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월정사 현해스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호계삼소 - 김영옥 1998년 06월 196호
개나리로 시작되어 진달래가, 벚꽃이, 홍매화가 번을 갈라 피고 지는가 했더니 , 어느 결엔가 양지 바른 눈위에는 조팝이 흰 물결을 이룬다. 색깔 있는 꽃들이 연초록 맑은 잎에 잠시 순하게 내어 준 자리 , 그 지리를 흰 조팝이 채우되, 산천을 쓰다듬듯이 흘러내리며 핀다. 모든 죄업 거두어 줄 듯한 순백의 손길로 핀다.
지천으로 피어 흔한 것이니 별난 고임을 받을 일 없음을 스스로 아는 꽃, 고만한 높이로 자라니 교만한 마음 품을 것도 아님을 이는 꽃이다. 그 자태에 이끌려서 한 가지 길게 꺾어 아이의 머리에 둘러보면 더 이쁠 것이 없도록 고운 화환이 되는 꽃.
영동고속도로에서 월정사로 꺾이어 들어갈 진부에 이르기까지, 남녘의 땅을 휘덮은 조팝을 보기는 쉽지 않다. 동서의 분기점이 되는 대관령을 향해 아아아, 하고 땅이 솟아오르는 길을 내처 달려도, 집 몇 채씩 이마를 맞대고 있는 낮고 해바른 곳에서만 언뜻언뜻 보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 서운함을 이 철에 오대산을 희게 물들이는 돌배나무로 달랜다. 월정사가 지척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판 옆에서 꽃송이의 무게가 겨워 보일 만큼 만개한 돌배나무, 울울한 전나무 숲이 지우는 그늘이 무색하게 일주문을 장염하고선 돌배나무로 달랜다. 조팝이 \"위안\"이라면 돌배꽃은 “환희” 라 할만한 것이다. 이 철에 이보다 더 수승하게 봄을 찬미하는 떨기가 있겠는가. 바른 탄식 소리와 함께 변심하고 만다.
전나무뿐, 기이하게도 소나무가 드문 강원도 오대산에 바람꽃, 별꽃, 현호색. 얼레지, 타래난초 등이 높거나 낮은 곳, 습한 곳, 해 바른 곳을 두루 채울 때이다. 자장스님이 중국에서 문수보살을·친견한 뒤로 이곳에 그가 살고 있음을 믿고 터를 잡았던 곳, 보천, 효명 두 왕자가 오만 보살을 공양한 곳이다. 그들이 친견했다는 동대 만월산의 관음보살, 남대 기린산의 지장보살, 서대 장령산의 대세지보살, 북대 상왕산의 오백나한, 중대 지로산의 문수보살이 각기 일만씩 거느린 오만 보살은, 봄이면 이 소식을 무릉도원으로 바꾸어 놓는 맑은 잎새들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다함이 없는 무진보살이 사는 오대산은 백두대간의 한중간이라지만 어미의 몸처럼 후덕한 육산이다.
그 속에 자리한 월정사, 뜻없이 지어진 이름이 있겠는가. 보천과 효명 왕자가 푸른 연꽃을 본 것이 새벽 세시인 인시寅時라하니 , 그것은 달의 조화였을지도 모른다. 밤중에 흘린 듯 법당뒤의 만월대 기슭을 더위잡아 오르면, 하늘에 달 하나, 번뇌초 바투 잘라 낸 스님의 머리가 땅에 뜬 달이 되는 월정사.

오대산월정사 주지 소임을 일곱해째 맡고 있는 현해스님은 지난 96년에 책 한권을 써서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께 올렸다. \"법화사상의 새 해석\"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법화경요품강의」이니, 그가 서른 해 가까이 천착해 온 법화경 연구의 결집판이라 할 만한 것이다. \"법화경의 사상과 성립, 구성과 주요 참고 문헌, 그리고 한역본 소개와 아울러 , 법화경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8품을 뽑아서 강의 주석\" 했다.
