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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크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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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분절에 - 대은 1986년 08월 54호
불교의 경전인 심지관경(心地觀經)의 보은품(報恩品) 과 대보부모은중경 (大報父母恩重經)에 보면 부모의 은혜가 높고 큰 것을 말씀하되 아버지의 은혜는 하늘과 같이 높고 어머니의 은혜는 바다와 같이 깊다는 말씀을 하고, 우리 인간이 어떠한 효성을 다 하더라도 그 부모의 은혜를 만분의 하나도 갚기가 어려우니라 하시었다.
예를 들면 아무리 좋은 음식과 좋은 과실과 좋은 의복을 만들어 입혀드리더라도 갚을 수가 없나니라 하시었다. 비유컨데 머리를 깍아 초혜(草鞋) 같은 신을 삼고 혀와 이로써 각기 신의 창을 삼고 정을 박아 양친부모에게 받치고 왼 어깨에는 아버지를 업고 바른 어깨에는 어머니를 업고 수미산이란 세계의 큰 산을 돌고 넘어가고 넘어오며 백천번을 할지라도 그부모가 애지중지하여 키운 은혜는 갚을 수가 없나니라 하시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에 대하여 부모의 은혜가 어찌하여 그렇게 높고 큰 것을 실례(實例)를 들어서 부성애와 모성애를 이야기를 하되 두 가지로 나누어 하여 보겠다.
첫째 딸을 위하여 결초보은(結草報恩)한 아버지가 있다.
중국의 사기(史記)인 좌전선공십이년조 (左傳宣公十二年條)에 보면 위(魏)나라 무왕에게 천하일색의 애첩이 있었다. 무왕은 그를 무척 사랑하고 애지중지 하였으나 왕이 병이 들어서 앓게 되었는데 그의 아들인 과(顆)를 불러서 말하되
「내가 죽거든 이 여자를 좋은 곳으로 시집올 보내주어라」 한다.
「네 그렇게 하겠읍니다.」
아들은 이와 같이 대답하고 아버지의 너그러운 마음에 대하여 탄복하였다. 그런데 그 뒤에 병이 깊어 죽을 즈음에 가서 무왕은 그 아들을 불러 다시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그 여자에게 사약을 내려 죽여서 나와 같이 장사지내게 하여 순장케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무왕은 숨지고 말았다. 아들은 이 두가지 유언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최후 유언을 어기면 불효자가 될 것이요, 또한 한창 나이의 젊은 여자를 순장시키는 일 또한 못할 일이어서 몇 날을 고뇌하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두 유언이 다 아버지의 유언이 틀림없는 것이지만 앞의 유언은 그래도 정신이 맑은 때에 양심에서 나온 유언이요, 다음에 유언은 정신이 흐려서 망령이 나서 한 말씀이니까 먼저 유언을 쫓아서 시행하는 것이 인도(人道)에 어긋나지 않는 처사라고 생각하고 그 계모를 살려서 적당한 혼처를 구하여 개가를 하도록 주선하여 주었다. 이 때에 얼굴이 새카맣게 되어 죽을 상이 되었던 계모는 그 아들의 은혜가 하늘 같이 높아 보여서 거듭 감격하였다.
그 뒤에 아들이 왕이 되어서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이웃 진나라의 두회가 전쟁을 이르켜서 위나라를 쳐들어 왔다. 그리하여 양편 군사가 싸우다가 무왕의 아들인 위나라 왕 과(顆)의 전세가 불리하게되어 후퇴를 하게 되니 진나라 두회의 군사가 물밀듯 쳐들어 왔다.
과가 군사를 거느리고 한참 쫓겨오다가 두회가 추격하여 오는 건너편 산길을 쳐다보니 추격해 오는 적군 앞에 핸 늙은 노인 한 사람이 나타나서 여기저기로 갈팡질팡하고 쫓아다니면서 풀끝을 휘여 잡아 올가미 같은 그물을 수없이 만들어 놓는다. 그가 노인이기는 하나 풀을 잡아매는데는 번개와 같이 빠르고 비호와 같이와 같이 날세었다.
