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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  )의 노래(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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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종범 1986년 09월 55호
선적 (禪的)인 방법
종교를 종교적인 신앙의 형태나 숭배의 대상이 가지는 성격에 따라서 인격적 종교(人格的 宗敎)와 비인격적 종교(非人格的 宗敎)로 나눌 수 있다. 인격적인 종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을 가지는 유대, 기독교적인 종교를 가리킨다. 비인격적인 종교에 있어서의 신은 초월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인격성을 가지지 않고 우주의 원리나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힌두교나 불교등의 종교적 성격을 말한다.
종교적인 대상 가운데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이나 비인격적인 원리의 성격을 가진 대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시종교나 고등종교가 가지는 자연종교(自然宗敎)적인 성격으로서 자연물이나 성스러운 시간, 신적인 행위, 언어등의 여러가지 물적인 대상도 있다. 그리고 인격적인 종교라고 말하는 기독교적인 전통에서도 신비주의는 비인격적인 요소가 강하다. 힌두교에 있어서도 브라흐만은 비인격적이지만 비슈누(Visnu)나 시바(Siva)는 인격적이고, 불교에서도 원시불교나 법신(法身:Dharmakaya)으로서의 불타는 비인격적이지만 대숭불교의 부처님이나 보살은 인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행위의 태도를 외향적(外向的)인 것과 내향적(內向的)인 것으로 구분한다면, 인격적인 종교는 외향적이고 비인격적인 종교는 내향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외향적인 종교는 초월적이고 객관적인 타자로서의 존재인 신에 대한 신앙의 태도를 취하는 타력적(他力的)인 성격을 가진다. 내향적인 종교는 주관적으로 진리를 파악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수행의 태도로 자력적(自力的)인 성격을 가진다. 외향적인 종교는 절대타자로서의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실재를 믿고 초월자의 가호와 은총으로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구원의 종교이다. 그러나 내향적인 종교는 범신론적인 진리에 의하여 자기를 인식하고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하려는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 하는 이러한 종교적 태도는 종교적 이상으로서의 세계, 인간의 정신적 기능의 사용 그리고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의 방법 등에 차이를 가진다.
종교적 이상의 세계로 외향적인 종교에 있어서는 조로아스트, 유태, 이슬람, 기독교적인 세계관의 목표로서 천국이라 이름할 수 있고 불교의 극락이라는 세계도 포함시킬 수 있다. 내향적인 종교에 있어서 이상적인 세계는 힌두나 불교의 열반(涅槃:Nirvana)을 들수 있을 것이다. 천국이나 열반이 둘 다 이상적인 세계를 의미하지만, 천국이나 극락은 육체적 고통이 없는 감정적으로 만족된 상태를 다타내는 의미가 강하고, 열반은 정신적인 번뇌가 사라진 고락의 감정보다 정신적인 편안의 의미가 강하다.
인간의 정신기능을 감각, 감정, 사고, 직관의 네 가지로 나누어서 종교가 가지는 경향과 비교해 본다면, 외향적 종교는 사고나 직관을 지배적 기능으로하고 감각이나 감정적인 기능을 억제하는 것이다.
외향적 종교는 감각이나 감정의 정적 기능을 주로 사용하여 정적 종교(情的 宗敎)라 하고, 내향적 종교는 사고나 직관을 주로 사용하여 지적 종교(知的 宗敎)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심리와 종교적 성향에 대한 토인비의 도식적 설명에 의하면, 정적 종교 중에서 이슬람교는 감각을 지배기능으로 하고 사고와 감정은 보조기능으로 사용된다. 기독교의 경우는 감정을 지배기능으로 하고 감정과 직관을 보조 기능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적 종교에 있어서 힌두교는 사고를 지배기능으로 하고 감각과 직관을 보조기농으로 하며, 불교는 직관을 지배기능으로 하고 사고와 감정을 보조기능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억압당하는 기능이라고 해서 전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에서도 직관적인 신비주의가 있고, 기독교에서도 제한된 사고이긴 하지만 신학이 있다. 힌두교는 비슈누의 화신으로 인격적인 바크티(Bhakti)에 대한 숭배의 감정이 있고, 불교에서도 사리(舍利:Sarira) 신앙과 같은 감각적인 요소의 표현이 있는 것이다.
수행의 방법에 있어서 감각이나 감정적인 정적 종교는 주술과 기도를 주로 하고, 사고와 지관적인 지적종교에 있어서는 명상이나 관(觀)의 방법을 주로 한다.
정적 종교가 주로 하는 수행의 태도인 주술과 기도는 명확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술은 감각적인 기능이나 대상이 강조되고 초자연적인 힘에 효과를 기대하는 인간의 자연법칙화(自然法則化)의 경향을 가진다. 기도는 감정적인 기능이나 정적 대상인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신에 호소하여 서로 상응관계를 기원하는 자연법칙의 인간화(人間化)라는 경향의 차이로 구별한다.
