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문제 외면하면 불교가 설 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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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8년 06월 196호
외환外換위기로 IMF구제 금융 체제가 시작된 뒤 극심한 경제불황이 닥쳐오면서 우리나라의 각 종교는 또 하나의 경쟁무대에 서게됐다.
급격히 늘어난 실직자들을 위한 구제 대책에 종교계가 다투어 뛰어들었고, 이에 대한 호의적 평가가 보편화되면서 각종교의 실직자 구제사업에 대한 관심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종교계의 실직자 구제사업은 순수한 자비의 보살행이요, 사랑의 실천행이다. 종교계가마땅히 관심을 갖고 나서야 할 사업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각 종교는 내심 빨라야 삼 년, 늦으면 십 년이라는 이른바 IMF시대에 어떤 활동을 펼치느냐에 따라 교세의 우열이 판가름날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같은 분석은 결코 잘못된 것이거나 나쁜 일일 수는 없다. 여러 종교가 경쟁적으로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종교현황에서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럽고, 또 선의善意의 경쟁이라고 보아야 한다. 실직자 문제는 우리 사회전체의 문제이다. 국민 모두에게 닥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통인 만큼 공통적으로 인간구제를 표방하고 있는 종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런 까닭에 각 종교계는 실직자 대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간 전도 경쟁이든 선외의 확산이든 종교계의 실직자 구제사업은 사회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정부도 종교계 실직자 구제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도 각 종교계가 마련한 기원법회나 기도회 자리 등에서 종교계의 실직자 구제사업에 감사를 표명하면서 정부차원의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정부는 실직자 구제문제에 관한한 종교계의 참여가 가장 적절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정부가 직접 실직자에 대한 구제를 실시할 경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정부가 직접 도움을 줄 경우 실직자들의 상처를 입은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지침으로 하고 있는 종교를 통한 실직자 대책이 수혜자나 공급자모두에게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실직자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종교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IMF시대가 시작되면서 불교계는 전에 없이 활발하고 기민한 실직자 구제 대책에 나셨다. 교계 각 복지기관에서 실직자를 위한 갖가지 크고 작은 대책들이 나왔고, 조계종 총무원 차원에서도 귀농학교와 실직자 단기출가수련회라는 실직자를 위한 구체적이고도 시의 적절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숙자를 위한 시설을 운영하거나 정부에서 위탁을 받아 운영을 하는 곳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활동 덕분에 실직자 대책에 관한한 불교계는 앞서가는 종교라는 인상을 사회에 심어 주게 되었다.
교계 일각에서 불교계의 이러한 활동들이 궁극적으로 불교중흥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배낭을 메고 산을 찾는, 조용한 산사에서 참선 둥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려는 실직자들이 많아지면서 불교는 그저 문호만 개방해도 될 만큼 실직자구제 대책의 최적 조건을 갖춘 종교라는 점도 이 같은 희망 섞인 관측의 배경이 됐을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실제 지난해 말과 올해초만 하더라도 불교의 실직자대책 마련 열기는 기대를 넘는 수준이었다. 불교 청년회, 교수불자들의 모임등 각종 단체에서 실직자 문제와 불교계의 대응방안에 대한 좌담과 토론, 세미나가 다투어 열리면서 차츰 불교계 실직자 대책은 체계화의 수준까지 갖추어 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4월에 들어서면서부터 불교계의 실직자 대책은 조금씩 시들해지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귀농학교 개교, 실직자 단기출가수련회 개설 등으로 한껏 기세(?)를 올렸던 이전의 열기는 크게 위축된 느낌이다. 종단 차원에서 실직자 대책관련 위원회를 구성하고, 귀농 희망자에게 사찰유휴 농지를 불하해 주겠다던 조계종의 야심찬 계획은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사찰유휴농지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직자 구제 대책과 관련해서 귀농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불교의 중장기적 발전 프로그램으로 삼겠다던 초발심은 어느새 무뎌지고 있다. 정부 다음으로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실제 많은 소유농지를 임대하고 있는 불교계의 현실에서 귀농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요가 증가되고 있는 농지 문제에 특단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전국의 명산대찰은 물론이고 도시 인근사찰마다 실직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이들을 위한 수련회, 단기출가수련회 등을 열도록 하겠다던 약속도 어느새 공약空約이 되고 있다. 물론 일부 사찰과 단체에서 실직자를 위한 쉼터를 열었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열심히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라남도 장성의 백양사에서 벌써 석 달째 실직자를 위한 단기출가수련회를 열띤 호응 속에 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일들이 불교 집안에서 확산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일은 그런 일을 하는 단체나 사찰들의 몫이라는 방관자적 경향이 늘고 있다.