두회는 위왕인 과의 군대가 후퇴하여 달아나는데 사기가 둥천하여 군대를 계속하여 돌격토록 하였다. 그래서 두회의 군사는 명령대로 달려오다가 풀 올가미에 걸려서 모조리 푹푹 쓰러졌다.
이 모양을 본 과의 군사가 다시 쫓아가서 반격을 하였더니 두회의 군사는 몰살하고 말았다. 그래서 전쟁에 이기고 그 노인을 찾았으나 노인의 흔적을 알 수 없었다. 그 뒷날 밤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났다. 과가 고마워하며 묻기를 「노인은 누구시기에 풀을 맺어서 적군을 해롭게 하고 우리 군사를 도와서 대 승전을 하게 하였읍니까 하니 「나는 당신이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계모를 죽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개가시켜 살려 보내준 여자의 아비입니다. 나는 그 딸자식을 당신의 아버지의 유언대로 죽일 줄만 알고 무척 근심을 하고 얘를 태우고 있었는데 당신의 처사를 보고 너무도 감격하여 결초보은(結草報恩)을 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죽은 아비도 딸의 운명을 걱정하거늘 산 아버지의 마음이야 어떻 하겠는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이번에는 죽은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서 길러 준 일이 있었다. 지금부터 약 80년 전 일이다.
이웃나라인 일본 신호시(神戶市)에 어떤 백화점에서 지배인이 아침에 금고(金庫)를 열어 보니 웬 가랑잎이 하나 들어 있었다. 어떻게 가랑잎이 들어 있는가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집어내 버렸는데 그 다음날도 역시 몇 일을 계속 그런 일이 되풀이되어 일어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지배인은 물건을 사가는 손님을 주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이 30세 가량되어 보이는 여자가 해가 질 무렵이면 꼭 와서 엿을 사 가지고 가곤 했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기고 그 여자에게서 받은 돈올 따로 받아 두었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 가랑잎으로 변해 있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귀신의 조화로구나 생각하고 어
느 날에는 젊은 장정 몇 사람을 데리고 그 여자의 뒤를 따라가 보았더니 산골짜기에 있는 공동묘지로 들어가더니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공동묘지에 들어가서 살펴 보자니까 어디서인지 어린 얘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얘기 우는 곳을 찾아 갔더니 구멍이 뚫어진 무덤 속에서 우는 소리가 새여 나오지 않는가. 모두들 놀라 이상히 여기고 분묘 앞은 살펴보니 스즈키사다꼬(鈴木貞子)라는 이름과 주소가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주소를 찾아가서 그 사유를 알렸더니 죽은 여자의 남편이 곧 쫓아와서 묘를 파고 본즉 죽은 여자가 여자 아기를 낳아 놓고 젖이 없으니까 엿올 갖다 먹여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러 사람이 너무나 놀라 그 남자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나의 아내가 임신하여 만삭이 되었는데 별안간에 급사하였으므로 가져다 묻은지가 이제 일주일쯤 됩니다」하고 눈물을 글썽글썽 했다.
「그러면 저 아이는 어떻게 하지요」 하고 묻자 「죽은 사람은 어찌할 수 없지만 산 아이는 내가 데려다가 기르겠읍니다」 하고 웃옷을 벗어서 싸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우유를 먹이며 무사히 건강하게 길렀다고 한다.
그런데 아기 이름은 어미가 엿을 먹여서 길렀던 얘기라고 하여 아메꼬(貼子)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누가 들어도 허황된 소리 같으나 이것이 사실 인 데야 어찌하랴.
아무리 은혜와 정이 깊은 부모라도 자기가 죽은 뒤에는 자식을 돌보아줄 수가 없는 일인데 이 여자는 죽어서 혼신이 되어 가지고도 아기에게 엿을 먹여 살렸으니 그 모성 얘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실은 당시의 일본 각 신문에 보도되어 부모의 정이 얼마나 지극한가 하는 여론이 되었으며, 우란분절을 맞아 다시 한번 효의 정신을 되살려 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