 똑- 똑. 나자막한 소리가 산사山寺의 초가을 적막을 가른다. 자정 무렵, 경북 안동 광흥사 법당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온 이 둔탁한 음향은 부처님의 복장을 터뜨리는 소리였다.”
이 기사는 부처님의 복장물 도둑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을 우려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기사에 따르면 복장물을 턴 도둑들이 이의 감정鍵定을 위해 이 분야의 관련 교수들에게 감정을 의뢰하는데, 대개 교수마다 일 년에 한두 건 정도의 감정 의뢰가 들어온다. 감정을 할 만한 교수가 대여섯 명쯤 되는 것으로 볼 때 한해에 적어도 십여건 이상의 부처님 복장이 도둑들에 의해 터지고 있는 것으로 이 기사는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복장이 털린 사찰에서 도난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감정 의뢰를 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음을 감안한다면 복장물을 도둑 맞은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올해 들어서 유난히 부처님의 복장물이 도둑을 맞는 빈도가 꽤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교계는 물론 문화계를 놀라게 했던 기림사 대적광전의 석가모니불상이 흉측하게 복장이 뜯겨진 모습으로 공개된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조계종단에서는 당해 사찰 주지를 징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각 사찰은 성보문화재의 보존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교계 언론의 지적이 잇따랐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복장이 갑자기 수난을 당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요즘 들어 부처님의 복장을 노리는 도둑들이 부쩍 늘어난 데는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 그럴 만한 원인이 있다. 지금부터 그렇게 된 아주 중대한 원인 가운데 하나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지난 3월 5일, 조계종 총무원과 성보문화재 연구원은 국내 유수의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 놓고 해인사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복장에서 보석 구슬로 장엄된 광배가 있는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두 구와 고려시대 계첩, 의복 열한 점이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며 이를 공개 발표했다.
이 발표는 예상대로 한국의 모든 언론의 지면과 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복장에서 고려에 들어온 인도 승려 지공스님(1300-1363)의 수결手決이 찍힌 현존하는 최고의 계첩이 발견됐고,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이 두구나 나왔으며, 1326년 전에 만들어진 의복이 열한 점이나 나와 고려시대 의복 형태를 완전하게 복원할 수 있게 돼 복식服節 연구에 새 전기가 마련됐으니, 이런 국보급 문화재가무더기로 발견된 것을 보고 흥분하지 않을 언론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이런 조계종 총무원과 성보문화재연구원의 발표 행위를 지켜보며 수심에 찬 표정을 감추지 못한한 중견 불교미술사학가가 “큰일이다. 이제 전국고찰의 불상들은 성한 게 없어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난리법석을 피우는 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한 탄식은 불교계에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의 탄식은 성보문화재의 공개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담긴 탄식이었다. 그는 이 발표가 복장물의 도난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예견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3월 5일의 쇄종 총무원과 성보문화재연구원의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물 공개가 최근 빈발하는 복장물 도난사건의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일이 있은 뒤 각지에서 부처님의 복장이 뜯기고 복장물이 도난 당하는 사건이 늘어났으면 응당히 책임을 통감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부처님의 복장물이 지난 3월의 그 발표만큼 엄청난 여론의 반향을 일으킨 경우는 많지 않았다. 과거에도 복장물에서 국보급 문화재가 발굴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무렵에는 오늘날처럼 ‘문화재=돈’ 의 공식이 사회에 만연한 시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문화재를 돈으로 재단하는 프로를 방영하여, 그 부작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시점에 니온 ‘복장에서 국보급 문화재가 쏟아져 나왔다’ 는 보도가 문화재 전문털이범들의 시선을 부처님의 복장으로 향하게 했음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 일이다. 모르긴 모르되, 문화재 전문털이범들에게 부처님의 복장은 진귀한 보물이 가득 들어 있는 타임캡슐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가 아닌가. 결과적으로 지난해 9월에 이미 발견된 해인사 복장물을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떠들석하게 공개한 총무원과 성보문화재연구원의 처사는 결코 잘한 일이 아니다.
성보문화재의 경우 도난을 당하고 나서 범인이 잡히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특히 복장의 경우에는 도난 당한 내용물을 알 수 없으므로 더욱 그렇다. 복장물을 도난당한 사찰들이 이 사실을 총무원에 알리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사례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이 확실하다. 또 복장물을 도난 당한 사찰의 주지가 이 사실을 총무원이나 경찰에 알릴 경우 징계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기림사의 선례는 도난사실을 은폐하는 경향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러니한 것은 상황이 이런데도 부처님의 복장물을 지키려는 염려가 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끔찍이 생각해야 할 교계보다는 외부의 문화재 관련자들 사이에서 더 크다는-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점이다.
최근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이 잇단 복장물 도난사건과 관련해 모든 고찰의 불상 복장물을 모두 꺼내 박물관이나 안전한 곳에 보관하자는 논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모임에서 차라리 전국에 있는 고찰의 불상 복장물을 차제에 모두 공개해 이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일련번호를 매겨 도난에 대비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상횡에서는 복장물을 지켜낼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견해라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복장물을 신성한 예배의 대상으로 보는 불교계의 정서로 볼 때 이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에 불과하다. 불상의 영험을 굳게 믿고 있는, 그리고 그 영험력의 근원은 불상과 복장물에 깃든 옛 장인과 불자들의 지극한 서원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불교계의 분위기에서 부처님의 복장을 도난의 우려라는 이유만으로 일제히 연다는 것은 불경不敬한 행위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불교계는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적어도 이 문제를 풀어야 할 1차적 대상은 불교일 수밖에 없는데, 불교는 복장물 도난을 막을 어떠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전국 고불상의 복장물을 모두 열어 이를 보존관리하자는 견해를 뛰어 넘는 대안을 가지고 있는기? 도대체 이 문제에 대해 하룻저녁이라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본 이가 있기는 한 것인가?’ 하는 몇 가지의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 아직까지는 이러한 질문에 속시원히 대답할 사람도, 모범답안도 없는것 같다.
우리는 흔히 조선왕조 오백 년을 문화의 황폐기라고 부른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에까지 이어지는 찬란한 불교문화의 전통과 창조가 조선왕조에 와서 맥이 끊겼으니 이는 당연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을 사는 불자들은 역사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뒷날 우리가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조선시대의 불자들은 위정자들의 정치적 탄압으로 불교문화를 꽃피우지 못했지만, 20세기의 불자들은 선조들이 남겨준 몇 안되는 성보마저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수치스러운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고민해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는 부끄러운 불교인들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더 부끄러운 것은 이러한 것조차 인식하고 있는 불자들마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복장을 뜯기는 부처님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듣는 귀 밝은 불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