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해인사의 겨울 풍경은 벗은 계절의 쓸쓸함이 없이 풍요로웠다. 절에 이르는 입구의 홍류동 계곡길부터가 그랬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계곡 길 따라, 어쩌면 그리도 늠름하게 잘 생겼는지, 나이 가늠할 길 없는 소나무들이 울울창창하게 솟은 모습이, 장구한 세월에도 깎이지 않은 기암 괴석과 어울려, 자못 유연한 아름다움을 띠었다. 그 아래 계곡물은, 곳곳에 누웠거나 솟은 바위들과 힘찬 다툼이라도 벌이는지, 한소식 깨친 큰스님의 일갈처럼, 홍진의 때를 다 씻어 버릴 듯한 소리로 흐르고 있었다. 홍류동 계곡, 그 청정한 기세 앞에서 , 어줍잖이 들떠있던 객은 치사하게 부산하던 마음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인사는 그 길목에서부터 찾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주문에 이르는 흙 길은 경내에 들어서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어 채비하기에 딱 좋을 만한 거리였다. 그 흙 길 따라 잎사귀 떨군 나무들이 저들끼리 가지들 부비며 뒤섞여 늦은 오후의 비낀 볕 속에서 부드러운 빛깔 덩이를 이룬 채로 이어졌다 푸른 계절엔 그 녹음이 참으로 장관을 이룰 터이다.
길 중간 중간에 나 있는 산내 암자가는 길을 뒤로하고 일주문에 닿으니, 저만치 사천왕문에 이르는 길까지, 삼동에도 푸른빛 여전한 키 높은 전나무들이, 혹여 곁길로 빠질세라, 양옆으로 도열하여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솟은 그 전나무들이 길게 줄지어 선 모습은 유구한 청정 도량의 기상이 벌써부터 뚜렷했다.
돌길 밟으며 가니 제법 높은 계단 위로 ‘해동원종대가람\'이라고 현판을 건 문이 떠억하니 버티고 섰다. 해탈문이었다. 이제, 양쪽으로 건물이 이어져 그 안을 한치도 봐주지 않는 저 문만 넘어서면, 아직도 남은 속연의 미련일랑 훌훌벗고 오로지 해탈견성에의 정진만이 있겠구나 싶어, 한갓 속객일 뿐인 내 발걸음마저 덩달아 숙연해졌다. 정작 그 문안으로 들어서니, 정갈한 마당 건너 계단 위로 헌출한 모습을 자랑히는 구광루가 눈에 들어올 뿐, 마음 어두운 사람에게는 옛 건물의 고아한 아름다움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바짝 긴징했던 마음이 설핏 풀어졌다.
구광루 지나자 넓고 반듯한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저 앞으로 높다란 계단 위에 거대한 건물이 올려다보였다. 바로 해인사 법당, 대적광전이었다. 법당 안에서는 쉬임없이 절하는 이들의 간절한 몸짓이 경건하였다. ‘부처님 크신 광명 사방에 두루하니… 곳곳마다 부처님 덕 기리는 소리일레. 빛이 있는 곳에 넘치는 기쁨이여, 중생의 모든 고통 씻은 듯이 사라지네.”
절로 조심스러워진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보려니, 차곡 차곡 단계를 넘듯이, 계단을 오르고 거친 숨 고르다가 또 오르며 예까지 온 길을 훌쩍 뛰어건너, 푸른 기상 역력한 청량산이 멀지 않게 내다보였다. 문득 지금까지 올라온 길이며, 애살스럽게 붙잡고 있던 삶이며, 모든 것이 허망했다. 착각일 망정, 한 겹 착着을 벗은 듯했다.
일주문에서부터 일직선을 그리며 계속해서 오름으로 이어져 온 해인사 가람의 질서는, 이제, 대적광전 뒤에서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각으로 오르는, 깎아지른 듯이 높은 계단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 절정은 올라온 길마다 점충적으로 고조되어 온 신앙심의 절정이요, 눈푸른 수행자의 구도 길의 절정으로 이해되었다. 어지간한 마음 태세로는 아예 올 생각 말라는 듯이 계단은 매몰차게 좁고도 가팔랐다. 아마, 저 위가 수행의 궁극처인 구경究竟의 세계일러니 ---.
그 길 삼가오르니, 시간이 문득 멈춘 듯했다. 소박하고 어여쁘기 짝이 없는 낮은 흙담 이래로, 기와지붕들이 가로로 세로로 겹겹이 정연한 층을 이루며, 푸른 잿빛으로 사그라드는 짧은 겨울 햇빛 속에서, 해인삼매의 고요한 바다로 다가왔다. 삼가고 삼가던 마음이 외려 탁 트이며 편안해졌다. 팔만대장경을 모 신 장경각의 그 독특한 건축양식의 빼어난 아름다움에 경탄하면서, 뜰에 서 있자니, 가야산의 숭한산세와 지덕의 가피가 무한했다.
가야산의 힘차고 웅숭깊은 기상과 더불어, 저 아래 일주문에서부터 구경에 이르도록 한 줄을 그리며 오르고 또 오르는 해인사의 가람 배치는, 그 정형의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수행도량의 모범으로 각인되었다. 그 첫 인상은 그뒤로 잦아진 발걸음에서도 빛바렐 줄 몰랐다. 여름날 이른 아침에 장경각에 올랐을 때 먹빛 지붕과 짙푸른 녹음 새로 물안개 피어오르는 그 아스라한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어느 가을 끄트머리에, 갈빛들, 셋빛들 혼연히 섞여 아득한 꿈길 이루던 암자에 오르는 숲길의 정취도 그저 좋았다. 해인사 어름에서 밤을 보내던 날, 홍류동계곡에서 들려오는 그 거센 물흐름 소리에 폼서리치던 기억도 다시 맛보고 싶다.
팔만대장경을 모셔서 법보종찰이라 일걷는 가야산 해인사는, 산이 너르고 깊은 만큼, 또 일천이백 년 긴 역사를 통해 걸출한 큰스님을 여렷 배출해 온 만큼, 가볼 만한 절경과 성지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하지만, 태생이 게을러서인지, 여러 번 되풀이되는 해인사행에서 이곳저곳 샅샅이 헤젓고 다닐 염을 굳이 내지는 않았다. 그냥 가야산 너른 품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족하였다.
가야산 해인사의 이런 면모는 그 뒤로 이름난 큰절을 찾을 때마다 어김없이 잣대로 작용하여, 가야산해인사는 내게 늘 이 나라 ‘제일도량’으로 남아있다. 올 겨울, 큰 눈 내릴 때쯤 가야산 찾아, 깊은 밤을 기다려, 나뭇가지 위로 쌓인 그 눈이 힘겨워 끝내 비명처럼 뚝, 뚝, 생가지 부러뜨리고 마는. 설해목이 내는 원시의 소리, 듣고 싶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