주술은 인간의 기술이나 자의적인 능력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비적인 힘을 빌어 주술자가 바라는 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술적 방법을 통하여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하여금 주술자가 원하는 일을 성취시키거나 자신을 망아(妄我) 접신(接神)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기도는 초월적인 신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로, 인격적 실체로서의 신에게 계시나 은총을 받아 인간적 상황에서 구원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도는 인격적인 신에 대한 신앙의 행위로, 타자로서의 신에 대해서 원죄를 인정하는 동 자기무화(自己無化)의 태도로서, 기도적인 방법을 통하여 계시나 은총으로 목적을 달성하거나 기도자가 신과의 합일의 체험을 얻는 것이다.
지적 종교의 명상이나 관법은 관(觀)을 통하여 정(定)을 추구하는 것은 같지만, 명상은 사고의 대상으로 관념적 내용을 가지고, 직관적인 방법에 의지하는 관법이 가지는 대상은 정을 얻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서의 대상이다. 산란한 마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관하는 대상의 성격에 따라서 궁극적인 실재나 진리로서의 법등의 관념적 내용을 가질 때에는 사고의 작용이 주로 하게 되고 이것을 명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정신을 집중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대상을 취할 때는 직관적인 관법이라고 할 수 있다.
명상은 궁극적 실재나 진리에 대한 관(觀) 즉 생각을 계속하여 궁극에 달하여 정관(定觀)을 얻어 대상이나 진리에 대한 확실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주의 궁극적 원리로서 브라만이나 개아의 실체로서 아트만과의 일체감의 체험이나 4제관(四諸觀), 12인연관(十二因緣觀), 4염처관(四念處觀)등의 진리를 인식하여 무명에서 벗어나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 명상적인 방법이다.
관법에 있어서 관의 대상으로 수식관(數息觀), 일관(日觀), 월관(月觀)과 같은 것은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내용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마음을 집중시킴으로서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억제하고 산란된 마음을 통일하여 고요한 마음으로 대상을 관하여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불관(佛觀) 만다라(漫茶羅:mandala) 등과 같은 숨은 뜻을 가진 것이 있으나, 이러한 것도 내용을 인식하기 위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관심의 법이라고 할 수 있는 선(禪)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화두(話頭)가 있다. 그러나 화두는 관적인 대상도 아니고 명상적인 관념의 내용도 아니다. 화두에서도 관념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으나 명상적인 방법과 같이 진리로서의 관념을 인식하는 것이 이니고, 오히려 사고의 기능이 가지는 사량 분별의 논리적 사유를 배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관적인 대상은 그 대상에 정신을 집중시켜 망념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데, 화두는 화두라는 대상을 관하여 망념을 제거하는 역할도 하지만 마음에 의심이라는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대상화되는 일체의 관념이나 대상도 부정하고 오직 의심이라는 의식작용만 일어나게 하는 사고의 형식이 화두라는 것이다.

다른 일반적인 종교적 수행과 선적인 방법과의 차이는 종교적인 대상이나 관념을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다. 선적인 방법이 객관화되는 일체의 대상이나 관념을 부정함으로써 대상의 우상화나 관념적인 내용의 절대화가 낳은 병폐에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심이라는 의식작용이 의단(疑團)이 되어 의식의 대상이 되는 객체도 의식하는 자아로서의 주체도 없어지고 인간의 근원적 모순인 주(主) 객(客)이라는 이원성(二元性)이 파기되어 구조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범신론적인 실재론에 빠지지 않고 이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선에서 말하는 깨달음인 것이다.
천국이나 열반이라는 종교적 이상으로서의 세계를 감성적인 면으로 보느냐 아니면 이성적인 면이냐하는 것은 종교나 문화적인 전통에 의해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을 감각, 감정, 사고, 직관의 네 가지 기능으로 구분하고 주기능과 열등기능의 차이는 있지만 한 가지 기능만 독립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개인의 성격에 있어서도 주기능을 구별하여 네가지 인간상으로 나눌 수 있지만 성장의 시기나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 변화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력이던 타력이던 종교적 수행방법은 기도적인 요소와 명상적인 요소가 복합되어 나타나고, 종교적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의 차이는 종교적 전통에 따라 다르게 발전되지만 그 방법의 선택은 개인의 성격유형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수행의 방법중에서 종교적 태도가 외향적이면 외향적일수록, 물적(物的)이면 물적일수록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대상 자체가 가지는 병폐는 크다. 그러나 내향적으로 지향할수록 접근하기 어렵고 힘들지만 객관화된 대상이나 관념적 내용이 가지는 병폐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신의 권위나 진리의 이름으로 행해진 역사상 과오를 일일이 들 것까지도 없다. 하나의 돌을 빼기 위해 지렛대로 받쳤던 받침돌은 또 하나의 못이 되어 가슴속 깊이 박힐 뿐이라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