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함록에 숨은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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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철
1997년 09월 187호
방함록芳啣錄은 어느 회상會上에 누가 모였는지, 소임자는 누구인지를 알 수 있어 한철 그 선방의 분위기와 살림살이까지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 방함록은 선객들뿐만 아니라 전 승가의 비매품 베스트셀러로서 자리를 굳힌 지 이미 오래이다. 얼마전부터 강원講院에서도 따로 방함록을 묶어 내고 있다.
중국 총림에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방함록이 있었을 것이다. 선원 청규에 소임 이름이 열거되어 있으며, 또 한 철씩 여기저기 옮겨 가면서 살던 가풍 때문이다. 우리나라 방함록 가운데 남아 있는 것으로 가장 오래 된 것은 경허 선사 회상의 해인사, 범어사 방함록이다. 닥종이에 노끈으로 묶은 책에 붓글씨로 소임명과 법명이 적혀 있으며 당신이 손수 서문을 겸한 법어를 남기고 있다. 한때는 총무원에서 방함록을 내기도 했다. 프린트 글씨로 속명까지 함께 부기한 형태였다. 그 땐 큰절 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암자 대중까지 올려졌다. 그 뒤 선원수좌회에서 방함록 내는 것을 주관하면서 지금의 방함록 체제로 굳어졌다.
방함록을 내는 까닭에 대하여 경허스님은 해인사 방함록 서문에서 “방함록을 기록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뒷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뒷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 뒷사람이 지금 사람을 보는 것이 마치 지금 사람이 옛사람을 보는 것과 같음이요, 뒷사람이 뒷사람을 보는 것이 또한 지금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이…” 하였다. 곧 방함록을 묶는 것은 지금 사람을 위한 것보다는 뒷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좀더 심각하게 말하면 선종의 역사서라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미래까지 염두에 두고 가능한 한 청규의 원칙에 충실하며 또 사실대로 정직하게 기록하여 먼 훗날 정확한 사료史料로써 이용될 수 있게 대중 스스로가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일부이긴 하지만 기록이 사실과 다르거나 여러 가지 까닭으로 방함록에서 대중 명단 전체가 빠져 버리는 회상도 더러 몇 번 보았다. 몇 백 년 뒤 어느 불교 학자가 선원 자료를 찾다가 필요한 부분이 빠져 있어 낭패를 당하거나, 인물을 혼동하는 사태가 벌어질까봐 저으기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