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서야 진실로 이 뜻이 알아질 것 같았다. 어느날 바깥에서 돌아오니 신문에 난 미륵부처님 사진을 반듯하게 나의 책상 위에다 두신 아버지를 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부처님 전에서 지난날 모질게 밉던 어떤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내가 ‘감사합니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놀라 ‘야 저 사람은 내가 가장 싫어하던 사람인데 눈시울까지 적시며 감사하다고? 잘못된 것 아냐?’ 그러나 아니었다. 흡사 한번 익은 감이 다시 떫어지지 않듯이.
지난 봄이었던가 어느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차한잔을 나누는데 돌연 밖에서 무언가 ‘팡’ 하였다. 놀라서 나가보니 이유인즉 참새 한마리가 하늘을 날으던 중 유리창인줄 모르고 정면 충돌을 한 것이었다.
띵한 상태로 두 날개를 푹 늘어뜨리고 있는 폼이 우습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해서 “얘야 이렇게 유리창도 모르고 이렇게 부딪히니 ?”하였다.
그런데 안에서 느닷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이번엔 내가 황 부딪혀 띠잉 하였다.
“부처님께서 미경이 내려다 보시면 뭐라 하실란고?”
아! 그 부끄러움 ! 참새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날아가기라도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법당에 들러 “지심귀명례 현참새신 성관세음보살 마하살 ! ” 하였다.
이렇듯 조금씩 나는 더불어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부처님임을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임을 깨닫는다. 좋은 것에서만 모든 의미를 찾으려 했던 지난날의 그릇된 습성을 이젠 아낌없이 버리려 한다.
“요즘 어때요?” 하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럴때 마다 난 “좋아요”한다. 잔잔하게 기쁜 일들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고, 부처님이 관세음보살님이 내 가슴에 항상 계심을 느끼고 하루를 시작하고 접는다. 하루하루가 어린애마냥 참 재미있다. 조금씩 달라져가는 자신의 모습도 좋고, 뭐랄까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이랄까? 그래서 앞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미운사람
슬픈 일도 차츰 사라지고 지난 세월 동안의 슬픔, 미움, 거짓같은 것들이 차츰 내 의식에서 떠나감을 느낀다.
요 며칠동안 나는 아팠다. 몸살이라는 것이었다. 푹 쉬라고 했다. 덕분에 누워서 반야심경설법 테이프 등을 들으며 잊었던 많은 얼굴들도 만나곤 하였다. 관세음보살님 마음은 어디서나 읽을 수 있었다. 반야의 내면이 더욱 푸르고 높아지라는 몸살의 방편을 주시어 ‘자기성찰’의 기회를 주시는구나.
부처님께서 나를 내려다보신다면?
“지심귀명례 현몸살 성관세음보살! ”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웃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