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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사역경사의 소중한 결과물인 토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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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적축 - 원철 1999년 01월 203호
간경도감의 책임자 신미스님
15세기에 이르러 한문 경전은 언해諺解라는 이름으로 한글로 번역되기 시작한다. 이는 한글이 발명(1443년)된 지 십팔년 뒤인 1461년(세조7년) 6월에 간경도감이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간경도감은 1471년(성종 2년)에 폐지될 때까지 십일 년 동안 존속된 역경기관으로 「능엄경」, 「법화경」, 「금강경」, 「반야심경」, 「아미타경」, 「원각경」 등을 한글로 번역했다. 간경도감 설치 이듬해인 1462년에 가장 먼저 번역된 「능엄경」-흔히 세조판世祖板이라고 부른다-은 오백 년이라는 세월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영인影印되어 지금 강원(승가대학) 사교반의 교재본으로 여전히 그 빛을 발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언해본들도 번역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반드시 참조해야 하는 교과서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다. 그래서 번역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언해본들을 복사라도 해서 갖추어 두어야 한다. 세조판이 이렇게 권위를 갖는 것은 이백 명이 종사하는 국가의 공식 역경원으로 당대 최고의 불佛, 유儒의 실력자들이 공동번역했기 때문이다. 간경도감의 최고 책임자인 신미信眉스님은 그 때 유명한 유학자연 김수온金守溫(1409~1481)과는 형제간이다. 김수온 역시 여러 유생들과 함께 형인 신미스님을 도와서 역경에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신미스님과 함께 역경원의 쌍두마차인 수미守眉스님은 세조의 명령으로 팔만대장정 쉰 질을 영인하며 해인사 장경각과 각별한 인연을 지은 분이다. 두 거봉巨峰 스님의 부도는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 가까이에 모셔져 있다. 인연이 닿는다면 꼭 참배해야 할 역경사譯經史의 성지이기도하다.

간경도감의 번역은 토吐로부터 시작되었다
간경도감의 번역 방법은 토吐를 달고 번역을 한 뒤 한문에 음을 붙이고 교정을 거쳐 왕에게 올려서 낭독하게 함으로써 완성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토이다. 한문 원문을 읽으면서 필요한 부분에 토를 단 것을 흔히 구결口訣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한문과 한글이 가지는 역사적 특수성의 결과이다. 곧 우리의 문자 체계가 없던 고대에 한문이 이 땅에 들어온 까닭에 입으로는 우리말을 하고 글은 한문을 쓰던 이중생활에서 비롯된다. 중국어는 문법 형태상 고립어孤立語(떨어지는 말)인 까닭에 교착어膠着語인 우리말처럼 접미사가 발달하지 못했다. 이 불편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 구결인 것이다. 이러한 구결문은 언해문諺解文으로 하여금 직역直譯이라는 형식을 띠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간경도감의 언해서들은 원문에 토를 다는 일에서 번역이 시작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토의 무용론과 옹호론
지금에 있어서 토吐의 가장 큰 문제점은 토 자체의 고대성古代性이다. 토를 보고서는 현대적 언어로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는 토가 많다. 토까지 다시 번역해야 하는 이중고를 치루어야 한다. 언해본을 참고하면서도 고어가 다가오지 않아 다시 고어사전을 들추어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전 자료의 토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요즘 만든 책만이 라도 현대식 토를 단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전통 토와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는 한문에 있어서 고문古文과 백화문白話文 시에만큼이나 혼란을 부르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이론異論만 분분한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토무용론吐無用論까지 나온다. 그 까닭을 “한문은 외국 글이며 본디 토가 없다. 우리 한문도 외국 글을 빌어다 썼을 뿐이다. 그러므로 토를 붙여서 익히지 말고 문법을 통해 배워야 빨리 한문을 독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떻든 그래야 원문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된다.(박지홍「한문강좌û 과학사P11~14 참고)”고 주장한다.
하지만 토는 우리 번역사의 소중한 유산이다. 사실 토의 유무가 문제되는 것은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만 경전을 입으로 독송하지 않고 눈으로 읽는 공부방법이 주류를 이루면서 돌출된 문제이기도 하다. 경전을 입으로 읽으려면 도저히 토 없이는 딱딱해서 읽어 내릴 수가 없다. 강원교육 경전의 원전 번역 실력을 늘리는 과정과 경전의 내용을 자기화하는 과정이 혼재되어 있다. 앞에다가 비중을 두면 토무론자吐無論者가 될 것이요, 뒤에다가 비중을 두면 토옹호론자吐擁護論者가 될 것이다. ‘차돌능엄경’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그 이빨도 안 들어가는 한문 원문을 사년 동안 끙끙거리다가 무슨 내용을 배웠는지 알 수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눈밝은 선인들이 후학을 위하여 달아놓은 토를 이용하여 수월하게 경전의 내용을 파악하고 종지宗旨를 밝히면서 마음을 닦아는 것이 정도正道라는것이 토옹호론자의 입장이다. 어쨌거나 간경도감 번역본의 체제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탄허스님의 번역본이 한글번역의 고전이 된 것은 토를 달고 직역을 한 정통성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전통불교가 곧 정통불교
그 동안 경전의 원전 번역 실력을 늘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온 덕에 별로 토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은해사에 와서 「삼국유사」 현토 작업을 함께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달린 토를 번역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없는 토를 원문에 달려고 하니 전혀 달 수가 없었다. 그 동안 토를 도외시해 온 과보가 일순간에 나타난 셈이다. 무토無吐보다는 유토有吐에 손이 더 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토를 다는 작업은 결국 경전대중화 작업이기도 하다. 그 방대한「80권화엄경」(무비「현토과목 화엄경」전4권 민족사)을 보면서 토와 과목이 내용 파악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부처님께 밀린 밥값을 갚느라고 이번에 선종사서禪宗史書 한 권의 번역을 마쳤다. 하지만 결국 토에 자신이 없어 「불광대장경佛光大藏經」의 구두점句讀點을 그대로 원용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전통불교가 곧 정통불교’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전통경학의 노선을 추종하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결과를 내 스스로 부르게 되었다.
유토론이냐 무토론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토가 있는 것은 토가 있는 대로. 토가 없는 것은 토가 없는 대로 둘 다 자연스럽게 소화시켜 내야 할 것이다. 자기 그릇을 얼마나 키워내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굳이 토를 배척하려는 것은 신미스님 뒤로 오백 년 동안 이어져 온 한글 역경사의 소중한 전통적 결과물을 내다버리는 어리석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