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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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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조은 1997년 09월 187호
화전민이 살던 집은 산의 뒤편-산이 앞뒤가 어디 있을까만은, 어쩐지 속세를 등지고 있는 쪽이 산의 뒷면일 것 같다-에 있었다. 그 곳으로 가는 길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눈으로 평지를 이룬 곳에는 어김없이 함정이 숨어있고, 나와 동행들은 방심하고 걷던 평지에서 유독 많이 넘어졌다. 우리는 드문드문 찍혀 있는 산새들의 발자국에 우리의 발자국을 포개며 걸었다. 그 길에서 마른 풀들은 앞으로 땅을 짚고 자신을 내리누르는 눈의 무게를 견디느라 힘들어했다.
경사가 심한 산허리를 돌아 한참을 걸어도 길은 계속되었다. 길은 산중턱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많은 숲과 바위와 얼어붙은 빙벽을 넘어 가파른 언덕을 숨을 몰아쉬며 올라갔을 때에야 화전민이 살던 집이 시야에 나타났다. 그 집 아래로는 그가 일궜음직한 산비탈의 농지가 있었고, 집으로 가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돌계단 아래에는 땅의 슬기로움이 고여 샘을 이루고 있었다.
마당은 널찍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 집 마당에서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는 동안 산을 오르느라 더워졌던 몸이 금세 식었다. 생의 모든 열기는 빨리 식는다.
물을 길어다 밥을 지어 먹기에는 샘은 집에서 제법 먼 거리에 있었다. 온기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집에서 샘까지의 거리는 실제보다 심리적으로 더 멀게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어떤 것에서나 고행을 통해야만 깨달음이라는 진정한 감로수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말하는 듯했다. 허기를 면하기 위해 샘으로 가며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따뜻하고 안락하게 살아왔는지 실감했다.
그 곳에 살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내 앞에 놓여 있던 혹한의 밤이 그에게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깊은 산골짝에서 뭉쳐온 냉기를 인간의 체온에 묻으려는 매서운 바람 또한 필사적으로 그의 몸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는 평생을 그 곳에서 살다가 죽어 근처에 묻혔을 테지만, 나는 다만 잠깐 동안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어두워진 집 밖에서 나의 한걸음 한걸음에는 또 다른 내가 매달려 있는 듯 걸음이 무거웠다. 발밑 돌출된 부분의 얼음은 더욱 단단했고,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머리를 다치거나 가파른 산비탈을 끝없이 굴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흰눈에 덮인 산은 만월을 받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깊은 산은 달빛을 받으며 숨을 쉬고 있었다. 일찍이 그곳에 살던 사람의 삶을 지탱하게 해 주었던 것도 바로 그 때 내 앞에 놓여 있던 것과 같은 친화력 있는 자연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는 상대적으로 더 외로웠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 아름다움을공유할 더 많은 존재가 순간 순간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이다.
한참 동안 달에 흘려있던 내 눈이 닿은 곳은 어디나 깜깜했다. 신경을 집중해서 보면, 우리가 올라왔던 길은 그 어둠 속에서도 유독 까맣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온 길이 어둠 그 자체인 양.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보면, 만월을 받고 있는 눈덮인 세상은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변하고, 그 끝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는.
동행들은 가끔씩 등산을 함께 하던 친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함께 많은 산행을 했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모두 나에 비해 속도감이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산에서 그들은 걸음을 재촉하며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들의 휴식은 짧았고, 멈춰 있는 그들은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등산의 초입에서 만나는 산사나 산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인가는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듯했다. 산의 정상이 가까울수록 그들의 걸음에는 더 가속도가 붙었는데, 그들은 언제나 서둘러 눈앞의 세계로 몰입해 갔다.
차츰 그런 산행에 부담이 느껴졌고, 그들의 속도에 맞춰 산행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도 나만큼이나 힘들 테지만 극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 믿음이 흔들릴 때쯤 나는 무릎을 다쳤다. 그러나 그들은 육체도 정신도 건강했고, 산의 굽이를 돌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과 함께 한 청옥잔, 두타산 산행 뒤로 나는 등산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산행에서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사람에게는 저마다 제몫 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몫 이라는 것은 몸을 통해 실현된다. 몸이 있는 어떤 사람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으로 살고, 어떤 사람은 후손을 번창하게 하거나 쾌락을 추구하며, 또 어떤 사람은 험난한 수도자의 삶을 산다. 몸으로 인한 고통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그러나 잊지 말아야겠다. 인간의 정신도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몸속에 갇혀 산다는 것을.
자신이 어떤 세계를 향하고 있든 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분명한 길이다. 몸을 거치지 않고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상의 평화를 위한 지름길이 될 수 있는 동시에 가장 먼 길도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이다.
각오하긴 했지만, 화전민이 살던 강원도 오지에서의 밤은 무척 추웠다. 다행히 충분한 장작이 있어서 우리는 방이 절절 끓도록 볼을 뗄 수 있었다. 요기를 한 뒤 몇몇은 뜨거운 방바닥에 등을 붙였고, 몇몇은 아궁이 앞에 모여 앉아 불빛을 응시했다. 밖에서 들어오는 세찬 바람 때문에 일렁이는 불빛을 받아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동행들의 얼굴은 젊었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깊이 배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생기 있어 보였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