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840년 아일랜드에서는 대기근으로 전체 주민의 절반 이상인 삼백여만명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 때의참상을 저 유명한 영국인 소설가 스위프트는「걸리버 여행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아이는 어차피 제대로 길러질 수 없기 때문에 포동포동하다면 차라리 식용육으로 팔아 넘기는 편이 좋다.” 이 표현은 흰 빵과 홍차를 행것 즐기던 그 무렵 영국인들이 굶어 죽어가는 아일랜드인의 기근사태를 과밀한 인구의 자연스러운 조정 과정쯤으로 보았다는 시각도 있다.
그 뒤 영국인들은 그 때 그들이 행했던 업보 곧, 굶주린 이웃을 외면한 과보를 오랫동안 받아야했다. 지금까지 영국인들은 뼈에 사무친 아일랜드인의 저주에 그리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민족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된 것이다. 들려 오는 여러 소식에 따르면 지금 북한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참상은 백오십여 년 전 아일랜드의 그것을 뛰어 넘는다. 얼마인지도 모를 많은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굶어 죽어가고 있다. 북한의 어른들이야 오늘의 지경을 부른 당사자라서 그렇다 히더라도 그 곳 어린이들에게 닥친 비극은 어찌할 것인가. 이들은 결국 남북을 떠나서 민족의 앞날을 책임질 우리의 미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미래 통일 한국의 주역들에게 엄청난 재앙의 화근을 물려주는 것에 다름아니다. 오늘날까지 앙금으로 이어지는 ‘아일랜드의 기근과 영국의 외면’ 이 웅변으로 알려주는 교훈은 바로 이점일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이민족異民族이고 우리는 단군 힐아버지의 핏줄을 이은 동족이 아닌가.
버림받고 굶어 죽는 북한의 어린이들. 약 이백사십만명에 이르는 만 6세 미만의 북한 어린이들은 굶어 죽었거나 살아 있어도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굶어 죽어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현실에서 영양 결핍이나 발육 부진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질만큼 북한의 식량사정은 심각하다고 한다. 이미 이백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1950년의 6.25 한국 전쟁 때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들려온다.
북한의 어린이들은 굶주려 죽어가는데 남한의 어린이들은 비만을 고민하는 현실. 이 희비극을 우리는 이웃나리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먹고 사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굴어서는 안된다’는 전통적 정서를 가진 우리 스스로를, 우리 마음속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양심을 설득할 만한 어떠한 논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지난 7월 5일로 불교게 북한 동포 돕기 성금 모금액이 불교계 모금액 사상 최고인 십억 원을 넘어섰다. 어린이 불자에서 스님에 이르기까지 사부대중이 두루 동참해서 일궈낸 금액이기에 그 의의가 더욱 크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교계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은 불교계의 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일종의 불우 이웃 돕기 운동 정도로 변질되어 지속적인 통일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몇 기지 이유가 있다. 불자들의 북한 식량문제를 보는 시각이 불살생계의 적극적 표현인 방생의 절실한 차원으로 승화하지 못했다는 점과, 불자들의 성금을 조직적으로 끌어내는 주체가 되었어야 할 종단의 무능無能, 무의지無意志, 무순수無純粹 등이 그것이다.
교계 북한 동포돕기 운동은 조계종 총무원 및 교구 본사를 축으로 하는 ‘북녘동포돕기불교추진위원회. (이하 불교추진위원회)와 법륜스님을 중심으로 한 정토포교원 조직이 기반이 된 우리민족 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 (이하 불교운동본부)의 두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두 단체는 서로 원활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갖지 못함으로써 더욱 효율적인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스스로 막는 한계를 드러냈다.
북한동포를 돕기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고 있는 불교운동본부는 8월 12일 현재 당초 목표인 구십만명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불교추진위원회 역시 전국 사찰에서 북한동포 돕기 법회를 통해 모금된 성금을 효과적으로 거둬들이지 못하고 있다. 불교계가 이처럼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하나로 묶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다각적인 북한 동포 돕기 운동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 되고 있다.
불교운동본부는 북한 동포돕기 운동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후발단체인 불교추진위원회의 출범 과정에서 좀더 대승적인 자세를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의 노하우를 불교추진위원회에 충분히 전달해 주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것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출범 넉 달째를 맞이하는 불교추진위원회는 범종단적 기구라는 외형에 걸맞지 않게 모금실적이 오억여 원에 머물고 있으며, 조계종, 태고종 등 일부 종단만이 동참하고 있어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특히 불교추진위는 모금한 성금을 실제 식량지원을 위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8월 중순 현재). 그 표면적인 이유는 대한적십자사가 8월 말까지 오만 톤의 식량 이외에는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다는 대북 식량 지원 방침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와는 달리 범종단적 기구 성격의 불교추진위원회가 조선불교도연맹과의 몇차례 접촉에도 불구하고 식량을 보내기 위한 별도의 방안을 강구하지 못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넓지 않다.
각 사찰이나 불자들이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일회성 불우 이웃 돕기 정도로 받아들어고 있음도 또한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의 빼놓을 수 없는 오점이다. 각 지역에 있는 오백여 개의 조계종 사찰에는 ‘한 생명 살리기 1백일 결사운동’ 의 일환으로 지난 5월 21일부터 북한 동포돕기 모금함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각 사찰이 불교추진위원회에 송금한 북한 동포돕기 성금은 대부분 부처님 오신 날인 5월 14일을 전후해 모금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사찰이 두 번 이상 송금한 경우도 극히 드물다는 점은 교계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이 일회성 불우 이웃 돕기 수준을 넘지 못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불교도의 삼십 퍼센트 정도의 신자를 가진 한국카톨릭이 공식적으로 삽십여억원, 비공식적으로 삼십여억원 등 모두 육십억 대의 북한 돕기 성금을 모금하여, 이를 전달하고 있는 현실은 불교계가 심각히 받아들어야 할 문제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늘날 가장 시급한 민족문제인 북한동포의 아사嚴死 방지를 위해 가장 관심을 갖고 해결에 노력한 집단은 민족 종교임을 자부해 온 불교가 아니었다는 역사의 평가를 불교는 감수해야 할 형편에 놓여 있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문제를 놓고 어느 종교가 잘했고, 어느 종교가 못했고를 따지거나 역사의 평가를 의식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어느 종교가 이만큼 했으니 체면상 우리도 이 정도는해야 한다는 류의 정서도 그리 건강한 것은 못된다.
부처님은 생명 살리는 문제를 제일의 덕목으로 가르치셨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급하고 가치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여러 경전이나 율장을 통해 누누이 강조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동포를 살리는 것은 적어도 불자들에게 있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가 되어야한다.
북한 동포를 돕는 문제가 단순한 불우 이웃 돕기 운동과 다른, 달라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