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그 장엄한 불화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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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이문재
1998년 06월 196호
파적破寂 삼아 사찰에 가 본 적 없다. 삼십여 년 저쭉, 초등학교시절, 도시락싸들고 원족을 다녀오기는 했으나, 콧수염이 거뭇해진 뒤, 절에 가본적 없다. 들끓어 뜨거운 마음을 어쩌지 못해 대웅전으로 달려가지 못했고, 가라앉은 마음의 앙금이 수백 톤에 달해 그것을 녹여내려 일주문 앞에서 합장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나에게 사찰, 그것도 그 이름이 세상에 떨쳐 있는 명산대찰은 일상이 아니었다. 일상의 마음으로는 당도할 수 없었다. 사찰은 나에게 늘 파격破格이었다.
특히 문화유산답사기들이 쏟아져 나온 이래, 오래된 사찰은 더욱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그 책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퍼뜨려, 나처럼 아는 것이 부족한 이들을 주눅들게 만들고야 말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슬로건에는 지식 권위주의(또는 지식 패권주의)가 작동하고 있어서, 께름칙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는 아는 만큼 앓에 갇힌다 또는 \'아는 만큼밖에 보이지 않는다\'로 번역되어야 마땅하다-저 사다리를 버려라, 지붕에 올라갔으면 사다리를 버려라. 강을 다 건너가셨는가 그렇다면 나룻배는 잊으시게나·--.
이태 전 초겨울, 후배 결혼식에 갔다가 영주 부석사에 들른 적이 있다. 뜨는 돌, 뜬 돌, 떠 있는 돌. 그러나 그 돌은 사과나무 밭에 감춰져 있었다. 결혼식에서 축시를 읽고 나서, 해가 막 기울기 시작한 오후, 부석사는 사과나무 밭 저 쪽, 저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겨울 사과나무 밭은, 사과는 없고 나무만, 이파리를 다 떨군 나무들만 앙상하고, 또 즐비했는데, 사과 나무밭에 둘러싸인 사찰이라---나는 그 초겨울에 봄날, 사과나무 꽃이 환장하게 핀 봄날 오전을 생각하고 잠시 몸을 떨었더랬다. 청정도량과 만발한 사과나무 밭, 이 얼마나 난감한 파격인가. 그 때부터 부석사는 나에게 장엄한 불화不和의 공간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봄날, 사과나무 꽃이 난분분할 때, 부적사와 사과나무는 극도의 불화 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식물의 꽃은 식물의 성기이다. 그것도 가장 되바라진 성기. 모든 성기는 태양과 정면하거니와, 꽃들은 단단한 사과열매를 맺기 위해, 있는 힘껏 태양의 기운을 빨아들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더 짙은 향기, 더욱 강렬한 색깔을 욕망한다. 벌과 나비를 위하여 꽃들은 발광하는 것이다. 사과나무 성기들이 봄날, 치열한 대형연을 벌일 적에, 부석사 스님들의 심사는 어떠할 것인가. 이 극채색의 불화를 어떻게 갈무리하며 통과할 것인가. 나는 겨울 부석사에서 사과나무와 고찰의 난감한 길항을 보았다.
사과나무밭을 지나 당간지주에 이르렀을 때, 나는 또하나의 불화를 발견했다. 당간지주와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 깃발을 달아, 사찰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알렸을 당간지주는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의 기둥과 조화를 거부하고 있었다. 이 때부터 나는, 부석사 전체가 불화의 공간임을 깨달았다. 부석사 입구에 배치되어 있는 사과니무 밭에도 어떤 의도가 잠재해있는 듯했다. 건축가들은 부석사의 가람배치에서 엄청난 조화와 균형의 미학을 찾아내고 있지만, 내 어설픈 눈에는, 그 조화와 균형은 파격이었다.
당간지주는 냉정한 직선이지만, 무량수전의 기둥은 가운데가 불룩 튀어 나온 \'배흘림’ 이었다. 부석사 셜계자의 상상력은 세속적이지 않았다. 민일 그가 평면적인 조화를 염두에 두였다면, 부석사의 모든 기둥은 배흘림이었거나, 아니면 당간지주처럼 빠른 직선이었을 터. 그러나 부석사의 설계자는 구석구석에 불화의 공간을 설치하고 있었다.