제 생각을 글로 적어 책으로 펴낸다 함은 남을 위한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믿든 믿지 않든지 , 불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일 중생을 위한 것이다. 그의 책은 그래서 원문을 상세히 풀어 설명하되,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하여 오늘을 사는 이들이 쉽게 알아들을 만하게 해 준다. 간간이 섞이는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도 그러한 마음씀에서 비롯된 것이다.
월정사의 가장 볼만한 조형물일 팔각구층석탑 앞에서 공양의 예를 올리고 있는 석조 보살상은 법화경의 \"약왕보살\"로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 보살상 옆에 있는 설선당을 처소로 삼고 지내는 동안에 책을 펴 낸 것이니, 그 일은 그와 법화경과의 인연을 더욱 뜻깊게 한 셈이 되었다.
구마라집은 \"법화경”을 “묘법연화경”이라했으니 , “묘한 백련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제 홀로 깨우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살행으로써 진흙 같은 사바에 뿌리를 깊이 박되, 진흙에 몸 더럽히는 바 없이 중생을 교화할 향기를 내뿜는 꽃, 그것이 연꽃의 모습이다.
처염상정處梁常{爭, 법화경이 궁극으로 이르는 바를 한마디로 나타내면 그렇게 된다.
종비 일기생으로 동국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을 진학하면서부터 법화경에 깊이 빠져들었다.
화두도 염불도 방편이지 진리는 아니다. 제법실상, 현성이 그대로 법이 된다 이르는 경전, 아침에 해 뜨고, 저녁이면 해 지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르는 그 경전에 반해 버렸다. 현상을 떠난 진리는 없고, 현상을 떠난 수행도 있을 수 없으며 , 이 현실을 떠난 불국정토도 없다는 것이 법화경의 가르침이자 그가 견지하는 현실 인식법이다.
일체중생희견보살은 부처님으로부터 법화경을 듣고 정진한 끝에 현일체색신 삼매를 얻었으나 몸을 태워 부처님을 공양하여 약왕보살로 태어나게 되는 분이다. 모태산앙으로서 스스로도 전도사노릇까지 해 보았던 그의 이력 탓인가. \'소신 공양\' 이란 보은과 고행을 책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처럼 , 중생을 위하여 몸을 희생해야 함을 강조하는 뜻으로 푼다. 대승의 뜻이 그러하다.
대학원을 마치고 73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마자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와세다 대학과 대정대학에서 동양 철학과 천태학 연구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긴 세월 짧게 보내다가 “한달에. 몇번씩 길에서 쓰러지는’ 몸을 못 이기어 팔 년 육 개월 만에 귀국했다.
돌아온 뒤로는 승가대학과 동국대 경주 분교에서 최근까지 강석을 폈었다.

오대산에 도인 한 분이 있다더라. 그 말 한마디 듣고 이 산중에 스민 것은 그의 나이 스물넷이던 1958년이었다.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이 곳을 거쳐 갔지마는, 선교겸수, 또는 계정혜 삼학의 실천이라는 오대산문중의 두렷한 가풍은 한암스님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육이오전쟁 때 참화를 입지 않은 절이 드물지만, 월정사의 경우는 유난히 흑심하여 , 돌로 된 구층탑과 보살상을 제하고는 당우와 불보가 고스란히 재로 화했다. 유일하게 상원사가 그 참화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스물일곱 해동안 두문불출하다가 좌탈입망한, 소신 공양을 불사하는 각오로 절을 지킨 한암스님 덕분이었다.
누군가가 일러 준 “오대산의 도인”은 아마도 탄허스님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한암스님의 제자인 탄허스님은 이 곳에서 “오대산 수련원”을 열어 강석을 베풀고, 화엄경 등 수많은 불전을 번역하여 종교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나라에서 내리는 은관 문화 훈장을 추서받은 분이다.
