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월급장이로서는 보시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초하루 보름에 절에 가서 불전금을 보시할 때도 만원짜리와 오천원짜리를 놓고 망설이어야 하는 정도의 신분이다. 초파일에도 남처럼 10만 단위 짜리 등은 한 번도 달아 보지 못했으니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런 나에게 보시를 말하라고 하니 겁이 벌컥난다.
그런 대로 평소에 들은 이야기 세 가지가 있어서 너스레하게나마 늘어 놓아 본다.
·양무제(梁武帝)와 공덕보시
불사 보시는 많이 하고서도 좋지 못한 평을 받는 사람 가운데 흔히 거론되는 사람이 양(梁)나라의 무제(武帝)다. 무제가 달마대사를 처음 만났을 때 가진 대화가 보시와 공덕에 관한 내용이었다. 무제는 그가 평시에 한 조사(造寺) 공양(供養) 설재(設齋) 보시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는가를 달마대사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달마대사는 「한푼의 공덕도 없다」라고 단정했다. 양무제는 물론이었고 당시의 사람들은 달마대사의 실무공덕(實無功德)이 갖고 있는 진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문제가 2백년 후인 당나라에 위자사(韋刺史)라는 지방관리장에 의해 다시 제기됐다. 위자사는 육조 혜능(慧能) 대사를 모시어 큰 잔치를 베풀었다. 지혜높은 신도들이 특별 초대됐다. 요즘도 모모한 인사들은 큰스님을 모시고 대단한 디너파티를 마련한다. 그 자리에 이름있는 신도와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 또는 초대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생각은 다를 바가 없다.
파티가 끝날 즈음 위자사가 혜능스님에게 물었다.
「달마대사가 무제의 불사공덕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위자사의 이 같은 질문에는 재벌이거나 권세가 있거나 한 재가인이 흔히 갖고 있는 심사(心邪)가 은근히 엿보인다. 혜능선사의 대답은 매우깊었다. 「여보시오 공덕이라는 말의 공(功)은 견성(見性)을 말하고 덕(德)은 평등을 뜻하는 것이오. 그러니 언제나 본성의 진실한 묘용(妙用)을 생각하고 머무르지 않으며 꿰뚫어 보는 것을 공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공덕이란 돈 몇 푼 주고 얻는 것이 아니다. 공덕이란 절을 지을 때 기왓장 값 몇 푼 더 보시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견성 그 자체가 공덕이다. 견성의 경지에서는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주는 양(量)의 많고 적음도 없다. 오직 평등 뿐이다.
사람들은 종종 공덕과 복덕을 착각한다. 공덕(功德)은 자성(自性) 내에서 발견되고 얻어지는 것이다. 겉치레의 보시나 스님공양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얻어지는 것은 복덕이다. 이 점을 무제를 비롯하여 위자사, 아래로 요즘의 몇몇 인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덕(福德)은 영리추구에 속한다. 영리를 얻으려면 하필 부처님을 거간에 넣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 감투를 얻으려고 굳이 법당에서 싸울 필요는 없다.
·진묵대사(震默大師)의 법신보시(法身布施)
이씨조선 인조(仁祖) 때의 생불(生佛) 진묵(震默)대사가 사대부의 천렵장을 지나고 있었다. 술이 거나한 선비들이 진묵대사에게 술과 물고기 매운탕을 들이밀며 먹기를 강요했다. 진묵스님의 입장에서 보면 고기와 술은 먹을 수 없다. 그것은 오계(五戒)의 처음이자 끝이다. 그렇다고 먹지 않으면 사대부의 명령을 거역한 반사회적, 반체제적 역승(逆借)으로 몰린다. 유생(儒生)들의 입장은 다르다. 객승이 술을 먹어도 즐겁고 안먹어도 즐겁다. 천렵의 흥을 돋우기 위해 스님의 생명인 계를 보시받겠다고 선비들은 생떼를 부렸다. 진묵대사는 줄 수도 안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봉착했다.
스님은 선듯 술을 받아 마신뒤 얼큰한 매운탕을 진하게 먹었다. 그 다음에 선비들이 취한 행동은 뻔하다. 파계승, 사기꾼, 사회의 암적 존재, 유교질서 체제에 대한 반체제적 대표 인물 그 질타의 소리가 차츰 고조됐다. 상황은 자꾸만 다급해져 갔다.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선비들은 끝내 스님을 린치(私刑)하기로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중에 뭘 좀 안다는 작자의 해석에 의하면, 불가에서 주장하는 인연 ·인과법에 입각하여 얻어 먹었으니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린치의 판결 근거였다.
