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엔 편지를 써야지. 고향으로 가는 편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그립고 안타까운 사람에게 아깝고 아픈 얘기를 적어서 보내야지.
낙엽을 밟으며 읊던 구르몽의 시도 적고, 죽고 싶어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치던 얘기도 섞고 만날 수 없으면서 기다리던 무지개 꽃노래도 곱게 적어 보내야지.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딩굴던 달빛 아람도 생각나느냐고 물어 보고, 발끝에 채이던 풀잎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이 가을의 얘기를 골고루 적어 보내야지. 꼭 보낼 곳이 없으면 낮은 산 아래 들판의 귀꿈스러운데 가서, 내 어머니의 노란 넋으로 짓이겨 붙은 들국화에게 속삭여야지.
〈국화야. 들국화야. 너의 노오란 넋은 하도 어렵고 힘겨워 가을이 아니면 내릴 곳이 없었겠지. 청녀(靑女)가 아니면 반겨줄 이가 없었겠지. 허지만 난 지금 내 어머니를 만나러 너에게 왔는데, 그걸 조히 알겠느냐. 찬서리 같고, 솜 이불 같고 꽃 노을 같던 내 어머니의 넋이 저쪽 하늘을 가로질러 내려와서 네게 숨어 있는 결 나는 잘 알고 있는데 정히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냐.〉
바람에, 하늬 바람에 몸을 흔들면 나는 그게 인연의 질긴 끈이라 여기고 거기 들국화 앞에서 내 알맹이 마음 적은 편지를 낱낱이 읽어 주어야지.
참말 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편지를 써야지. 돌아보며 돌아보며 고향으로 가는 타향의 편지, 타향으로 가는 고향의 편지 그 안타까운 사연을 써야지. 써야지.
-몸뚱어리-
몸뚱어리, 이 몸뚱어리. 썩어도 아름다운 덩어리, 뜨거운 덩어리, 천년이나 만년쯤 어지러워 자꾸 어지러워 넘어지며 쓰러지며 몸도 마음도 매운 재 속의 불씨 같은 안타까운 몸뚱어리.
버리자 버려, 못버릴 때까지 버리자 하면서도 노상 모자라는 이 아리고도 아픈 덩어리, 그러나 다시 흙과 물과 불바람이 높게, 아, 이처럼 높게 모여서 나는 아무래도 향기로운 이 무덤을 떠도는 나그네가 아닌가.
그렇지 산에서는 산을 만나고 들 바람엔 맴맴 맴을 돌며, 무거워 못 견디게 무거워 무너지는 몸뚱어리, 자꾸만 무너지는 아, 몸똥어리.
*군말
군말이 필요하다면, 그건 이미 시의 한계에서 벗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시는 오직 뼈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하라면 나는 입을 다물고 눈을 껌벅거리며 하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다만 해마다 가을이 되면 가을병 때문에 노상 헐떡거리며 가을을 지냈는데, 올해는 이 변변치 못한 못난이로 양약을 삼아, 눈좀 바로뜨고 고개 좀 곧게 세우고 그렇게 가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