그러나 출가한 뒤로 세 해 동안 해제 때마다 스승을 찾아 떠돈 끝에 그가 은사 스님으로 삼은 분은, 탄허의 상좌로서 한암 노스님의 좌탈입망을 지켜보았던 희찬스님이다. 스무 해 동안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주초뿐인 잿더미이던 월정사를 오늘의 도량으로 이루어낸 분이다. 그는 오늘도 상좌나 신도들에게 인간 현해 믿지 마라, 스승으로 심을 것은 진리나 법뿐이다. 되뇌어 이르거나와, 애초에 공부는 혼자서 할 일이라 믿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 분은 중노릇할 바는 확실하게 보여 주신 분이었다. 그 은사 스님에 미칠 바는 못 되지만, 그는 그 동안 도량 정비에 큰 힘을 쓰니. 용검루, 삼성각, 범종루, 보장각, 불이문 등 고쳐 짓거나 새로 짓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그러는 가운데 평생을 공심 하나로 월정사 불사에만 매달렸던 은사 스님이 더욱 그립다.
장작이건 목침이건 손에 잡혀는 대로 매감을 찾아 상좌에게 앵기곤 했던 무서운 분, 부전살이하며 학비를 벌어 공부하던 그가 방학이라고 찾아가 뵈어도 올라갈 차비만 줄 뿐이었다. 그러나 법당 마루로 쓸 나무를 허가없이 잘랐다가 구속되었으나, 주지 노릇 십 년인데도 변호사비용 십만 원이 수중에 없도록 사심 없이 살다 간 분이다. 노스님이 되는 탄허스님은 그에게 있어 “공부는 밝았으나 사려에는 어둡던 분\"이어서 , “신발의 왼쪽 오른쪽이 뒤바뀌어 있어도 모르고 그대로 신고 나갈 분”이었다. 그의 그러한 마음을 어른 모시는 마음이 깍듯했던 은사 스님에게 대고 구시렁거리면 이렇게 달래곤 했다.
사흘에 모과 세 덩어리를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어른은 어른이다. 그 어른 공부가 그만하니 우리가 밥 먹고 사느니라. 학비 한 푼 보태 주신 일 없던 은사 스님은 그가 대학을 마치자 내려와서 재무를 살아달라 했다. 삼배올리고 무릎꿇고 앉아 \"당돌히” 여쭈었다. 제가 그 일을 도와 법당 낙성식을 보고 나면 소임 그만 사시고 선방으로 가시겠습니까. 저도 그 길로 공부하려 떠날 터입니다. 충정에서 올린 말씀이나 불공의 허물로 내쳐질 언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피차 약조하고 산지 두 달만에 은사 스님이 구속되자 변호사에게 무릎 꿇고 빌어 외상으로 송사를 시작했었다.
은사 스님 떠나신 지도 열세 해째, 그러나 한암, 탄허 두 분 스님과 함께 상원사 밑 양지 바른 곳에 의좋게 누워서 이 산중 든든히 지키고 계신다.
그 분들이 세운 전통, 선과 교를 뼈로 삼고 계로써 수행의 밑자리를 밝혀야 할 바, 소임 맡은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이 그 때까지 폐쇄되어 있던 청량선원을 다시 연 것이었다.
겨울이면 눈이 허리까지 내리기가 예사인 추운 데라서 ‘박복한 팔자’인 사람이나 살 만한 곳이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수행처에는 맞춤한 조건이 되어 줄 만한 것이다. 눈내린 달밤에 선방의 마루 끝에 서면 전나무 푸른 우듬지만 눈위로 솟아 보아는 곳, 그 형형한 달에 푸른 갈퀴가 있어 이랑을 청정히 갈아놓은 듯하다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빠르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상한 봄이, 이참까지 일쑤 남기도 하는 진설을 다녹이고도 도량 끝에 돌배나무 한그루를 황홀히 피워 두고 있었다. 이 곳에는 열댓 남짓한 선객들이 늘 공부를 놓지 않고 살고 있다.