그러나 스님은 담담했다. 스님은 자신의 생명을 보시하겠다고 선듯 나섰다. 출세한 세도가들의 천렵 여홍을 위해서, 다만 죽기 전에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스님께서도 먹은 만큼 배설해 내놓아야 할 것이니 강물에 대변이나 시원하게 보도록 해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선비들은 더욱 신이 났다. 뜻하지 않게 중이 변을 보는 꼴까지 보게 됐다고 자못 흥겨워 했다. 강물에 대변을 보는 스님을 보며 선바들은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님의 변은 물고기가 되어 맑은 물 속으로 헤엄쳐 흐트러지고 있었다. 무지한 선비들은 그걸 못 본 채 장고소리만 높히며 춤추고 있었다.
지금도 충청도 일대에서는 그 고기를 중의 태에서 생긴 고기라는 뜻으로 중태미라고 부른다. (이 회송 박사 편저 국어대사전에는 중고기라고 실려 있다)
진묵대사는 죽음만이 있을 뿐인 상황을 삶으로 역전시킨 것이다. 엄청난 드라마였다. 대사께서는 줄 것을 다줬고 받을 것은 다 받도록 했으며 모두가 다살고 모두가 즐겁도록 진기한 신통력을 연출해 냈다. 이 같은 법력의 원동력을 우린 법신보시(法身布施)의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무수한 인(因)이 무수한 연(緣)과 겹겹(重重)이 만나 무진(無盡)하게 연기하는 그 질서 자체를 법신이라고 한다. 혹은 중중무진(重重無盡) 연기의 체( )라고도 한다. 따라서 법신보시라고 하면 무진한 인(因)이 무진한 연(緣)에게 무진한 보시를 함을 말한다. 거꾸로 무량한 연이 무수한 인을 위해 무한한 보시를 할 때도 법신보시라고 한다. 법신보시 속에서는 주는 이 받는 이, 준 양 받은 양, 주고 받은 것의 좋고 나쁨 등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도 주고 연도 줌으로써 인연이 자재로와지고 그래서 생과 사가 자재로워진다.
진묵대사와 중태미의 구전(口傳) 설화는 이 점을 은유하고 있다. 진리가 어려운 곳에 있지 않고 밥 먹고 대변보는 평상의 생리적 질서에도 진리가 있음을 진묵대사는 보여 주신 것이다.
·포대화상(布袋和尙)의 법계보시(法界布施)
송(宋)나라 때 계차(契此)라는 스님이 있었다. 등에 항상 포대를 메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넣었다고 한다. 배가 불룩 나와 축 늘어졌으며 이마는 쭈그러지고 귀가 유난히 큰 모습이었다. 요즘도 그림을 통해 그 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포대화상은 사람들이 무엇을 줘도 받아서 자루에 넣었고 필요한 이에게 무엇이든 줬다. 화상의 자루는 아무리 넣어도 차지 않았고 아무리 줘도 비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혼자서 어디든지 다니며 무량한 보시를 하다가 산벼랑에 반듯이 앉아
미륵은 참 미륵인데
몸을 백천억으로 나누어
때때로 사람들에게 보이건만
사람들 스스로가 그를 알아 보지 못하누나
彌勒眞彌勒 分身百千億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
하고 탄식한 뒤 입적했다고 한다.
포대화상의 자루는 두말할 것도 없이 법계를 말한다.
법계 속에서의 보시는 줘도 비지 않고 받아도 차지 않는 것이다.
화상(和尙)의 한 그릇 밥은 만가구(萬家口)가 먹어도 남는다고 한다. 포대를 멘 화상은 어디든 안 가는 곳이 없다. 지금도 그는 있다. 그는 무량한 보시를 우리에게 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백 천억의 몸으로 분신(分身)하여 시시로 지금의 사람(時人)에게 진정한 보시의 공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다만 시인(時人)이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다.
현대인 가운데 포대화상을 만났다는 소식은 아직은 듣지 못했다. 미래인들은 더 더욱 포대화상을 만나기 힘들 것 같다. 안타까움과 우울함이 있어서 포대화상과 관련된 게송 한 자락을 옮겨 본다.
발우 하나로 천 집의 밥을 먹고
외로운 몸 만리에 거닐은다
푸른 눈 가진 사람 본일 없고
길을 물으니 백운의 끝이더라
一鉢千家飯 孤身萬里遊
靑目賭人少 問路白雲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