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고려대장경의 한자가 모두 몇 자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팔만자 라고 답합니다. 그건 경판의 숫자지요. 고려대장경 속의 한자는 무려 오천만자나 됩니다. 그 안에 쓰인 한자 가운데 오늘날 쓰이지 않는 한자, 잘못된 한자, 당대에 만들었던 한자 등을 찾아내서 원 한자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고있지요.”
말하자면 그는 고려대장경 조성할 때 꼼꼼히 임했던 수기스님 이래 다시금 작업을 잇는 대작 불사의 교감인 셈이다.
이규갑 교수는 본디 고대 문자를 전공하였다. 충남대에 재직하던 1993년, 고려대장경 전산화 관련 세미나에 \'부담없이’ 참석할 때만 해도 이체자와 씨름하는 학자로 변신할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 곧바로 음성학, 문자학을 연구하는 학자, 서법을 연구하는 서예가들이 위원회를 구성해 고려대장경의 이체자에 관해 본격적인 연구 작업에 들어갔다. 열의도 대단하였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생활하던 학자들이 수시로중간 지점쯤에서 모임을 가졌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고려대장경이라 이체자 작업은 지원 봉사자를 활용했다. 교정을 도울 자원 봉사자가 모이자 며칠씩 샘플을 뽑아 교정하는 교육을 했다. 스님에서부터 학생, 주부, 직장인들이 폭넓게 참여했다. 그들이 뽑아낸 이체자를 갖고 위원회를 열면 낮밤 없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뿔 각角자의 가운데 내려긋는 획이 길게 늘어진 경우를 놓고 같은 글자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예닐곱 시간씩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시간 갑론을박 끝에 합의를 찾은 듯했지만 저마다의 연구실에서 합의 내용을 데이터에 적용하다보면 맞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다시금 원점에서 다시 치열하게 논의해 원칙을 수정해 가며 이체자에 대한 기본 작업을 마쳤다.
그 결과 고려대장경에는 지구상의 어떤 자전에도 없는 글자가 팔백여 자나 등장했음에 밝혀졌다. 문자의 구성 원리로 본디 글자를 찾아내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글자는 이백여 자가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체자 가운데 가장 많은 이체자를 지닌 한자는 어떤 글자일까?
\"껍질 각 殼자는 무려 쉰네 종류나 됩니다. 한 글자가 쉰네 가지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우리 글이 없던 시절 선조들은 한문을 갖고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담았음을 이체자로 확인할 수 있지요. 그 다양한 글자에 감탄하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삼성문화재단의 고려대장경 시디롬 작업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이체자 작업도 활기를 띠었다. 삼성 쪽에서 자체 인력을 뽑아 컴퓨터에 입력할 때 이규갑 교수는 교감팀을 관리하며 이체자의 본디 글자 찾기에 몰두한다. 수업을 마친 목요일 오후면 충남대에서 올라와 토요일까지 고려대장경 연구소에서 숙식을 하며 오로지 이체자와 더불어 살았다. 새 침대를 두고 구석방 낡은 침대에 먼저 소리없이 누우시던 종림스님의 깊은 배려 속에서 자고 깨면 이체자와 더불어 살던 시절….
\"돌아보면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작업이라 흥미도 있었고, 이 일이야 말로 내 일이다 하는 신념이 있었지요. 제 전공을 갖고 사회에 쓸모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지니게 된 것도 바로 그 시절부터입니다.\"
더구나 모교인 연세대로 자리를 옮겼고, 이체자 작업을 차분히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그 모든 일조차 이규갑 교수는 대장경 불사에 참여하면서부터 늘 좋은 일만 생긴다는 믿음으로 받아 지니게 되었다. 선한 공덕을 쌓는 자리에 어찌 튼실한 과보가 맺히지 않겠는가.
