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 둑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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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남일
1997년 09월 187호
이제는 이십 년도 더 된 기억의 저켠에 아름다운 개울 둑 길이 하나 있다.
오월의 다사로운 햇살과 저녁 무렵의 분위기가 있는 그 개울 둑에는 무성하게 자란 억새들과 이름 모를 풀들이 가득했다. 개울 양쪽으로 정갈하게 손질된 논들과 눈에 익지 않은 염소들도 있고 멀리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고함소리가 아직도 생생한 그 길은 내가 처음으로 이모니의 손에 딸려 출가 아닌 출가(?)를 한 길이다.
그 뒤 내 생활의 전반은 그 길에서 이루어졌다. 개울에서 멱을 감던 날도 그 길 위에 드러누워 몸을 말렸고, 등하교는 물론 내 생활의 모든 이야깃거리가 그 길 위에 있었다.
그 개울 둑에는 아직도 잡초들이 무성했다. 예전처럼 아름다운 노을과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는 풍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매캐한 연기 내음이 남아 있는 개울 둑에서, \'내가 처음 출하한 길로 이제는 스님의 \'가신 몸\'을 보내 드려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 길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다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든 자와 건강한 자,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분별하지 않는 \'평등의 길\'임을 깨달았다. 단지 나아가기 위해 걷는 자라면 누구든 \'길\' 위에 설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부처님도 이 길을 가셨고, 스님도 이 길을 따라 가셨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이 길을 지나갈 것이다. 길이 그냥 \'길이 아닌\'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길\'은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며, 누구든 갈 수 있는 통로이며,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비상구이다. \'길\'은 평등하며, 절대적 개념임을 알게 된 나는 내 유년의 길 위로 스님이 버리고 가신 무거운 \'껍데기\'를 버리고, 여태 잃어버리고 있던, 스님이 나에게 주신 당신의 \'알맹이\'를 찾아서 함께 돌아왔다.
\'길\'이란 단어를 몇 번씩 되니이다 보면 어떤 묘한 여운을 느끼곤 한다. 지금은 적토寂土로 가신 스님께서 언제인가 나에게 넌지시 일러주신 말씀이 있었다.
\"인간에게 삶이란 결코 기대할 바가 못 된다. 모든 것이 허상이야.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지. 하지만 어디서든 뚜렷한 주인의식만 가진다면 한번쯤은 속는 셈치고 살아 볼 만도 한 것이 또 우리 삶이지. 그러니 너는 이제 너의 갈길로 가거라. 나는 나의 갈길로 가겠다.”
그것이 스님을 뵌 마지막 모습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나의 길’ 을 걸어왔고 또한 스님도 ‘스님의 길’로 가셨다. 어쩌면 스님이 가신 길을 지금 내가 쫓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내가 뜻을 세우고 마음을 바친 나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이 ‘가고 있음’이 늘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가끔씩 정말 ‘알맹이 없는 껍데기 뿐인’ 것이라는 생각에 기가 죽기도 하고, 시비是非와 희로喜愁가 있고, 허실虛實과 애락哀樂이 있는 이 ‘나의 길’ 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를 실감하기도 한다.
이럴 때 나는 스님이 말씀해 주신 ‘뚜렷한 주인의식’ 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내곤 한다.
「화엄경華嚴經」에서도 ‘수처작주隨處作主’ 라는 말이 있다. 대충 풀이하자면 ‘어느 곳에서든 주인의식을 가져라 하는 뜻인데 이것이 내 생활의 지침이다.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 이러한 생각은 엄청난 사고의 변화를 가져다 준다. 껍데기를 ‘알맹이’ 이게 하는 작용을 하고, 거친 숨을 고르게 하는 역할을 해 준다. 그리고 쉼 없이 나의 길을 가게 해 준다. 모두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