몇 개의 기단을 올라, 안양루에 올랐을 때, 부석사의 불화는 절정에 다다라 있었다. 면저, 안양루와 무량수전은 서로 배척하고 있었다. 안양루는 무량수전의 중심에서 한쪽으로 비켜 서 있다. 뿐만 아니다. 안양루의 가로축과 무량수전의 가로축도 서로 평행하지 않았다. 어긋나 있다. 이 어긋남이 부석사 불화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이 어긋남을 키워드로 삼으면, 부석사는 도처에서, 서로 어긋나 있다. 그러나 이 어긋남의 구도들은 안양루에서 일망무재로 펼쳐지는 소백산 줄기를 바라보는 순간 사라진다.
불화, 곧 어긋남의 절정은 무량수전 본존불이다. 이 아미타불은 세상과 어긋나 있다. 거개의 사찰에서 대웅전은, 일주문과 적선일 뿐만 아니라, 그 대웅전의 부처님은, 일주문을 거쳐 올라오는 중생을 정면에서 맞이한다. 일주문에서 머리를 조아려 합장할 때, 그 염원은 대웅전 본존불로 직통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은 일주문 쪽, 저 아래 사바를 내려다보지 않고 동쪽으로 틀어앉아 있다. 이 무슨 심통인가. 무량수전을 바라보고 오른켠으로 돌아가야 본존불을 볼 수 있다.
어긋남은 이어진다. 아미타불이 등지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부석浮石이다. 이 불화의 원인은 쉽게 눈치첼 수도 있다. 돌이 땅에 닿아 있어야지, 돌이 땅을 거부하고 있다나-그러니까 이 부석도 땅과 불화의 관계이다. 돌이 땅을, 중력을 거부하고 떠 있다니-이 어긋남을 아미타불은 꾸짖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부석사는 세계와 불화하고 있었다. 틀어앉은 부처, 돌아앉은 부처. 부석사 아미타불의 ‘묵언’ 을, 나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곧 너희들이 설정한 중심은 중심이 아니다\' 라는 메시지가 아닐 것인가. 기실, 중생의 삶은 모든 분야에서, 모든 순간에서 중심을 세우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안해서 흔들린다. 전례, 관습, 제도, 가치, 고정관념, 선입견, 경험칙---이 모든 것들이 중(기준점)의 다른 말들이다. 시간 관까지도 그렇다. 모든 시간은 한 기준점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분할된다. 일하는 시간, 노는 시간, 도닦는 시간, 술먹는 시간, 여행하는 시간, 사랑하는 시간, 이별하는 시간, 이픈 시간, 낳는 시간, 미워하는 시간, 질투하는 시간, 자랑하는 시간, 부끄러워하는 시간,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 과거를 생각하는 시간, 시간을 생각하는 시간---아마도 부석사 아미타불은 너희들이 너희들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깨부수지 않는 한, 서방정토로 가는 비행기표는 끊을 수 없다’ 라고 꾸짖고 계신 것 같았다.
그해 초겨울, 부석사에 다녀와 한 건축전문지에 부석사 공간에 대한 짧은 해석을 기고했고, 뒤이어 겨울 부석사 라는 비교적 긴 시를 한 편을 썼다. 그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부처가 돌아앉았다면, 그렇다면 세상도 돌아앉은 것, 나도 돌아앉아 있는 것, 그랬다. 이 세상에 돌아앉지 않았다면, 내가 돌아서 있지 않았다면, 어느 부처가 돌아앉겠는가. 부석사의 틀어앉은 부처, 돌아앉은 부처는, 그 틀어짐, 돌아섬으로 언어 이전, 또는 언어 이후의 법문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언젠가, 사과 꽃이 난분분할 때, 봄날이 몸 속에 깃들어 있는 욕망들을 있는 대로 다 끄집어낼 때, 부석시에 한 번 찾아가. 그 불화의 공간과 맞서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지만, 그 뒤 세번째 봄을 그냥 보내고 말았다. 뒷날, 어느 환장하는 봄날, 부석사를 다시 찾는다면, 부석사의 어긋남, 그 불화不和의 관계가, 혹여, 거대하고 찬란한 불화佛畵로 보이지 않을 것인가.
그 만다라에 나의 불화들이 녹아들어, 한소식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뽀드득, 뽀드득, 푸른사과가 안으로단단해지는 소리, 들려온다. 口