안식년을 맞아 외국 떠난 동료 교수방을 연구실로 빌어 네 명의 제자와 이체자 연구팀을 다시 만들어 작업중이다. 일 년 내내 \'샛별보기 운동’ 하듯 새벽부터 나와서 밤늦도록 연구실에 붙어 삶을 전적으로 투영하며 사는 그들은 저마다-전생에 고려대장경 불사를 하며 이체자를 써서 판각했던 업장으로 오늘날 풀리지 않는 글자를 젊어지고 사는 것임을 매우 즐겁게 헤아리고 산다.
연구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 시대에 둘도 없는 ‘진짜 교수님’ 이에요.\"
욕심 없이 해야 할 일에 파묻혀 진지하게 연구하면서도 지친 제자들에게 창을 열어 잔디밭 한켠에 씨를 품어 안고 있는 민들레를 보여 주며 삶의 자세를 환기시키는 감성의 소유자. 이규갑 교수에게선 말투나 모습에서도 순박함이 묻어난다. 저 순수함이 그로 하여금 험난한 고려대장경 이체자 작업의 길을 걷게 했구나 싶다.
그 방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건 한 약방의 약재함처럼 즐비한 글자 카드 상자다. 손바닥만한 카드에는 원문에 대한 부수, 획수. 음과 훈 그리고 그 한자가 어느 문장에서 나왔으며 정자는 어떤 글자인지에 대한 재정리 작업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 오는 8월이면 고려대장경 속의 이체자에 관한 정리가 일차적으로 마무리 된다. 앞으로 이들 자료를 엮어 「고려대장경 이체자 자전」을 만들 계획이다.
\"이제 이 작업이 완성되면 역사 속의 목판본을 못 읽을 게 없다는 확신이 섭니다. 조선 왕조 실록에서 중국의 이십오사까지 두루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학뿐 아니라 문학 분야며 문자학, 동양학 분야에 관심 있는 이웃들 모두에게 아주 의미있는 작업입니다.”
이체자작업을하다보니 어느덧 가야산 입구에 서면 ‘집에 왔구나\' 할 만큼 해인사 사람이 돼버렸다. 장경각에 들러 인경본의 한자가 경판에는 어떻게 새겨져 있는지 확인하는 일도 그의 일이었다.
깨어져 버린 글자임을 확인하기도 하고, 천하의 명필이 쓴 듯한 기운찬 서체에 힘을 얻기도 했다. 한결같은 글씨체지만 경판마다 개성이 다양하게 깃들어 있음도 보았다.
이규갑 교수에겐 중학 시험이 있던 시절, 재수를 하는 사이 대전 심광사 어린이 법회를 나가 마음을 닦았고, 불교재단에서 운영하는 보문중학교를 다니면서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연세대 재학시절엔 봉원사 스님이 운영하던 용암사란 절에서 하숙하면서 ‘꿈결 같은 사 년’을 살기도 했다. 그 모든 불교와의 인연은 어쩌면 ‘고려대장경 이체자 정리 작업’을 해내는 데 있어 운명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십 년, 이십 년쯤 기다리다 보면 이 작업을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정보체계가 변화될 텐데 왜 힘겨운 작업을 하느냐는 질문을 누군가가 던진다면 이규갑 교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다섯해 가까운 세월, 전공 아닌 전공으로 이체자 작업에 열의와 혼을 담았던 그이기에 최소한 이규갑 교수는 예의 소박한 미소와 함께 소리 높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칠 백 년 전 고려인은 몽고 침입의 어려운 과정에서 왜 힘겹게 고려대장경을 조성했던 것일까요? 전쟁이 그치길 앉아서 기다리고 인쇄 문화가 발달할 수백 년 뒤를 가다렸다면 오늘의 찬란한 문화유산은 우리 곁에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새로운 것들이 물밀 듯 들어오더라도 지금 해결하고 해나가야 할 일들은 지금 이 순간 몰입해 이뤄내야 합니다.\" 口
이윤수님은 케이비에스 \'문화살롱\'의 작가이다. 저서로 「천년의 세월을 엮는 사람들」과 「불보살 명호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