실직자 대책에 관해 불교계가 주춤거리는 사이에 타종교는 엄청난 노력과 정열을 실직자 구제 문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개신교계는 지난 4월 20일 현재 모두 130개 소의 실직자 쉼터를 개설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곳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실직자는 일만이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각 교회마다 실직자를 위한 휴식과 취업정보 제공을 위한 종합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휴식공간을 만들어 영화관람이나 바둑 등의 시설을 마련해 주고 있다. 또한 팩시밀리를 이용 취업정보를 공유하고 창업교육과 전산교육 등의 직업훈련 지원활동도 펼쳐지고 있다.
이 밖에도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잘 알려진 구세군 대한본영의 ‘다일사\' 곧,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하루평균 팔십여 명이 이용할 만큼 호응 속에 전화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서울 YMCA 등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기독교 기관에서는 \'사회 안전망 구축\'이라는 일상적이고 일차적인 차원이 아닌 수준의 실직자대책 프로그램을 마련, 실업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도하다.
교세가 작은 원불교도 활발한 실직자 대책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정신 바루기’ 운동을 통해 의식개혁 작업을 하고, 교육문화센터를 통해 주부부업희망자들을 돕고 있다. 실직자를 위한 무료 급식을 지난 3월 30일부터 서울흑석동회관에서 날마다 실시하고 있고, 4월 20일부터 25일까지 신도림역에서 저녁을 제공했다. 각 교구·교당마다 알뜰교환장을 개설한데 이어 실직자 자녀를 위한 장학금 지급, 은혜의 헌혈 운동 쉼터와 취업정보센터의 건설‘ 무료급식 실시, 각종영농프로그램을 교육하는 귀농학교 등이 실시되고 있거나 준비되고 있다. 이중 귀농학교의 경우 전라남도 영광의 영산성지와, 전남 완도의 수계농원, 청해진의 영농조합법인을 통해 실시될 예정이다.
사찰의 기존공간을 이용해 실직자들에게 참선과 명상의 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고, 그대로가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고 새 출발의 의욕을 불러 일으켜주는 프로그램인 참선 및 산행, 108참회 등의 수련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명산대찰에 있어 절이 곧 천혜의 쉼터 그 자체일정도로 호조건을 가지고 있는 불교계가 실직자 대책에서조차 타종교에 처지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직자 문제는 이미 실업인구가 150만을 돌파했고, 곧 2백만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만큼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등장했다. IMF와 그 영향이 지속되는 앞으로의 십 년 동안 실직자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기장 큰 국가적 과제인 셈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외면하는 한 불교 설 땅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찬란한 호국불교의 전통은 결코 외침外侵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전쟁 뒤 최대의 국난이라고 불리는 외환위기와 이로 인한 경제불황, 그리고 실직 고통을 불교가 외면하는 한 호국불교의 전통이 단절됨은 물론 민족의 종교라는 평가마저 위협받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이번의 경제위기는 불교에게 하나의 기회이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혼탁한 주지선거, 웅장한 조불조탑, 총무원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추악한 폭로전---, 정말 무엇이 급한 일인지 시대를 읽는 혜안이 아쉽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