평생을 경학에 몰두하면서 강석을 펴 왔던 그이니, 문도의 한사람으로서가 아니더라도 강원을 개설하고픈 꿈이 없찮을 터였다. 삼백 년쯤 전에 만들어진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는 “전통적인” 강원이 아니라, 강원이나 대학을 졸업한 수준의 학인들을 모아 종단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게 할 현대적이고도 수준 높은 연구 기관하나 마련하고 싶다. 재원을 마련할 일이 아득하다니 그것이 아직은 \"꿈\"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인연이 되어 자신이 소임을 보는 동안에 그 일이 성사되면 2.5톤 트럭을 가득 채우는 자신의 책도 도서관에 부려져 후학들이 볼 수 있게 될 터였다.
계곡의 물소리가 모두 부처님 말씀이니, 산천 초목이 어찌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이 아니랴. 그가 즐겨 외는 소동파의 싯귀이다. 이치가 그러할 진 돼 자신이 입을 열어 구태여 말을 지음은 눈썹을 아끼지 않는 일이라 여기어 그런가, 그의 말은 짧고도 간결하다. 제 말에 취하여 말끝을 놓치는 일도 없다. 그 간결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말투에서 그의 육신을 여법하게 움직이는 단정한 마음자리를 읽는다. 그러나 알아듣지 못할 말도 없으니 제 속에 갇히어 홀로 수승히 지내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혹여 그렇게 지내고 계신 것은 아닌지. 본사주지 소임 맡고 있는 그가 내는 한 달 전화 요금이 만원에 크게 못 미친다 했다.
법당 앞의 동배, 고로쇠, 적목 따위의 나무는 모두 가지가 쳐져 단정하고도 말쑥하다. 아홉 남매 중에 네가 제일 키우기 힘들었니라. 숨은 성품이 불 같은 그를 두고 속가의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지금도 자신을 이기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라 했다. 그것이 독이 되어 그의 심신을 까라지게 하고 건강을 해칠 터임을 모르지 않건만, 마음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했다. 그는 모자란다고 느끼는 만큼 자신을 더욱 엄히 가둔다. 전지된 나무들은 그래서 그의 그런 의지로 볼 만한 것이 된다. 일어나는 시각. 좌복 위에 잠깐이라도 앉는 시각, 책상 앞에 앉는 시각, 잠자는 시간을 ‘딱, 딱, 딱\" 정해 두고 산다. 잠 안 와도 불 Rm고 자리에 \"딱” 눕는 나날, 그러나 이런 저런 생각에 잠들지 못하는 때 많은 \"재미없는” 주지 노룻 그만두고, 따로이 혼자서 박혀 살고 싶은 때 많다. 그러나 불 켜고 일어나 다시 펴 읽는 법화경 묘음보살품에는 이렇게 이른다. 저 사바세계는 높고 낮아 평탄하지 못하고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부처님의 폼은 작고 보살들의 몸도 작으니 … 그러나 이 세상을 정화하려는 보살의 원력에 따라 이 세상은 정토로도 예토로도 된다 이른다.

이곳에 저녁 예불 종소리 울린다. 맑고 깊은 그것은 만월대와 장령 사이에 고요히 갇힌 도량을 넘치도록 채운다.
밝은 빛 스러지고 습자지 물 먹듯 어둠이 배어 들기 시작했다. 제 먼저 어두워진 적송을 배경으로 대적광전의 용마루 선이 더욱 선명해진다. 빛과 어둠이 엇갈리는 시각, 삽시간에 밀어닥칠 어둠의 직전, 초승이니 달빛은 난망일 터였다. 오늘 밤은 달 대신 별빛이 흘러내릴 지붕의 기와 골이, 배 넓은 기둥과 흰 주련들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잠시 환해진다. 심중에 그늘 품고서야 비로소 뚜렷해진 팔각구층탑 앞, 오른 무릎 땅 대어 짚은 보살이 고개를 가웃이 기울여 법당에서 흘러나오는 똑탁소리 듣는다. 口

글/김 영 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